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신정아 사건이 처음 밝혀졌을 때 “그 여자 능력 있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적잖았다. 기가막힌 말이지만 뜻밖의 반응은 아니었다. 사기범죄자의 대담함과 그 수법에 찬탄을 보내는 건 한국에서 자주 보는 모습이다. “못해먹은 놈이 바보고 들킨 놈이 재수없다”라고 말해지는 나라에서 학력위조자에게 “능력있다”라고 말하는 것이 그렇게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능숙한 거짓말은 한국에선 경쟁의 수단으로 인정받기도 한다.

경쟁사회 미국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미국이 유럽을 앞선 것은 경쟁이 있었기 때문인데 그걸 한국이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보다 경쟁이 덜한 사회는 아니다. 우리는 초등학생부터 입시지옥에 들볶이고 사회에 나가면 세계최고의 야근에 시달린다. 경쟁의 강도는 한국이 미국보다 높다.

한국이 미국에 비해 모자란 건 경쟁이 아니라 질서다. 분식회계를 저지른 미국의 엔론회장은 20년 복역 전엔 절대 감옥을 나올 수 없다. 그러나 한국의 대기업 회장들은 휠체어 한번 끌고 나와 집행유예 받는다. 판사들은 아예 돈으로 죄값을 치르라는 판결까지한다. 한국의 법질서는 돈 앞에서 무력하다. 이런 질서의 차이가 한국과 미국의 사회경제적 차이의 주원인이다.

선진사회의 동력인 것처럼 말하는 경쟁은 사실 어디에나 있다. 최빈국 아프가니스탄에도 경쟁은 있다. 노인부터 아이까지 생존경쟁의 현장에서 빵을 얻기 위해 사력을 다한다. 심지어 폭탄과 총으로도 경쟁 한다. 단지 생계를 위해 총을 들고 마약을 만든다. 이 정도면 세계 최고의 경쟁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사생결단의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질서가 없기 때문이다. 질서가 없으면 예측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하느라 온 신경을 곤두세울 정도로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된다.

질서는 아무 데나 존재하지 않는다. 안정되고 견고한 질서는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에만 나타난다. 우리사회가 목표로 하는 경제적 부유함이 경쟁보다는 질서에 더 가까움을 알 수 있다. 한국은 지금 경쟁보다는 질서를 더 배워야 할 때이다. 미국의 경쟁은 질서 이후의 경쟁이다. 미국의 경쟁을 따르려면 먼저 미국의 안정되고 견고한 질서를 도입해야 하는 것이다.

한국은 총칼을 제어할 정도의 질서는 있다. 그러나 땅투기나 학벌, 유착 등의 비합리적 경쟁수단을 제어할 정도의 질서는 아직 갖추지 못했다. 이 사회에선 그런 경쟁수단을 잘 활용하는 사람은 능력 있다는 평가를 받고있다. 한국인들은 땅이나 학벌, 유착 등의 경쟁변수를 확보하고 대비하기 위해 선진국보다 훨씬 더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된다.

철도청 매표창구의 줄서기가 올해부터 바뀌었다. 예전엔 창구마다 줄을 섰는데 이젠 여러 창구를 묶어 한 줄로 세운다. 창구마다 줄 섰을 땐 자신보다 늦게 온 사람이 창구를 잘 골라 줄서서 표를 빨리 사면 약이 오르곤 했다. 이제 여러 창구를 묶어 하나로 줄을 세우니 그런 스트레스는 없다. 줄서기 하나 바꿈으로서 창구선택을 놓고 벌어지는 쓸데없는 경쟁이 사라진 것이다.

한국에선 수당을 안주고 야근을 시켜도 실질적 제재를 당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일부 대기업조차도 야근수당이 아닌 몇시간당 잘라서 주는 편법적인 교통비를 주는 실정이다. 이렇게 노동의 질서가 없으니 법대로 근기법 준수하는 기업주는 바보가 되고 직원들 불법야근 시켜 돈버는 사람들은 “능력있다”라는 소리를 듣는다. 아무 때나 돈 안주고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노동력이 있으니 경영진들은 업무를 정확히 기획하고 분배하려 하지도 않는다. 기획단계에서의 오류 비용을 추가비용없이 야근으로 메꿀 수 있는데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 없다. 한국의 과도한 야근은 경제 동력이 아니라 질서부재의 비용일뿐이다.

선진국은 견고한 질서 속에 경쟁하는 안정된 모습이지만 한국은 얇은 질서의 막 위로 온갖 수단을 동원한 경쟁의 칼날들이 삐져나온 흉측한 모습이다. 얼마전 인터뷰한 아일랜드 취업여성은 한국에 돌아가기 두렵다는 고백을 했다. 그의 인터뷰를 보고 아일랜드 취업이민 가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메일이 내게 수십개가 왔다. 한국은 노동이 상처를 주는 나라이다. 질서가 빈약한 사회에서 경쟁을 강조하면 그 경쟁은 우리 자신을 찌르는 칼이 되어 돌아온다. 

경쟁은 자극이 되어야지 위해가 되어선 안된다. 지금 우리의 경쟁은 위해에 가깝다. 이 과도한 경쟁의 칼날을 꺽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경쟁이 아니라 질서다.

반응형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