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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격자, 혹시 대본이 급수정 된건 아닐까.


주인공 엄중호는 근본이 악인이다. 미진이 휴대폰에 그의 호출명을 쓰레기라고 붙였을 정도다. 이 악인이 갑자기 일말의 선의를 가지고 미진을 찾는데는 정교한 연기작업이 필요했다.

그러나 김윤석은 영화 내내 쓸데 없는 욕설을 날리고 폴리스 라인 앞에서 몸싸움하는 안이한 연기로 엄중호를 표현했다. 엄중호로 체화되어 차올라 펼치는 연기가 아니라 연기자 김윤석이 대본의 엄중호를 꾸역꾸역 메꾸는 연기였다.

엄중호가 전직형사여야 할 이유도 없다. 지영민을 잡아내는 수사실력은 주인공이 형사가 아니라도 관객은 받아들인다. 전직형사는 포주의 수사능력만을 위해 도입하기엔 너무 과도한 설정이다.

이 정도의 무게감 있는 설정이라면 그에 맞는 사연이 나와야 하고 그 사연이 사건에 개입되어야 한다. 그러나 추격자의 전직형사 설정은 형사들과 호형호제하는 선에서 쓰고 버린다

이 영화가 낭비하는 것은 설정만이 아니다. 제대로 쓰지도 않은 캐릭터들이 영화 중간에 버려지거나 변질되었다.

처음 엄중호와 사기를 벌이며 의미있는 눈빛을 주고받았던 여자는 그 이후 자취가 사라졌다. 갑자기 나와서 지영민을 풀어주라던 검사는 그후 감감무소식이다. 뭔가 한칼이 기대되었던 미진의 딸도 그냥 병원에 드러눕곤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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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진에겐 두가지 역할이 필요했다. 영민의 집 내부에서 영민의 공포스러움을 관객에게 이입시켜주는 것과 중호가 지영민과 대결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이었다.

미진은 이 두가지 다 실패했다. 그녀를 통해서 관객들은 아무런 공포도 느끼지 못했다. 그리고 포주 중호가 왜 미진을 그렇게 애타게 찾는지도 이해시키지 못했다. 미진의 딸을 통해서라도 어떤 연결고리가 나올 줄 알았는데 없었다.

니맛도 내맛도 아닌 미진은 죽음까지도 어이없다. 지옥을 천신만고 끝에 빠져나와서는 우연히 담배사러 들른 지영민의 '재수'에 걸려 죽는다. 그럴바에야 미진은 그 전에 영민에게 살해되는 스토리가 나았다.  

영화 스토리상으로 볼 때 미진은 문제가 있어보인다. 배역을 보나 설정을 보나 애초에 그녀에게 맞는 역할이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미진의 대본이 급수정된 건 아닐까?

지영민 정도의 살인마라면 초반에 젊은 여자 살해장면이 나왔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여자를 죽이는 장면이 하나도 없었다.

그러니까 미진을 살해하려다 실패하는 장면이 원래는 죽는 장면이었는데 미진으로 출연한 서영희가 최근 드라마 <며느리전성시대>로 인기를 끌면서 살아나게 된건 아닐까.

초반에 등장하는 여성연기자의 석연찮은 등장과 퇴장은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처음 변태손님을 상대하며 엄중호와 비중있는 연기를 보여주었던 그 여성연기자는 이후 그냥 사라졌다. 영화 흐름상 그건 아니었다. 그녀가 미진의 딸로 나오는 아이와 아주 많이 닮았다는 점에서 의심은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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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보이는 찬사와는 달리 실망스런 영화였다.

동력이 부족한 캐릭터들은 변곡점을 그려내지 못했고 서로 부딪치고 피하다 끝이 났다. 캐릭터간에 침투가 없으니 영화는 양념이 덜 배인 반찬같은 느낌이었다. 캐릭터와 장면들이 너무 많이 영화밖으로 나와서 빠져나갔다.

설정도 긴장감이 많이 떨어졌다. 알고보니 지영민을 12시간 내에 찾을 필요가 없었다. 12시간에 매달리던 수사팀은 어느 순간 지영민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풀어준다. 그리고 그 풀려난 살인마를 미행하는 형사는 고작 여자형사 한 명이다.
 
증거가 없다고 엄살을 부리는데 사실은 증거를 자기들이 피해간다. 검사가 갑자기 수사를 그만두라는 장면은 정말 뻥 찌는 장면이다.

12명 살인을 자백하는 영민의 공포성과 충격성도 제대로 표현되지 못했다. 지영민이 자백과 묵비를 오가는 데에 대한 심리적 긴장도 처리되지 않았다.

같이 같던 동반자가 "이정도면 한국영화치고 괜찮지"라고 한다. 그런대로 재미는 주긴 한다. 그러나 군데 군데 보이는 빈공간들은 그 재미에 못본척하기엔 너무 컸다.

추격자, 쉬리부터 이어진 흥행작의 바통을 잇기엔 좀 모자라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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