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조직을 책임지기엔 조금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기있는 얼굴에선 조직의 책임자 같은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커서님보다는 한참 어리지만 생각보다 나이가 좀 많습니다. 올해 55세입니다. 나이는 쉽게 속일 수 없다. 얼굴에 쌓이고 행동거지에 배인 세월의 굴곡은 숨기기 어렵다. 실제 나이를 알고나면 나이를 알려주는 신체의 정보들은 더 잘 드러난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나이를 알았음에도 신체 어디에서도 50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여자의 눈이 생글거렸다.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의 노화가 좀 지연되었죠. 지금은 60대까지는 젊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영의 나이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자 이제 부활에 대한 의문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논리코드는 대체 뭐지? 왜 256개일까? 자영이 자리..
"커서님" 낮지만 또렸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눈을 떴다. 아니 눈이 떠진 것 같았다. 흐릿한 빛이 느껴졌다. 잠시 뒤 카메라 초점이 잡히 듯 선명한 상이 맺혔다. 실내였다. 왼쪽에 소파가 보였고 오른 쪽엔 창이 보였다. 밖은 바다였다. 바다를 본 건 아니다. 파란 하늘만 보이길래 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나셨어요?" 왼쪽에서 한 여자가 시야로 들어왔다. 누구냐고 묻고 싶었는데 마치 가위를 눌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답은 못 하실겁니다. 커서님은 현재 시각만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커서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여자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말이 있기 전까지 나는 앞의 시야만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여자가 생각의 장치를 작동시..
설날 다음날 찾아간 처가에서 장인께 태블릿피시를 알아봐 달란 부탁을 받았다. 여든이 넘은 노인이 웬 IT 기기에 관심을 두나 생각했는데 이어진 이야기에 '아차' 싶었다. 책을 보고 싶은데 일반 책은 활자가 작아 보기 어려워 글자 크기를 쉽게 확대할 수 있는 태블릿피시로 전자책을 보고 싶다는 것이다. 자식 된 도리로서 어르신에게 신경을 써드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살짝 드는 순간이었다. 알아봐 드릴 게 아니라 하나 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아버지 생각도 났다. 얼마 전부터 본가에서 신문을 보질 못했는데 인제 보니 그게 아버지께서 신문을 보기가 불편해 아예 끊으신 게 아닌가 싶은 거였다. 활자를 볼 때면 눈을 찡그리며 힘들어하시던 모습도 떠올랐다. 그렇다면 태블릿피시는 장인뿐 아니라 아버지에게..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