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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있는 무명천 할머니 집입니다.




무명천 할머니는 안계십니다. 2004년 8월 타계하셨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뜻 있는 사람들이 이 집을 4.3유적지의 하나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무명천'이란 이름은 할머니가 언제나 얼굴을 '무명천'으로 감싸고 계셨기 때문에 지어진 겁니다. 할머니는 4.3이 일어난 다음해인 1949년 1월 35살의 나이에 집앞에서 토벌대가 무장대로 오인해 발사한 총탄을 턱에 맞고 쓰러진 뒤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러나 총을 맞은  턱은 얼굴에서 완전히 사라졌고 이후 할머니는 말도 잘 하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2004년까지 홀로 살았습니다. 




할머니 삶터는 살았을 때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할머니의 때가 묻은 살림들은 할머니의 고통스러웠을 삶을 현재진행형으로 느끼게 했습니다. 
 



할머니가 바다에서 쓰시던 도구들입니다.
 



할머니의 작은 신발들입니다. 저 신발을 보니 돌아가신 외할머니가 생각났습니다. 외할머니를 밖에 모실 때면 저런 색깔과 저런 모양의 신발이 이상하리만치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습니다.




예전에 쓰시더 테레비에는 할머니 생전 모습과 이웃의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아래엔 요강도 보입니다.




장롱과 장식대 위에 자잘한 세간도구들이 보입니다.




장롱을 열어보니 할머니의 옷가지가 그대로 있었습니다.




할머니의 사진들과 할머니가 쓰셨던 무명천들이 장롱 위 유리관 안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오른쪽 하얀 종이에 써있는 글씨는 "쥐약주세요"입니다. 아마 말을 하기 어려웠던 할머니는 잘 알아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필담으로 얘기를 했었던 것 같습니다.




이 삶터의 한달 전기요금은 1260원입니다. 할머니의 본명은 진아영입니다. 할머니의 계좌로 전기세는 계속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이 삶터의 전기세는 계속 내고계십니다. 




무명천을 푼 할머니의 모습입니다. 이렇게 55년을 사셨습니다.




이웃이 하는 얘기는 목이 메이게 합니다. 할머니는 턱을 잃은 이후로 다른 사람들과 절대로 같이 식사를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심지어 커피도 집밖에 나가서 먹고 오셨다고 합니다. 
당신의 턱 없이 먹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었던 겁니다.




이날 한일노동자평화연수대회 프로그램의 하나로 무명천할머니의 삶터를 찾았습니다. 수십명의 일본노동자들도 같이 무명천할머니의 삶터를 돌아봤습니다.




ㅣ일본노동자들은 할머니의 집을 사진으로 남기고




방명록에도 흔적을 남겼습니다.




무명천할머니의 삶은 제주4.3유적지에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할머니의 삶 그 자체가 역사의 흔적입니다.

제주도에 가면 4.3유적지 한두 군데는 꼭 돌아보고 오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명천 할머니의 집은 월령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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