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야 누나야 - 김소월 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모래 빛 뒷문 밖에는 갈잎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김소월 시인의 '엄마야 누나야', 혹시 이 시를 모르시는 분?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이 시를 모르는 분은 없겠죠. 국어공부 안해서 모른다고 잡아뗄 수도 없죠. 이 시에 곡이 얹혀져 노래로도 많이 불리어 졌습니다. 지금은 누구나 알고 있는 시 또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만약 4대강 공사가 정말로 하게 된다면 어떨까요? 그때도 이 시를 알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왜 이런 질문을 하느냐? 왜냐면 4대강 공사가 끝나면 이 노래에 나오는 금모래빛 강변과 뒷문 밖 갈잎이 사라지기 때문..
연극을 처음 봤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처음 본 건 아닙니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구해오신 연극표를 얼떨결에 받아 딱 한번 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땐 뭐가뭔지도 모를 때였습니다. 본 게 아니라 그냥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게 맞을 겁니다. 지금 남아있는 기억은 여자배우들이 객석을 향해 악을 쓰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제서야 연극을 한번 봤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소극장에 들어서서 받은 느낌은 '이렇게 바로 보이는 데서 어떻게 공연을 하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무대에서 객석까지의 거리는 몇미터 되지 않았습니다. 농담이 아니라 무대에서 손을 뻗으면 4번째 줄의 제게 물건도 건내줄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공간이었습니다. 영화관에선 늘 앞자리를 찾는 편입니다. 앞에서 봐야 시원하고 통쾌한 화면을..
제주도에 있는 무명천 할머니 집입니다. 무명천 할머니는 안계십니다. 2004년 8월 타계하셨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뜻 있는 사람들이 이 집을 4.3유적지의 하나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무명천'이란 이름은 할머니가 언제나 얼굴을 '무명천'으로 감싸고 계셨기 때문에 지어진 겁니다. 할머니는 4.3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35살의 나이에 집앞에서 토벌대가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을 턱에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총을 맞은 턱은 얼굴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이후 할머니는 말도 잘 하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2004년까지 홀로 살았습니다. 할머니 삶터는 살았을 때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할머니의 때가 묻은 살림들은 할머니의 고통스러웠을 삶을 현재진..
지난 4월 4일 제주도에서 열린 한일노동자등반대회에 참가했습니다. 한일노동자 등반대회는 해마다 양국을 번갈아가며 진행되는 행사인데 올해는 제주도에서 열렸습니다. 한라산을 등반한 다음날 한국과 일본 노동자들은 함께 제주 4.3 유적지를 돌아봤습니다. 제주 4.3 학살에 관해선 신문 등의 미디어를 통해서 접했을 뿐 유적지는 처음입니다. 역시 학살의 현장을 직접 보는 것과 미디어를 통해 전달받는 것은 공명하는 감정의 층위가 달랐습니다. 유적지를 맨눈으로 돌아보면서 한 가지 생각을 확고히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1950년 6.25전쟁이 터진 후 대전과 대구를 거쳐 부산으로 수도를 옮겨가던 정부는 8월18일 예비검속자 처형 명령을 전국에 내립니다. 이 명령에 따라 모슬포 경찰서는 8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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