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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전을 보고 웃은 적이 거의 없다. 인터넷에서 하도 시끄럽게 떠들어 가끔 채널을 맞추긴 하지만 이내 몇분을 못참고 돌려버린다. 무한도전에 대한 대중의 열광에 혹시나 내가 놓친 게 있나 하는 생각에 불안해서 몇번이나 꾹 참고 시청하기도 했지만(30분 이상 시청하진 못했다. 그 이상은 정말 고역이었다.) 이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코드를 찾진 못했다.

"도대체 뭘 보고 웃는거야?" 궁금해서 무한도전 리뷰들을 몇개 뒤져봤다. 공통적으로 드는 무한도전의 인기요인은 캐릭터였다. 잘 구축된 캐릭터가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면서 대중에게 어필한다는 것이다. 별로 와닿지 않았다. 무한도전 캐릭터가 잘 구축되었다는 것엔 동의하기 힘들었다.

캐릭터 구축을 위해 오바와 반복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 그러나 무한도전 출연자들의 오바와 반복은 캐릭터구축을 위한 지점을 지나쳐 캐릭터를 작위적으로 만들고 있었다. 박명수는 카메라만 넘어오면 "야 야"하며 괜히 고함을 치고 정준하는 "아이 내가 왜?" 하며 별것도 아닌 일에 징징거린다. 유재석이 우스개로 예측할만큼 이들의 행동은 항상 여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렇게 반복과 오바만 일삼는 캐릭터의 작위성이 주는 불편함이 무한도전을 5분이상 시청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무한도전은 캐릭터를 자랑한다. 그러나 멤버들의 재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무도로선 캐릭터에 의존하는 것 외엔 달리 방법이 없어 보인다. 몇몇을 제외한 무한도전의 멤버들은 재치있는 멘트를 능숙하게 날릴 수 있을만큼 실력있는 엔터테이너들이 아니다. 재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출연진으로 웃음을 주기 위해선 캐릭터를 만들어 충돌시켜야 했다. 캐릭터의 작위성은 실력이 부족한 출연자와 이런 자원으로 웃음을 주기위해 캐릭터 충돌에 메달리는 제작진에 책임이 있다.





비슷한 리얼버라이어티 프로그램인 1박2일과 비교하면 무한도전의 작위성은 더 두드러진다. 1박2일은 멀미에 고통받는 이승기를 아예 배안에 재워 버리고 인상쓰는 김c에게 귀찮게 입담을 요구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추며 출연자들의 말과 행동을 주워 담는다. 출연자들에게 하찮은 형이나 약삭빠른 동생 등의 과장된 캐릭터의 압력도 주지 않는다. 은지원 등이 은초딩 등으로 불리긴 하는데 그건 원래 은지원의 캐릭터를 좀 더 드러낸 수준이지 억지로 끌어낸 것은 아니다. 그래서 1박2일의 웃음은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반면 무한도전의 카메라는 출연진을 혹사시킨다. 카메라는 웃긴 장면을 담는 게 아니라 쉴새없이 들이대며 강요한다. 출연진을 로프승강기에 태웠던 동해유정 편이 바로 그런 경우다. 한명씩 올려 보내진 출연자들은 수분간 카메라들 앞에서 단독으로 멘트와 연기를 요구받았다. 웃겨야 하는 강박관념에 출연자들은 두려움을 과장하고 억지 괴성을 질러댔다. 울고 불다가 승강기에서 내려선 순간 날뛰는 출연자들의 똑같은 장면이 3번이나 이어졌다. 짜증이 쌓였고 밑에서 징징거리며 로프승강기를 바라보는 정준하를 보는 순간 짜증이 폭발해 채널을 확 돌려버렸다. 이렇게 괴성까지 쥐어짜는 카메라 앞에선 캐릭터가 고갈될 수밖에 없다.

재치보단 캐릭터로 어필하려는 출연자들이 많다보니 또 생기는 문제가 캐릭터 중복이다. 영맨그룹인 하하와 노홍철은 둘다 똑같이 시끄럽게 까부는 뺀질한 후배로 나온다. 올드그룹인 정준하와 박명수도 하찮은 형이라는 이미지에서 중복이다. 노홍철이 정신 없이 까불고 나면 하하가 또 까불어 대고 박명수를 놀리고 나면 그 다음 정준하가 또 놀림감이 된다. 후배는 까불고 선배는 놀림감이 되는 장면들이 번갈아 중복되면서 장면들은 차별성을 잃었다.

내가 무한도전에서 인정하는 것은 두가지 정도다. 먼저 포맷. 무도의 포맷은 미국에서 수입해갈 정도로 평가할만하다. 웃어본 적은 별로 없지만 멤버들이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이 은근히 재미를 줄 수 있다고 느낀다. 그러나 포맷이 주는 재미에도 한계가 있다.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이 나오면서 무한도전 재미는 차별성을 잃기 시작하고 있다. 재미는 있는 거 같은데 웃기진 않더라는 말이 나온다. 자막도 한 몫했다. 자막은 출연자의 미세한 감정변화를 부각시키고 센스와 재치 부족을 잘 포장했다. 출연자들의 궁여책이나 궁여책조차 없어 노코멘트 한 것을 자막은 웃음으로 승화시켜 주었다. 그러나 자막이 언제까지 엔터테이너 실력이 부족한 출연자를 보호할 수는 없을 것이다. * 이렇게 보니 무한도전의 인기는 포맷과 자막을 만든 작가의 힘인 듯 하다.

무한도전에 대한 열광은 미국의 WWE(미국프로레승링)를 생각나게 한다. WWE는 실제 격투가 아니라 서로 짜고하는 싸움이다. 이 짜고치는 고스톱이 미국에선 엄청난 인기를 끈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인은 이러한 WWE의 인기를 이해 못한다. 어떻게 저런 거짓에 미국인들이 빠져드냐며 고개를 설레 설레 흔든다. 한국의 무한도전 열풍을 바라보는 내가 바로 이런 기분이다.  무한도전 캐릭터들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내겐 WWE 경기장의 미국인같다. 레슬러들의 과장되고 작위적인 연기에 환호하는 미국인처럼 무한도전의 재치부족한 출연자들의 궁여책을 캐릭터라고 받아들이며 즐기는 사람들이 내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3억 미국인이 좋아하는 걸 한국인들이 혀를 차봤자 별 수 없듯 나를 빼고 벌어지는 웃음이 불쾌하지만 그들이 좋다는 걸 어쩌쩌겠는가. "참 내! 저게 뭐 재밌다고" 하며 채널을 돌리는 수밖엔.



덧 : 무한도전을 처음부터 지켜봤다면 캐릭터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과정을 즐길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즐기진 않았지만 무모한도전 때부터 변해가는 과정은 대략적으로 지켜봤다. 가장 재밌던 것은 목욕탕 물을 퍼내는 식의 무모한 도전 때였다. 그땐 정말 배잡고 웃었다. 거기엔 작위적인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말도 안돼는 대결에 진지하게 매달리는 멤버들의 모습 그 자체가 너무 웃겼다. 그러나 무모한 도전이 너무 힘들었던지 얼마 후 실내게임 형식으로 바뀌었다. 이때부터 무한도전은 캐릭터에 너무 의존하면서 작위적으로 변해갔다. 재치있게 대응하지 못해 내지르는 고함과 괴성을 캐릭터라고 우기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무한도전이 보기 싫어졌다. 그때부터 카메라를 들이대면 센스있는 멘트가 아니라 캐릭터에 맞는 '징징거림'과 '고함'이 나왔다. 이걸 제작진은 캐릭터라고 합리화 했다. 새로운 웃음에 대한 노력보단 자기합리화로 팬들을 세뇌시킨 게 아닌가 싶다.

이런 말이 생각난다.

웃기지도 않는데 그게 왜 안웃기냐 물으시면 안웃기는걸 안웃기다고 했는데 안웃기는 게 뭐냐고 물으시면 웃기지도 않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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