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에는 부탄 난민촌이 있다. 일단 부탄 난민촌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데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나라로 알려진 부탄에서 난민이 왔다는 게 의아하기 때문이다. 부탄 난민들은 불교를 믿는 부탄인들과 달리 힌두교를 믿는 네팔계 부탄인들이다. 이들은 19세기말 부탄 남부에 유입되어 1990년대엔 인구의 20%를 차지하였다가 현재는 대부분 추방되어 해외 재정착 하거나 일부는 아직 난민촌에 남아있다. 부탄이 네팔계 부탄인들을 추방한 것은 힌두교도인 네팔계의 인구증가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과거 티벳계 불교 왕국이 네팔계 유입으로 인도의 자치주로 편입된 사례가 있다. 부탄왕국으로선 네팔계 인구증가가 이런 전철을 밟게 할 수 있다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부탄은 20년 전 대부분의 네팔계..
불에 타고 있는 것은 사람의 시신이다. 시간을 조금만 뒤로 돌려보면 저 불타는 시신 주변은 이런 모습이었다. 이곳은 네팔 최대의 힌두교 성지 파슈파티나트다. 네팔 힌두교도들은 죽어 이곳에 화장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화장지는 마그마티 강을 따라 있다. 화장된 시신은 강물에 흘려 보낸다. 강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다리가 나오는데 다리 위쪽에서 네팔 힌두교도의 장례식을 좀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왼쪽으로 머리를 향한 나무 위의 시신이 보인다. 시신을 태우기 시작했다. 장례식장을 살짝 벗어낫 곳에서 포착된 서양인 커플. 사원 본당은 힌두교인이 아니면 들어갈 수 없다.
네팔 모랑학교 아이들과 보낸 3일 처음 네팔을 가기로 했을 때 별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 전에 미얀마를 다녀왔는데 별 힘든 걸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얀마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열악하다는 나라이다. 하지만 주변의 염려와 달리 난 미얀마에서 힘든 걸 느끼지 못했다. 도시의 풍경은 우리나라 60년대였고 불빛이 거의 없을 정도로 전기사정도 열악했지만 그게 관광에 지장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호텔은 호텔 다웠고 서비스도 나쁘지 않았다. 호텔과 관광지를 차량으로 움직인 우리에겐 미얀마의 열악함은 지나가는 풍경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네팔은 달랐다. 호텔이라고 도착한 곳에 처음 내렸을 때 잠시 당황했다. 호텔처럼 보이는 건물이 안 보였기 때문이다. 유니폼을 입은 직원이 나와서 가방을 들어줄 때야 바로 앞에 있..
네팔 아이들은 사진을 좋아합니다. 카메라만 갖다대면 자연스럽게 포즈를 취합니다. 그리고 찍고나면 모니터를 보여달라고 합니다. 모랑초등학교 3일 지내는 동안 카메라로 아이들과 정말 신나게 놀았던 것 같습니다. 제가 한 수업(?)은 사진찍기였습니다. 학년별로 아이들을 모아놓고 사진을 찍어 즉석인화기로 인화했습니다. 선생님께 이 사진을 교실 뒤에 붙여서 아이들어 볼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3일간 찍은 모랑초등학교 아이들 모습입니다. 사진마다 애들 얼굴이 눈에 콱콕 박히네요. 다음에 또 간다면 애들 얼굴 확실히 기억할 거 같습니다. 네팔 모랑학교 아이들과 보낸 3일 깃발에 담아온 네팔 모랑학교 아이들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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