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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었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았다. 계단을 몇 개 올라갔고 산길을 조금 밟았는데 탁 트인 파란 하늘이 나왔다. 아주 낮은 구릉이었다.



창녕지석묘는 바로 그 구릉 꼭대기에 있었다. 넓지도 않은 구릉에 제일 시선이 가는 곳에 있었으니 오르자마자 바로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묘를 만들었으니 당시 이 지역 최고의 권력자 무덤일 것이다. 



돌을 보고 그런 생각이 잘 들지 않는데 보는 순간 무리들 사이에서 참 잘 생겼다는 말들이 터져나왔다.. 이 일대의 암층이 아니라 더 돋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 구할 수 없는 이 큰 바위를 어떻게 이동시켰을까? 고인돌은 그 오랜 역사와 거대한 위용이 항상 보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차를 세워 창 밖을 보니 생각지도 못한 경치가 나타난다. 이렇게 큰 고분들은 경주에서나 볼 수 알았는데 창녕이라니.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니라 도로 양쪽으로 꽤 많다.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들이다. 4세기 중반에서 6세기 전반 사이에 유력한 지배자의 무덤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일제시대 때 고분이 알려졌는데 당시 마차 20대와 화차 2대 분량의 토기와 금공품을 출토했다고 전해진다. 



창녕공설시장을 들어가려는데 그 앞 공터에 탑이 하나 서있다. 창년 술정리 동 삼층석탑인데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석탑으로 석가탑의 형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어 석가탑과 견줄만한 탑이라고 한다.   



그런데 동 삼층석탑이 석가탑보다 더 자유로워 보인다. 석가탑보다 덜 근업하고 일상적인 풍경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동 삼층석탑이 더 편안하고 친근해 보여서 그런 거 같다.




창녕에 석빙고가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젠 놀라지 않았다. 고인돌에 고분에 석가탑까지 있는데 그깟 석빙고가 대순가.



그래도 역사를 뛰어넘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유적을 보니 또 놀라게 된다. 



가까이 가니 밑으로 찬바람이 새어 나온다. 겨울에 넣어두면 지금도 얼음을 꺼내 먹을 수 있을 거 같다. 


창녕은 우포늪과 부곡온천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도시에는 우포늪과 부곡온천으로 묻힌 볼거리가 꽤 많다. 그리고 그 볼거리는 그저 터만 남은 그런 허탈한 유적이 아니라 원형이 잘 남아있고 꽤 잘생긴 그런 유적들이다. 창녕을 경남의 경주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거 같다.  


* 이 글은 갱상도문화공동체해딴에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창녕팸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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