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징어게임과 기생충 등 한류가 증명한 거 하나가 있다. 대한민국 창의성이 나쁘지 않다는 거다. 창의성은 엉덩이다. 창의적 교육도 좋지만 창의를 구현할 시간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 대한민국은 창의적 교육은 부족하지만 아이들에게 시간은 많이 주는 사회다. 부모는 자식을 어릴 때부터 많이 품어주고 커서도 자식이 스스로 알아서 나갈 때까지 내쫓지 않는다. 대학 가고 군대 가고 휴학하는 걸 다 받아주는 것은 물론 결혼하기 전까지 뒷바라지 한다. 10대 후반부터 삶에 내몰려야 하는 사람과 30대까지 부모의 울타리 안에서 살 수 있는 사람 둘 중에 누가 더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시간이 없다면 10대에 아무리 창의적 교육을 받아봐야 소용없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는 부모들, 여기에 애들 학습시간만 줄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고 일본이 조선에서 물러난 후에도 조선을 다시 침략하자는 주장들이 있었다. 조선 조정에서도 실제로 침략의 징후를 느껴 긴장하기도 했다. 만약 이에야스가 침략을 맘 먹었다면 조선은 다시 전쟁에 휩싸였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에야스는 생각이 달랐다. 그는 조선 침략을 주장하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조선은 예의의 나라로 문교를 숭상해 무를 드날리거나 군대를 뽐내는 일을 하지 않았다. 이유 없이 군대를 일으켜 전쟁에 이기기는 했지만 무라 할 수 없는데 무슨 공이 있는가." 물론 일본이 조선이 문의 나라기 때문에 침략을 포기했다고 볼 수는 없다. 전쟁을 수행할 준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침략을 못한 것이다. 두 차례의 전쟁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 정권이 무너졌는데 그걸 보고도 이예야스가..

잘못을 저지르면 서양은 기도하라고 하고 동양은 수양하라고 한다. 동양은 수양이 덜 되었다고 하지 기도가 모자른다고 하지 않는다. 서양은 자연에 관심을 가졌고 동양은 인간에 관심을 가졌다. 유교는 자연에서 인간원리를 찾았고 기독교는 자연에서 신의 원리를 찾았다. 세계를 운영하는 신이 존재하는 서양엔 진보의 개념이 있다. 신이 없는 동양엔 수양의 개념이 있다. 서양은 신의 계시를 찾아다녔고 동양은 수양법을 찾으러 다녔다. 서양은 실체를 탐구하고 동양은 실질을 탐구한다. 몽고가 세계를 휩쓸고 중국이 18세기 중엽까지 세계 최강국을 유지하고 한중일이 20세기부터 다시 부상한 것은 실질의 힘이다.

오징어게임은 데스게임 류보다 영화 매트릭스에 더 가깝다. 감독은 영화 속에서 매트릭스를 직간접 드러낸다. 공유가 빨간 딱지와 하얀 딱지를 선택하게 하는 장면은 매트릭스 빨간약 파란약을 연상시킨다. 212번 한미녀는 대놓고 매트릭스를 언급한다. 감독이 말하고 싶은 것은 매트릭스가 컴퓨터 속 가상세계에 인간을 가둔다면 오징어게임은 인간을 게임의 룰에 가두었다는 거다. 그리고 영화 매트릭스가 현실도 사실 가상세계와 다를 게 없다는 걸 말한 것처럼 오징어게임도 현실의 우리가 게임의 룰 속 세계에 사는 인간일 뿐이라고 말해준다. 오징어게임을 탈출해봐야 우린 현실에서 또 다른 게임의 룰에 갖힌 인간일 뿐이라는 거다. 첫번째 게임을 겪은 후에도 187명의 인간이 잔혹한 오징어게임의 룰을 빋아들인 것은 우리가 비슷하게..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