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태어나신 기분이 어떠세요?" 삶에서 죽음을 직면하면 두렵다. 죽음에서 삶으로 가면 어떨까? 죽음은 인지할 수 없다. 죽음은 그저 단절일 뿐이다. 단절된 과정에 감흥이 실릴리 없다. 그들은 내가 살아났다는 것이 기뻤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낯선 시공간에 대한 공포가 스물스물 밀려왔다. 어렸을 때 밤기차를 타고 가다 불빛 하나 없는 창밖을 보면서 저기 홀로 남겨지면 어떤 기분일까 상상해본 적이 있다. 그때 온몸이 소스라쳤다. 그런 공포였다. 나는 지금 23세기 존재한다. 아무도 없는 이 시대는 내게 밤기차의 창밖보다 더 어두운 시공간이다. 갑자기 맞딱드린 낯선 사람들의 환대도 날 위로하지 못했다. 갑자기 온 몸에 지독한 한기가 덮쳤다.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팔로 상체를 감쌌다. 눈두덩이 ..
깨어났다. 나를 부르는 소리는 없었다. 충분한 수면을 끝내고 일어났을 때의 그 기분이었다. 천정이 보였다. 위 아래가 구분된다는 건 중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컴퓨터가 아니라 육체 속에 있다.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이 지면과 마찰하는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들었다. 목 근육에 진한 떨림이 느껴졌다. 오른쪽 팔꿈치에 기댄 채 왼팔을 밀어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커서님" 자영의 목소리였다. 구분은 되었지만 컴퓨터 속에서 듣는 것과는 느낌이 달랐다. 녹음기에 녹음된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때의 그런 낳설음이랄까? 성대를 한 번 울린 후 들리는 자신의 목소리와 바로 듣는 목소리처럼 고막을 때리는 소리와 뇌가 바로 인식하는 소리에도 그런 차이가 있었다. "아직 몸을 쓰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정..
한 조직을 책임지기엔 조금 어리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기있는 얼굴에선 조직의 책임자 같은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 "커서님보다는 한참 어리지만 생각보다 나이가 좀 많습니다. 올해 55세입니다. 나이는 쉽게 속일 수 없다. 얼굴에 쌓이고 행동거지에 배인 세월의 굴곡은 숨기기 어렵다. 실제 나이를 알고나면 나이를 알려주는 신체의 정보들은 더 잘 드러난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여자는 나이를 알았음에도 신체 어디에서도 50대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여자의 눈이 생글거렸다. "지난 200년 동안 인간의 노화가 좀 지연되었죠. 지금은 60대까지는 젊음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영의 나이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자 이제 부활에 대한 의문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논리코드는 대체 뭐지? 왜 256개일까? 자영이 자리..
"커서님" 낮지만 또렸한 소리가 들렸다. 순간 눈을 떴다. 아니 눈이 떠진 것 같았다. 흐릿한 빛이 느껴졌다. 잠시 뒤 카메라 초점이 잡히 듯 선명한 상이 맺혔다. 실내였다. 왼쪽에 소파가 보였고 오른 쪽엔 창이 보였다. 밖은 바다였다. 바다를 본 건 아니다. 파란 하늘만 보이길래 바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어나셨어요?" 왼쪽에서 한 여자가 시야로 들어왔다. 누구냐고 묻고 싶었는데 마치 가위를 눌린 것처럼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답은 못 하실겁니다. 커서님은 현재 시각만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커서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여자가 이 말을 하는 순간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말이 있기 전까지 나는 앞의 시야만 응시하고 있었다. 마치 여자가 생각의 장치를 작동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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