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물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초량왜관에서 그나마 가장 뚜렸한 흔적을 남기고 있는 것이 바로 관수가다. 관수가는 거의 원형 그대로 보존된 계단뿐 아니라 계단 위 지적도에서도 그 흔적이 확인이 된다. 관수가 터의 현재 건물들은 관수가 돌담선을 따라 조성되어 있고 그 뒤 봉수대로 올라가는 계단(B지점)도 관수가 시대부터 있었던 계단이다. 관수가는 전문적인 연구자가 아닌 일반인의 눈으로도 그 흔적을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관수가 위치를 찍은 사진이 구한말부터 일제시대까지 꽤 남아있어 그런 건데 계단을 기준으로 사진들을 살펴보면 건물들과 주변 모양이 조금 바뀌었을뿐 관수가 터는 그 형태가 그대로임을 알 수 있다. 관수가 위치가 사진으로 많이 남은 것은 이후 그 곳에 관청 건물이 들어섰기 때문이다. 일본은 초..
부산에서 일본인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동네를 꼽으라면 단연 동광동이다. 동광동의 부산호텔은 일본인 전용호텔이라 할 정도로 일본인들이 쉴새없이 드나들고 거기서 부산데파트에 이르는 거리는 일본어 간판을 내건 상점들이 즐비하다. 일본인들을 위한 숙박시설과 상가가 밀집해 있는 건 지리적 잇점 때문만은 아니다. 동광동의 일본인 거리는 그보다 더 근원적인 역사적 유래가 있다. 1876년 조선을 강제로 개항시킨 일본은 년 50엔을 주고 부산에 일본의 전관거류지를 만들었는데 바로 그 거류지의 중심 지역이 지금의 동광동이다. 동광동에 거류민을 위한 일본영사관이 세워졌고 1910년 일본이 조선을 병탄하면서 영사관은 부산의 행정 중심인 부산부청으로 바뀌었다. 해방 후 부산을 찾는 일본인들은 그들이 익숙한 동광동을 먼저 ..
부산 용두산공원 올라가는 마지막 계단 입구에 보면 표지석이 하나 눈에 띈다.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이 표지석은 좀 뜬금없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부산의 랜드마크인 용두산공원 입구에서 기대했던 그런 표지석이 아니기 때문이다. 표지석엔 용두산공원과의 관련성을 알기 힘든 '초량왜관'이 박혀있다. 초량왜관과 용두산공원은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 표지석의 안내문에는 "용두산공원과 주변은 조선후기 초량왜관이 있었던 곳"이라고 적혀있다. 하지만 이 말을 실감하기란 어렵다. '초량왜관'이란 이름 자체가 대부분의 방문객들에게 생소한데다 용두산공원은 물론이고 그 주변에는 짐작해볼만한 초량왜관의 흔적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현재 초량왜관은 과거의 그림과 기록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다. 그중에서 가장 자주 소개되는 것 중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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