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부산엔 지역신문이 부산일보와 국제신문 두개가 있습니다. 둘 중에 국제신문을 주로 봅니다. 판매부수로는 부산일보가 앞서지만 국제신문이 더 재밌는 기획물이 많습니다. 국제신문 기사 중에 제가 반드시 놓치지 않고 보는 기사가 있는데 바로 충남대 서영교박사의 <전쟁과 시장>입니다. 




이 기사에서 서영교박사는 역사 속에서 전쟁이 어떻게 시장과 관계했는지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가 현대에 어떻게 이어져 오는지도 드러냅니다. 그의 기사를 보고나면 시장 없이 전쟁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전쟁은 시장의 산물인 겁니다.   




이번 주엔 임진왜란에서 조선군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철포에 대해서 얘기합니다. 처음 일본인에게 철포(조총)을 가르쳐 준 건 포르투칼인들이었습니다.




일본인들은 빨랐습니다. 포르투칼인에게 철포를 받은지 50년만에 유럽을 능가하는 철포를 만들어냅니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한창 때 일본의 철포 숫자는 유럽대륙 전체의 철포 숫자보다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철포의 보급으로 인해 일본의 전쟁에도 시장이 강한 영향력을 가지게 됩니다. 비싼 철포를 구입할려면 돈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전쟁으로 시장도 발달하게 됩니다.




일본에 철포가 들어온지 50년 뒤, 일본은 조선침략을 획책합니다. 그쯤에 대마도도주는 조선에 일본의 철포를 바칩니다. 조선과의 교역으로 이익을 얻는 대마도주로선 일본의 조선침략이 이익이 될리 없습니다. 대마도도주는 조선이 철포로 무장한다면 일본의 공격의지도 수그러들 것이라고 기대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조정은 철포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너무 불편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철포는 활보다 사거리도 짧고 연속으로 쏘기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불편한 철포에 일본인들은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요? 그건 철포의 조작이 쉽기 때문이었습니다. 활을 숙달할려면 몇년이 걸리지만 철포는 단기간이면 가능합니다. 조선조정은 단기간 대병력 양성이라는 철포의 진정한 위력을 몰라봤던 겁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의 철포 전투력을 직접 본 광해군은 철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1만 철포 병력을 양성했다고 합니다. 이때가 조선화력의 절정기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광해군은 유학자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조선은 현실주의자 광해군이 물러나고 다시 친중주의자가 날뛰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00년 뒤 조선은 다시 일본의 침략을 받고 정복 당합니다. 이 대목에서 현실주의자 노무현이 물러나고 친미주의 세력이 집권한 오늘의 현실이 오버랩되기도 합니다. 과연 친미주의 세력이 계속 집권하는 이 나라는 몇년 뒤 어떤 봉변을 당하게 될까?


아쉽게도 서영교박사의 연재는 12월29일 끝납니다. 지난 24일 서영교박사는 기사를 끝내면서 국제신문과 인터뷰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국제신문 인터뷰 기사 : 본지 연재 '전쟁과 시장' 마치는 서영교 박사

서영교박사의 국제신문 연재물은 지난 11월 전쟁기획자라는 제목의 책으로 엮여 나왔습니다. 서영교박사의 책처럼 재미와 가치를 동시에 가진 책도 드물어 보입니다. 자신있게 권해드립니다. 




반응형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