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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속스캔들 지대로 웃겼다. 처음부터 끝까지 쉴틈없이 웃겼다. 몇달 전 개봉한 미쓰홍당무의 경우 웃음에 대해 논란이 많았는데 이 영화의 웃음엔 이론이 없을 것 같다.
코미디의 안정성을 미리 확보하고 시작했던 게 주효했다. 영화는 괜히 민망해질 꺼리나 감상에 빠지는 것, 쓸데없는 반전의 싹은 아예 차단했다.
남현수의 첫상대였던 황정남의 엄마는 남현수의 외가집 옆집 누나에서 더 이상 얘기를 만들지 않았다.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건 그 누나의 딸이 황정남이라는 것뿐이다. 황정남이 태어나서 황기봉을 낳기까지의 사연은 없다.
나중에 반전이니 뭐니 딴소리 못하도록 아예 황정남이 남현수의 딸이라는 유전자조사 결과에 도장까지 찍어버린다. 뻔한 반전에 관객이 쓸데없이 가슴졸이며 보지않고 시원하게 웃을 수 있는 환경을 영화는 만들어준다. 이제 차태현이 모는 폭소 오토바이에 올라타고 달리면 되는 것이다.
짜임새 있는 상황극들이 영화 내내 개콘의 코너처럼 줄기차게 이어졌다. 감정선은 코미디의 리듬과 방향만을 조절하는데 쓰이고 걸리적 거리지 않도록 이내 웃음선에 자리를 내줬다. 현수와 정남에게서 가족 재회의 감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화는 감상은 빼버리고 독특한 캐릭터의 세인물이 가족의 이름으로 함께 살면서 나오는 충돌을 그렸다. 그래서 깔끔했다.
어떻게 아빠없이 자라 10대에 미혼모가 된 아이가 저렇게 궁상맞지 않고 태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은 곧 이어지는 웃음에 떠올릴 새가 없었다. 관객의 현실적 의문을 배를 잡는 캐릭터의 충돌로 망까이 해버린 것이다. 그래 이렇게 하면 되는데 많은 영화들이 이 의심을 풀려다 어줍잖은 장면을 연출하게 된다. 의심을 풀려 하지 말고 다른 데로 관심을 돌려야 하는 것이다.
철없는 바람둥이의 성장영화라는 말도 있는데 그건 아닌 거 같다. 남현수는 이미 다 성장한 20대의 딸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딸이 30대 아버지를 챙겨주고 키울 정도이다. 영화는 남현수에게 책임을 동반하는 가족을 강요하지 않고 아버지와 딸이라는 관계를 받아들이라는 정도이다.
오히려 영화가 성장시키는 건 차태현이 아니라 관객이다. 황정남의 자세에서 관객은 가족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된다. 왜 우리는 존재를 낳은 존재와 낳게한 존재에게 그렇게 매달리는 것일까? 아버지의 존재 이유는 뭘까? 아버지 남현수 앞에 선 황정남의 멍한 표정은 그걸 묻고 있다. 영화는 부모와 자식이 관계를 넘어 속박이 되는 우리 현실을 떠올리게 한다
아내가 없어도 상쾌한 아침을 맞는 남현수가 영화의 첫장면이다. 돈이 있고 건강하고 유명세까지 있어 즐길 게 널리고 널린 그에게 가족은 장애물이다. 가족은 행복한 독신남의 일상을 깨는 공포이기도하다. 그래서 황정남을 보고 남현수는 기겁을 하고 손자 황기동의 몽유병엔 소스라친다.
우린 조금씩 가족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결혼한 아내가 병들고 남편이 갑자기 실직하면? 아이가 장애를 가지고 태어나면? 우리는 그 두려움을 감수하고 가족을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되는 과정은 쉽지않다. 그 과정은 고통스럽기까지하다. 돈 있고 건강하고 여유 있어 현실이 즐겁다면 가족의 미래는 더 두려울 수 있다.
연애드라마 중엔 무조건 상대를 따라다니다 결국 행복한 결혼에 골인하는 연인의 얘기가 자주 나온다. 이런 스토리는 연애드라마가 아니고 가족드라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누군가 자신을 좋아하고 가족까지 만들어 행복을 주고 아주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만들어준다는 가족환타지이다.
과속스캔들은 이런 가족환타지의 약간 변형이라 할 수 있다. 잠시 연애를 나눈 어느 여인과의 사이에서 나온 딸이 자신을 찾아오는데 그 딸은 현수를 위해 밥도 해주고 성격도 좋다. 노래도 잘부른다. 같이 온 손자는 피아노 천재에 재치까지 만빵이다. 가족을 위해 아무것도 한게 없는 현수에게 이런 행복한 가족이 둘러싸는 것, 이것이 바로 가족환타지가 아니고 뭔가?
소공자를 떠올려도 좋다. 황정남은 20대에 애까지 딸린 소공자이고 남현수는 가족의 정을 모르는 괴팍한 할아버지가 아니라 가족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30대 바람둥이이다. 어쨌든 할아버지처럼 남현수도 가족의 즐거움을 느끼고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의 재미는 많은 부분 차태현의 연기 덕분이다. 거의 모든 코미디가 그의 연기에서 시작되었다. 황우슬혜는 미쓰홍당무에 이어 이 영화에서 완전히 스타로 굳힌 듯 하다. 박보영은 내가 잘 모르는 배우라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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