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쓸 게 없으면 대화 상대를 찾는다. 그리고 일부러 말을 많이 해본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말하면서 나도 생각지 못한 것들이 술술 튀어나오는 경험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자판 앞에선 머리를 쥐어뜯어도 안나오는 것들이 말을 몇마디 풀어내면 막 쏟아진다. 너무 많이 쏟아져 대화 중 급히 수첩을 꺼내 담아내기도 한다. 이게 왜 그럴까? 왜 대화를 하면 창조적 영감들이 많이 떠오르는 것일까? 이에 대한 답으로 3가지 정도를 생각해본다. 첫째, 귀가 집중적 기관이기 때문이다. 듣기가 뇌에 주는 자극은 확실히 다른 기관과 차별적이다. 음악을 들으면 뇌가 마사지 받는 느낌이다. 조용한 새벽 귀를 파고드는 음악은 시원후련하다. 멜로디와 리듬들이 그대로 뇌의 주름 사이사이의 뇌지(귀지?)를 닦아내는 느낌이다. 기막힌..
변명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라치면 머리 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신문의 정치면을 읽고도 가슴만 답답할 뿐 그 맺힌 것들이 언어에 실려 배설되지 않는다. 끄집어낼만한 맴도는 것조차 생기지 않는다. 써봤자 뭐하냐는 생각이 들어서 일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말을 듣지 않는다. 수긍할만한 지적에 그들은 딴전을 피운다. 대응되는 언어를 구사하지 않고 엇갈리는 말들을 해대면서 상대를 급좌절 시켜버린다. 언어의 상대성이 없다. 듣겠다는 말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나중에 너무나 태연히 말을 번복한다. 번복을 지적하면 또 말을 바꾼다. 말을 바꾸면 논리의 회로도 손봐야 하는데 바꾼 말만 내놓는다. 뚜껑을 열어보면 회로는 아예 있지도 않다. 언어에 안정성이 없다. 소통한다며 나선 자리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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