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살해당한 딸의 억울한 사연을 밝혀달라는 한 어머니를 취재했습니다. 사실 처음엔 외면했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매달리시는 모습에 반발감이 들었고 살인사건에 엮이는 게 겁이 났습니다. 그러다 블로그행사에서 그 어머니를 만났는데 취재현장까지 따라와 호소하는 모습에 심정이 복잡해졌습니다. 밤 늦은 시간 우산도 없이 비맞으며 돌아가는 택시를 잡는 모습은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결국 8일 뒤 서울로 가는 ktx를 탔고 집을 찾아가 딸을 잃은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를 인터뷰하고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기사에 관심을 보였고 저는 딸을 잃은 어머니의 사건을 알리는데 약간의 기여를 했다는 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후 어머니로부터 재판결과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었고 그 소식을..
노무현 대통령이란 사람을 알게 된 게 언제였지? 2002년 당선될 때요. 그때 아버지는 새누리당 지지자란 걸 알았기 때문에 어머니께 노무현 찍으시라고 했어요. 2002년이면10살인데 그 나이 초등학생이 정치인에게 그렇게 깊이 빠져들 수 있다는 게 놀라운데. 예 그랬어요. 그럼 노무현 대통령 탄핵 때도 충격을 좀 받았겠네. 다음날 꿈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죄수복 입고 판결 받는 그런 꿈 꿨어요. 그 꿈 꾸고 울었어요. 왠지 노무현 대통령이 나라를 새롭게 만들고 구원할 거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노무현 때문이다" 그런 말이 그때 많이 돌았잖아요. 애들한테 노무현 대통령 안좋은 사람으로 비쳐줬었거든요. 전 그게 이상했었요. 그렇다면 노무현 대통령 서거하신 후 나름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추모하고 싶었을 건데..
7월 12일 부산 지역에서 활동하는 트위플 몇 분과 함께 부산일보 편집국장님을 만났습니다. 이날 만남은 부산지하철노조가 주최한 부산일보노조를 지지방문하는 행사였습니다. 우리가 찾아간 날은 공교롭게도 이정호 편집국장이 직무정지를 당하기 전날이었습니다. 편집국장실에 들어선 시각이 오후 6시 쯤이었으니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었을듯합니다. 이정호 편집국장은 정수재단 문제와 부산일보 사원의 투쟁에 관한 우리의 질문에 답하며 그 마지막 시간을 보냈습니다. 트위플 : 먼저 88년 도입된 부산일보의 편집국장 추천제도에 대해 설명해주십시오. 다른 언론사에도 상당한 자극이 된 제도로 알고 있는데. 이정호 : 예전엔 거의 뭐 관보였습니다. 80년대 사장 중에 한 명은 어떤 말을 했냐면 '부산일보는 숙명적 여당이다.'라고까지 ..
돌아가신 금미호 기관장의 아들이 대학 후배로 종종 연락하고 만나는 사이입니다. 납치된 아버지 소식도 전화로 들어서 알았고 만나서 듣기도 했습니다. 금미호가 풀려나기 전에는 후배가 제게 의견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에선 해적들에게 안좋은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언론접촉을 자제를 요청하는데 그렇게 되니 금미호 사건이 이슈에서 멀어지면서 아버지의 석방이 기약이 없어지는 것같아 걱정된다고 했습니다. 그때까지 후배는 어떤 언론사의 인터뷰 요청도 거절하고 있었습니다. 정부의 판단도 일리가 있지만 자식으로서 입장도 이해받을 수 있다며 스스로 판단해보라고 말해줬습니다. 결국후배는 정부의 요청을 따라 언론과의 인터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버지의 석방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제(2월17일) 오후 12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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