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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살해당한 딸의 억울한 사연을 밝혀달라는 한 어머니를 취재했습니다. 사실 처음엔 외면했습니다. 어머니가 너무 매달리시는 모습에 반발감이 들었고 살인사건에 엮이는 게 겁이 났습니다. 그러다 블로그행사에서 그 어머니를 만났는데 취재현장까지 따라와 호소하는 모습에 심정이 복잡해졌습니다. 밤 늦은 시간 우산도 없이 비맞으며 돌아가는 택시를 잡는 모습은 가슴을 찡하게 했습니다. 결국 8일 뒤 서울로 가는 ktx를 탔고 집을 찾아가 딸을 잃은 어머니를 만났습니다.

 

어머니를 인터뷰하고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적잖은 사람들이 기사에 관심을 보였고 저는 딸을 잃은 어머니의 사건을 알리는데 약간의 기여를 했다는 게 위안이 되었습니다.  이후 어머니로부터 재판결과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었고 그 소식을 두어 번 더 블로그로 알렸습니다. 그리고 거의 잊고 있다 어제 이 사건 소식을 다시 듣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사연이 전국민의 공분을 사는 사건이 되어있었습니다. 바로 어제 오늘 온라인을 들썩이게 한 "내 딸은 내연녀가가 아닙니다"라고 외친 류미자씨가 바로 그 어머니입니다.

 

7년 전 류미자씨의 인터뷰를 다시 소개합니다. 7년 전 모습과 목소리를 들으면 어머니가 딸을 잃고 9년 동안 어떻게 투쟁해왔는지 보다 생생히 느껴질 수 있을 겁니다.

 

 

 

죽은 딸의 억울한 사연을 댓글로 호소하는 물망초님을 만나다.

2007년 9월 29일

 

 

 

 

블로거 중에 이 유명한 댓글 못보신 분 없을 것이다. 왠만한 인기글엔 어김없이 달려있는 글이다. 간혹 자신의 포스트에 붙어있기도 하는 이 댓글을 보면서 곤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은신 분은 없을거다. 애써 올린 글에 아무 관계없는 댓글이 올라와 불편하지만 딸을 잃은 어머니의 간절함이 묻어있는 댓글에 그런 감정을 표출하긴 어렵기 때문이다. 간혹 모질게 맘 먹고 지우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몹쓸 짓 한 것 같은 복잡한 심정이 된다. 
 

지난 20일 열린 문국현후보 간담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모니터에서만 느꼈던 이 곤혹스러움을 오프에서도 느꼈다. 위 댓글의 주인공 물망초님이 간담회에 나타나신 것이다. 초청한 후보측이나 블로거 모두 당혹스러웠다. 도대체 어떤 분일까하는 궁금함에 슬쩍 보면서도 마주치는 시선은 외면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내 자리까지 찾아와서 아는 척 하셨는데 얘기가 길어지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바쁜 척 인사를 했다. 당혹스러움에 미안한 마음까지 블로그 댓글처럼 또 심정을 복잡하게 만드셨다.   
 

간담회는 오후 12시가 다 되어 끝났다. 비는 더 많이 내리고 있었다. 차도엔 비와 시간에 쫓겨 급히 택시를 잡으려는 사람들이 군데군데 진을 치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먼저 나온 물망초님이 택시를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우산도 없이 그 비를 다 맞으면서 서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갑자기 울컥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서야  '불편한 댓글'이 아닌 '자식을 떠나 보내지 못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내 눈에 들어왔다.

 

물망초님 블로그 글

 

물망초님 따님 사건 서류. 당시 집에 들어설 때 좁은 집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따님 서류가 올려진 상이 거실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물망초님이 쓰는 컴퓨터. 인터넷으로 딸의 억울한 사연을 올렸던 물망초님에게 컴퓨터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컴퓨터 뒤 벽면에는 사건 관련 메모들이 빼곡히 붙여져 있다.

 

물망초님 따님은 글을 잘 썼다고 한다. 물망초님이 딸의 글이 실린 서대문구 문집을 보여주었다. 청소년 문학상 시부문 황인희가 물망초님 딸이다.

 

 

간담회 후 블로그를 통해 인터뷰를 부탁드렸다. 연신 고맙다며 언제라도 좋다고 하셨다. 8일 뒤인 28일 마포구에 있는 물망초님 댁을 찾아갔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자 탁자 위 두툼한 종이뭉치들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tv 위, 책상 위, 장농 옆 등 집안 곳곳에 딸의 수사·재판 관련 서류들이 올려지거나 쑤셔져 있었다. 2년전 이사한 집이라고 했는데 딸 때문에 집은 주인의 관심을 전혀 받지 못한 모습이었다.

 

사진기를 꺼내자 얼마전 정치인 모이는 행사장 앞에서 들었다던 플랭카드를 펴서 보여주셨다. 그걸 어떻게 몇시간을 들고 서있었냐고 물으니 훨씬 더 큰 플랭카드를 보여주시면서 그것도 혼자 들고 쫓아다녔다고 한다. 작년 하반기부터 억울함을 호소하고 다니셨는데 그동안 만난 정치인과 유명인사만 해도 수십명이 넘는다고 한다.

 

안타까움에 물었다. "따님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냉담함만으로도 매일 상처를 받으시는데 그걸 언제까지 감당하실 수 있습니까"

 

물망초님 대답은 바로 나왔다. "딸이 죽은 이후로 전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예요. 내가 죽어 딸의 억울함이 풀린다면 내일 당장 죽을 수 있어요 정말이예요"   

 

나머지 얘기는 물망초님 인터뷰 영상으로 대신한다.

 

 

 

무브온21에 기고했던 원본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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