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님 어떤 불편함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괜찮아지겠죠. 어제보다는 나아진 거 같습니다." 자영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보통 사람들도 그럴 때가 있죠. 200년만에 오셨는데 새로운 육체에 적응하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요. 힘드실 때마다 저희들에게 말씀해주세요." "제가 처음인가요?" "아니요. 기록에 첫번째 등장하는 부활자는 예수님이시죠. 커서님은 두번째예요." 진호가 생글거리는 얼굴로 재빠르게 말을 받았다. 미소가 지어졌다. 다시 태어나서 처음으로 지어본 웃음이었다. 난 살아있을 때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기독교도가 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기독교가 말하는 '영생'을 수긍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비과학성이 문제가 아니었다. 영생 자체가 끔찍했다. 도대체 어떻..
사람은 영원히 살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은 영원히 죽을까. 무한한 시간은 이 대답을 머뭇거리게 한다. 깨진 유리컵이 다시 붙을려면 유리 입자들이 붙을 수 있는 위치로 배열하고 그것들이 결합할 수 있는 적절한 에너지가 공급되어야 한다. 이 확률은 제로에 가깝다. 그러나 제로는 아니다. 제로가 아니라면 무한한 시간 앞에서 그 사건은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부활할 확률은 깨진 유리컵이 다시 붙을 확률보다 높다. 과학이라는 도구가 그 가능성을 훨씬 더 높이기 때문이다. 이미 23세기의 과학은 나의 기록을 바탕으로 육체를 만들고 정신을 재생했다. 과학이 좀 더 발달하고 과거에 대한 자료가 더 쌓이면 기록이 없는 사람도 과학의 힘으로 부활할 수 있을지 모른다. 영원히 산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수 있지만 무한..
"다시 태어나신 기분이 어떠세요?" 삶에서 죽음을 직면하면 두렵다. 죽음에서 삶으로 가면 어떨까? 죽음은 인지할 수 없다. 죽음은 그저 단절일 뿐이다. 단절된 과정에 감흥이 실릴리 없다. 그들은 내가 살아났다는 것이 기뻤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시공간에 대한 공포가 스물스물 밀려왔다. 어렸을 때 밤기차를 타고 가다 불빛 하나 없는 창밖을 보면서 저기 홀로 남겨지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때 온몸이 소스라쳤다. 그런 공포였다. 나는 지금 23세기 존재한다. 아무도 없는 이 시대는 내게 밤기차의 창밖보다 더 어두운 시공간이다. 갑자기 맞딱드린 낯선 사람들의 환대도 날 위로하지 못했다. 갑자기 온 몸에 지독한 한기가 덮쳤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팔로 상체를 감쌌다. 눈두덩이 ..
깨어났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없었다. 충분한 수면을 끝내고 일어났을 때의 그 기분이었다. 천정이 보였다. 위 아래가 구분된다는 건 중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컴퓨터가 아니라 육체 속에 있다.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이 지면과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 목 근육에 진한 떨림이 느껴졌다. 오른쪽 팔꿈치에 기댄 채 왼팔을 밀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커서님" 자영의 목소리였다. 구분은 되었지만 컴퓨터 속에서 듣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녹음기에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의 그런 낳설음이랄까? 성대를 한 번 울린 후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와 바로 듣는 목소리처럼 고막을 때리는 소리와 뇌가 바로 인식하는 소리에도 그런 차이가 있었다. "아직 몸을 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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