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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만명의 촛불은 방송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31일 밤 보신각 주변에 수만명이 촛불을 밝혔다. 시민들은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목청이 터져라 외쳤고 'MB OUT' 등이 적힌 피켓들을 타종식이 열리는 보신각을 향해 흔들었다. 보신각 바로 아래엔 "근조대한민국민주주의"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이 펼쳐지기도 했다 한다.  

그러나 2008년 12월31일 보신각의 이 분명한 사실은 현장의 중계 방송에 나타나지 않았다. 타종식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들은 보신각 일대의 이 소란 속에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타종식을 진행했다. 카메라는 촛불과 경찰이 보이지 않는 곳을 용케 찾아 비추다 혹시 촛불이 나타날 새라 급히 돌려댔다. 

12월 31일 저녁 촛불은 보신각을 점령했다. 단 한 곳만 빼고. 100 군데 중에 99군데를 차지했지만 단 한 곳 보신각의 무대만은 점령하지 못했다. 그러나 99:1의 결과는 방송에 0:100으로 나타났다. 촛불의 함성과 피켓은 일체 보이지 않았고 예년과 다름 없는, 현장과는 전혀 다른 평온한 타종식만 방송을 탔다.

어떻게 이렇게 철저히 조작될 수 있을까? 단상 위엔 단 하나의 촛불도 없었기 때문이다. 단상 아래 수만명의 촛불이 민주주의의 위기를 온몸으로 절규했지만 단상 위의 수십명 촛불은 못본 척 어색한 웃음을 짓고 애써 흥겨운 척 하며 그런 그들의 모습을 비추면서 단상 아래 수만명의 촛불이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십수대의 카메라가 있었다. 그러나 촛불을 제대로 잡는 단 한대의 카메라도 없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수십명의 연예인이 무대로 올라왔다. 바로 앞에 있는 수만명의 촛불시민에게 한마디 정도 해줄 수 없었을까? 2명의 아나운서가 1시간 넘게 무대에 있었다. 촛불의 존재를 암시하는 멘트 하나 날리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 

아나운서 두명과 카메라 십수대와 연예인 수십명 중에 단 하나의 촛불이 없었다. 무대를 제외하고 보신각 일대를 뒤덮은 촛불의 존재를 알려줄 단 한명이 무대에 없었다. 그래서 단 한명의 부재로 단상 아래 수만명의 촛불은 방송에서 존재를 알릴 수 없었다.

촛불은 단상 위에 존재하지 않는 걸까? 그렇지 않다. 우리는 단상 위의 촛불들을 많이 알고 있다. 몇달 전 김이태박사가 대운하 양심선언을 하면서 단상 위에서 촛불을 밝혔다. 김이태박사로 인해 단상 아래 수많은 촛불이 그 존재를 높일 수 있었다. 얼마 전엔 7명의 전교조교사가 단상 위에서 한꺼번에 촛불을 들었다. 우리는 또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단상 아래 촛불의 존재를 볼 수 있었다.

단상 아래 수많은 촛불을 보여줄려면 단상 위에서 누군가 촛불을 들어 단상 아래로 비추어야 한다. 단상 위의 촛불이 많을 수록 단상 아래 촛불은 더 많이 비추어지고 그 존재가 더 많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지난 해에 수많은 단상 아래 촛불을 확인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단상 아래를 비출 단상 위의 촛불이다.




오늘 1월1일 아침에 마침 반가운 단상 위의 촛불 소식이 들렸다. 서울 오남중의 이민수선생님이 자신도 일제고사 선택권을 준 교사라며 왜 자신은 7명의 교사와 함께 처벌하지 않느냐는 양심선언을 한겨레에 올렸다. 이민수선생님의 경우 학생들의 요청도 있었다고 한다. 그들과 맘이 통한 선생님이 학부모에게 편지를 보냈던 것이다. 스스로의 판단으로 일제고사를 거부하는 학생들의 존재를 이민수선생님의 촛불로 우리는 또 알게 되었다.

촛불 이제 단상 위에서 들어야 한다. 자신이 본 것을 그대로 전하고 양심에 반하는 것은 그대로 말하는 그런 촛불이 있어야 한다. 그 촛불이 수백명만 되어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토대는 굳건할 것이다.

어제 보신각 단상 위엔 촛불이 하나도 없었다. 단상 아래 수만명의 촛불도 밝히지 못하는 그런 방송보다 수백명의 촛불을 밝히는 그런 공연을 보고 싶다. DJDOC 공연장에 가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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