과속스캔들 지대로 웃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틈없이 웃겼다. 몇달 전 개봉한 미쓰홍당무의 경우 웃음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이 영화의 웃음엔 이론이 없을 것 같다. 코미디의 안정성을 미리 확보하고 시작했던 게 주효했다. 영화는 괜히 민망해질 꺼리나 감상에 빠지는 것, 쓸데없는 반전의 싹은 아예 차단했다. 남현수의 첫상대였던 황정남의 엄마는 남현수의 외가집 옆집 누나에서 더 이상 얘기를 만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건 그 누나의 딸이 황정남이라는 것뿐이다. 황정남이 태어나서 황기봉을 낳기까지의 사연은 없다. 나중에 반전이니 뭐니 딴소리 못하도록 아예 황정남이 남현수의 딸이라는 유전자조사 결과에 도장까지 찍어버린다. 뻔한 반전에 관객이 쓸데없이 가슴졸이며 보지않고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환경을 영화..
시각을 상실한 인간은 청각·촉각·후각에 의존하게 된다. 시각을 배제하고 세상을 인지하게 되면서 눈먼자들은 이러한 감각들의 세계를 깨우치게 된다. 눈먼자들은 안대노인이 들려준 라디오의 음악소리에 행복한 표정으로 귀기울이고 서로를 인지하기 위해 생살을 만지고 체취를 맡는다. 시각이 사라진 자리에 소리와 온기와 향기가 채워지면서 인간의 만남은 더 단단하고 깊어진다. 시각은 청각·촉각·후각을 통한 만남을 방해한다. 보고나면 듣고 만지고 맡으려 하지 않는다. 시각은 상대를 보다 깊이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차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시각만의 인지는 인간들 사이에 거리를 만들고 유대를 어렵게 한다. 시각은 같음보다 다름에 주목하여 인간 사이의 띄워놓는다. 여기에서 차별이 생긴다. 시각이 사라지자 차별도 사라지면서 흑백..
"골 때린다" 영화관을 나서면서 아내가 던진 첫마디다. 손예진을 골 때리는 여자로 보는 아내의 생각이 마음에 들었다. "둘이 저래가 살 수 있겠나?" 이 말은 가슴을 스치는 것 같았다. 여건만 된다면 저렇게 일처다부로 사는 것도 가능하단 말인가? 영화 는 아내의 언어를 엄청나게 증폭시켜 조금의 미묘함으로도 내 가슴을 때렸다. "여자들도 일처다부로 사는 환상을 해보지 않나?" 이 말을 하는 나의 목소리가 마치 첫 미팅에서 만난 여자에게 건네는 음성처럼 떨렸다. 내 그런 목소리에 내가 놀라 그 뒤엔 의도적으로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얼마만에 아내에게 느껴보는 긴장감인가? 오늘 거사를 치른다면 이거 장난이 아닐 게 분명하다. 연애기분을 다시 느끼게 해준 이 영화에 고맙다고해야하나? 하지만 난 애태우는 관..
* 하도 웃어서 정말 눈물이 나왔다. 한국영화 역사상 이보다 더 우스운 코미디가 없었다고 확신한다. 얼마만이냐 이렇게 후련하게 보는 영화. 사실 이 영화의 리뷰는 너무나 웃기다는 거 이게 전부다. 더 무슨 말이 필요하랴. 그러나 블로거뉴스에 보낼려면 좀 더 양을 늘려야 한다. 그래서 웃긴 거 말고 아무 생각도 안나지만 대가리 짜내서 억지로 늘려봤다. 미쓰홍당무의 웃음은 회화적이지 않다. 우리나라 시트콤처럼 '맞다 맞어'를 연발하는 사실적 장면으로 만들어내는 그런 웃음이 아니다. 미쓰홍당무는 캐릭터와 사건의 기막힌 조립으로 웃음을 터뜨리는 조형적 작품이다. 양미숙과 서종희가 합치고, 서종철이 받쳐지고, 이유리가 끼어들고, 성은교가 포개는데, 이렇게 조립된 미쓰홍당무가 보여주는 입체적 완성도는 탁월하다. 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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