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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소설

2편 영혼은 코드다

커서 2014. 10. 2.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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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조직을 책임지기엔 조금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기있는 얼굴에선 조직의 책임자 같은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커서님보다는 한참 어리지만 생각보다 나이가 좀 많습니다. 올해 55세입니다.


나이는 쉽게 속일 수 없다. 얼굴에 쌓이고 행동거지에 배인 세월의 굴곡은 숨기기 어렵다. 실제 나이를 알고나면 나이를 알려주는 신체의 정보들은 더 잘 드러난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나이를 알았음에도 신체 어디에서도 50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여자의 눈이 생글거렸다.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의 노화가 좀 지연되었죠. 지금은 60대까지는 젊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영의 나이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자 이제 부활에 대한 의문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논리코드는 대체 뭐지? 왜 256개일까? 자영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주름없이 뻗은 바지 위에 약간 헐렁한 셔츠가 흘러 한뼘 정도 겹쳤다. 앞으로 나왔다. 허벅지가 바지 속에서 탄력있는 선을 그렸다. 가까이 다가온 자영의 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웠다. 손을 뻗어 얼굴을 만질 수 있을 정도의 거리로 느껴졌다. 


"22세기 경 학자들은 인간의 판단논리가 8개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그 8개는 맞음·틀림, 유무(有無), 승부, 인지, 찬반, 선호, 다소(多少), 쉬움·어려움입니다. 이 8개의 기본 판단을 조합하면 256개의 코드가 나옵니다. 어떤 고도의 논리도 256개 논리코드의 조합으로 가능합니다. 인간의 정신도 바로 이 논리코드의 조합입니다."


논리코드만으로 인간의 영혼이 만들어진다고? 그렇다면 기억은?


"물론 논리코드만으로 인간을 완성할 수는 없습니다. 정신에 채워질 기억이 필요하죠. 커서님에 관한 기록과 커서님과 지인들이 남긴 기록 등이 기억의 재료입니다. 기억 데이타를 주면 정신유전자(SDNA)는 기억을 재구성합니다. 잘못된 데이타는 걸러내고요. 이런 식으로 데이타가 쌓이면 쌓일 수록 기억은 정교해집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정교해진 걸까? 100년 동안 내 안에 쌓인 기억들은 아무도 모른다. 그런데도 그들은 나에 관한 기록들 몇개를 짜집기 해놓곤 그게 나라고 얘기하고 있다. 내가 이렇게 허술하게 만들어졌다면 못 만들게 뭐가 있을까? 아무 정신유전자에다 기억을 던져주면 뚝딱 사람을 만들 수 있다. 이걸 과연 존재라고 할수 있을까? 자영이 소파에 앉았다. 흘러내렸던 셔츠단이 다시 바지춤에서 주름을 잡았다. 얼굴의 웃음기는 얕아졌다.


"정신유전자와 기억은 호응합니다. 만약 커서님의 기억이 아니라면 정신유전자는 주입된 기억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아주 깔끔하고 예민한 영혼인데 산만하고 둔감한 사람의 기억이 주입되면 어떻게 될까요? 이럴 때 정신유전자는 반응하지 않습니다. 정신유전자가 잘못된 기억에 호응할 확률은 지문의 오차보다 1억배 낮습니다. 


그렇다면 기억은 별게 아니다. 정신유전자가 기억을 구분한다는 것은 인간이 행할 사고와 행동이 이미 정신유전자에 정해졌다는 얘기다. 기억은 정신유전자의 좌표일 뿐이다.


"만약 기억이 영혼이라면 커서님은 매일 달라져야 합니다. 기억이 매일 달라지니까요. 하지만 커서님의 정신유전자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유일합니다. 그렇다면 커서님의 영혼은 무엇입니까? 기억입니까? 정신유전자입니까? 정신유전자라는 구조에 기억이라는 재료가 더해져 만들어진 것이 바로 커서님의 영혼입니다. 영혼은 기억이 아닙니다." 


영혼이 기억이 아니라면 영혼은 코드다. 인간의 육체가 DNA라는 코드인 것처럼 영혼도 SDNA 코드다. 따라서 DNA와 SDNA를 알면 인간을 부활시킬 수 있는 것이다. 영혼이 코드라는 게 불쾌할 수도 있지만 인간이 오랜동안 염원하던 영생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코드를 알면 인간은 영원히 존재할 수 있다. '너희는 코드니 구원받으리라' 영생이 신의 영역이 아니라 기술자의 영역이 되는 것이다. 


"커서님 이제 쉬셔야 합니다. 저장장치 내에서 의식을 너무 오래 작동시키면 바이러스가 쌓이게 됩니다. 코드를 망칠 수 있습니다. 곧 육체에 전송시켜 드겠습니다. 그전까진 강제적으로 의식의 활동을 조절해야 합니다. 이제 커서님 의식의 스위치를 닫겠습니다."


이대로 전원이 꺼진다면 그건 죽음인가 수면인가? 나는 다시 깨어날 수 있을까? 그건 이들의 판단에 달렸다. 필요 여부에 따라 나는 존재할 수도 안할 수도 있다. 어쩌면 이들은 몇 세기 뒤에 나를 깨울지도 모른다. 핑계야 만들면 그뿐이다.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던 코드로 만들어진 가상의 존재일 수도 있다. 현재로선 저장장치 안에서 의식만 존재할 뿐이다. 감각도 없고 두려움도 없다. 지금 이것이 나라는 자각만 있을 뿐이다. 


"안녕히 주무십시오."


자영의 이 말을 듣고 1초 쯤 뒤 내 의식은 사라졌다. 물론 이건 나중에 의식이 깨어나서 안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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