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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명일 수 있다. 언제부턴가 정치적인 이야기를 할라치면 머리 속에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신문의 정치면을 읽고도 가슴만 답답할 뿐 그 맺힌 것들이 언어에 실려 배설되지 않는다. 끄집어낼만한 맴도는 것조차 생기지 않는다.

써봤자 뭐하냐는 생각이 들어서 일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말을 듣지 않는다. 수긍할만한 지적에 그들은 딴전을 피운다. 대응되는 언어를 구사하지 않고 엇갈리는 말들을 해대면서 상대를 급좌절 시켜버린다. 언어의 상대성이 없다.

듣겠다는 말도 끝까지 지켜봐야 한다. 나중에 너무나 태연히 말을 번복한다. 번복을 지적하면 또 말을 바꾼다. 말을 바꾸면 논리의 회로도 손봐야 하는데 바꾼 말만 내놓는다. 뚜껑을 열어보면 회로는 아예 있지도 않다. 언어에 안정성이 없다.  

소통한다며 나선 자리에서는 공허한 미사여구만 남발한다. 맥락도 없고 책임질 것도 없는 언어들만 귓전을 떠돈다. 다 듣고나면 모두가 포장일뿐 알맹이는 없다. 포장지를 열어보니 포장지가 있고 또 열어보니 포장지가 있고 끝없는 포장지들. 언어를 포장지로 쓰는 정권이다.

이런 세상에 무슨 비판이 가능한가? 불통의 3박자를 제대로 갖춘 것 같다. 말을 해도 듣지 않을 것이고 몇개 들었다고 해도 나중에 바뀔 것이고 '왜 그러냐?'고 한마디 하면 온갖 맞지도 않는 미사여구로 상대의 언어를 덮어버릴 것이다. 변명으로 들리는가?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는 달랐다. 언어의 힘이 작동했다. 정권은 언어의 불일치에 긴장했고 비판에 반응했다. 지금은 귀가 약간 먼 행세를 하는 김종훈본부장도 노무현 정권 때는 FTA반대 측의 얘기를  정확히 듣고 제대로 반론하며 제압했다.    

특히 노무현시대에 언어 정치의 장이 크게 열렸다. 노무현은 논리적으로 설득 당하면 그에 따른다고 스스로 밝혔다. 참모들에게도 자신을 설득해보라는 말을 자주 던졌다. 말이 힘을 가졌던 것이다.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해 세상 온 천지에서 온갖 말들이 터져나왔다.

거기다 노무현대통령은 정치적 화두를 자주 던졌다. 대통령이 던진 화두에 세상이 떠들썩했다. 대통령의 언어는 명쾌하고 적확했다. 그 언어의 토대 위에 비판과 반론이 오갔다. 정치언어가 꽃을 피웠다. 여기저기서 정치웹진이 생겨났고 논객들은 신나게 활약했다. 논객의 시대가 열렸다.
   
아직도 일부 논객들은 이명박이 아니라 노무현을 상대한다. 이명박도 노무현 탓을 하지만 일부 논객들은 지금도 노무현 탓을 한다. 이건 노무현의 죄가 많아서가 아니라 노무현이 말이 통해서다. 하지만 지금 정권에 있지도 않은 노무현과 말 통해서 뭐하자는 것인가? 그건 한탄일뿐이다. 

언어는 상대적이고 안정적이어야 분석 전망 추론이 가능하다. 이명박정권은 분석해봐야 말을 바꿀 것이고 떠들어봐야 딴전을 피울 것이고 포장지 잔뜩 싸서 되돌려 줄것이다. 분석하고 전망하고 유추해봐야 다 헛일이다. 이 정권의 언어는 애초에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다. 이 정권에 대고 떠드는 정치인의 인터뷰도 그래서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말의 힘이 사라졌는데 귀에 박힐리 없다.

요즘 논객들의 이명박정권비판글엔 분석 추론 전망은 사라지고 원망 하소연 경고만 있다. 힘 있는 언어는 빠지고 힘 없는 읍소의 언어만 잔뜩이다. 언어의 효력적 영역이 줄어드니 논객이 상상력을 펼칠 공간도 줄어든다. 재밌는 글이 적어지는 것이다.

정치는 명분이다. 명분은 언어에 실려야하는데 언어가 파괴되면 명분은 살릴 수 없다. 결국 언어의 파괴는 정치의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명박 시대는 정치가 죽어버린 시대다.

정치가 죽으니 법과 경찰과 관료들이 판을 친다. 총리와 장관이 당당하게 국회출석을 거부하고 경찰이 국회의원을 우습게 안다. 정치인의 은유와 상징의 언어는 사라지고 관료와 검찰의 공지와 경고의 언어만 넘쳐난다. 정치죽음의 시대는 야당만 아니라 여야 모두에게 위기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을 정치인들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언어가 죽은 천박한 사회에 정치인이 정치도 못하면서 그저 권력만 쥐면 좋다는 걸까? 아마 이런 상황은 여당 정치인들도 오래참지 못할 것이다. 자신들의 정치언어가 쓰레기취급 당하는 걸 보고 스스로도 언짢을 것이 분명하다. 그들도 진저치를 칠 날이 머잖아 올 것이다.

헌법파괴보다 더 무서운 건 언어의 파괴이다. 언어가 사라진 선 위로 명령과 지시만이 흐른다. 명령과 지시엔 반론이 애초 불가능하다. 이게 바로 대망의 지름길이다. 최악의 정권은 언어를 파괴하는 정권이다. 언어를 파괴하는 정권은 결국에 사고를 쳤다는 걸 알아야 한다.

이 정도로 쓰는 것도 힘들다. 글 몇줄 쓰고도 지치는 거 보니 그간 대한민국의 언어가 많이 파괴된 모양이다. 이건 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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