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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 와 저리 '뒷손'이 없노?" 아내가 딸에게 하는 말입니다. 말의 뜻을 알듯말듯 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데?" "그것도 무슨 말인지 모른단 말이가?" 아내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를 처다봤습니다. 

아내는 어릴 때 친할머니와 같은 방을 썼습니다. 그래서 이불 밑에서 할머니와 친구분들이 나누는 대화를 귀에 박히도록 듣고 자라서 사투리 또는 어른들끼리 쓰는 쉽게 알아듣고 잘 쓰기도 합니다. 결혼 초 가족오락관에서 경상도사투리로 써주고 뜻을 해석해보라는 문제가 있었는데 한 단어 한 단어 읽어가는 저를 보고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내가 바로 직독직해 해준 적도 있습니다. 

"쟤는 뭘 하면 어질러놓고 그냥 간다아이가." '뒷손이 없다'는 말은 자기가 해놓은 걸 치우지 않고 갈 때를 이르는 말입니다. 뒷손이 없다는 말을 2년 전 그때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그리고 어제였습니다. 가족이 일요일 아침 일찍부터 돌아다녔는데 저녁 무렵 딸이 피곤하다며 칭얼댔습니다. 그 모습을 본 어머니가 아내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민지가 뒷발이없네." 난 무슨 말들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두 사람은 "그렇지예" 하며 몇마디를 더 주고받았습니다. "뒷발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데?" 궁금해서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아내가 대답했습니다. "아가 금방 지친다고. 뒷심이 없다 뭐 그런 말이지." 뒷발은 금방 지치는 경우를 이를 때 쓰는 말이었습니다.

뒷손과 뒷발이라. '뒤'에다 손이나 발 등을 붙여 쓰는 우리말 조어들이 재밌고 정감있게 느껴졌습니다. '뒷정리'보다는 '뒷손없다'는 말이 더 입에 쫙 달라붙는 느낌입니다. 뒷발없다는 말도 체력약하다는 말보다 훨씬 들음직하게 들립니다. '뒤'에다가 신체의 명칭을 붙여 이렇게 듣기좋고 의미전달력도 좋은 단어들이 만들어질 수 있는 한국어가 새삼 신기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건 없을까? 손고 발 말고 다른 신체 명칭은 쓰일 수 없을까요? 뒤라는 말에다 눈 코 입 배 등의 신체명을 붙이면 뒷손이나 뒷발처럼 재밌고 정감있는 단어를 만들 수 있진 않을까?

가장 유력한 단어로 '뒷눈'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는 상황파악력이 좋은 사람에게 뒤통수에 눈이 달렸다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이런 관용적 표현을 축약해서 뒷눈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덕여왕에서 신라의 병사가 아닌 병사가 몇명인가 하는 문노의 첫번째 질문에 정답을 맞춘 보종에겐 미실의 이런 대사가 가능할 것입니다. "보종은 뒷눈이 참 좋소이다." 

그 다음 생각나는 단어는 뒷코입니다. 우리 속담에 뒤로 자빠져도 코가 깨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앞에 달린 코가 뒤로 자빠졌는데 다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만큼 재수가 없다는 것을 이르는 말인데 여기서 뒷코라는 단어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정말 운 없는 사람에게 "참 뒷코 많네"라고 하면 지금 당장이라도 뜻이 통할 것 같습니다. '머피의 법칙' 대신에 '뒷코의 법칙'으로 쓸 수도 있게죠.

뒷입은 어떻게 쓸 수 있을까요? 뒤로 뭘 먹는다?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들죠. 뇌물을 연상시킵니다. "김과장이 뒷입이 좀 있어." 그러면 뇌물을 밝히는 사람이란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뇌물을 밝힌다'는 말보다 '뒷입'이 훨씬 축약적이고 적절한 단어로 보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뒷입은 성적 연상도 일으키는데 이건 상상에 맡기고...

뒤손과 뒷발이란 단어를 듣고나서 해본 국어에 대한 상상이었습니다. 찾아보니 뒷배는 있더군요.


뒷배 : 겉으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보살펴 주는 일.
필순이는 가게를 보게 하고 부모는 안에서 살림을 하며 뒷배나 보아 달라 하기에 십상 알맞았다. 출처 : 염상섭, 삼대구가가 뒷배 봐 주고 무대에 서고 할 땐 장사 참 잘됐다. 출처 : 박완서, 도시의 흉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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