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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9시20분 서울발 부산행 KTX를 탔다. 도착지 구포역까지 2시간30분. 주간지 두 권 정도 보면 딱 맞는 시간이다. 부산에서 미리 준비해간 시사인과 한겨레21을 꺼내려고 가방을 뒤졌다. 그런데 아침에 다 못읽고 남겨둔 한겨레신문이 손에 걸린다.

정확하게 말하면 한겨레신문이 매주 목요일 발행하는 특별판 'ESC'다. 난 신문의 주요 면을 먼저 보고 버리고 특별판은 나중에 여유있게 보기위해 남겨두는 버릇이 있다. 아침에 KTX를 타기위해 역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신문의 주요면은 다 보고 선반에 올려두었다. 특별판은 서울 가는 열차에서 볼려고 했는데 일행과 얘기를 나누다보니 보지 못하고 서울까지 가지고 간 것이다. 

신문을 다 못 읽으면 꼭 그날 해치울 일을 못한 찜찜한 느낌이다. 빨리 훑어보고 잡지를 보기위해 한겨레 ESC를 펼쳐들었다.




올해의 인물 봉숭아학당

12월18일자(81호)는 연말이라 좀 특별한 내용이었다. ESC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을 뽑았고 ESC에 실리는 기사의 형식도 모두 인터뷰형식으로 꾸몄다. 신문 특집판이 특집판을 낸 것이다.

ESC가 선정한 올해의 인물은 봉숭아학당이다. ESC는 봉숭아학당의 박지선씨를 일일기자로 영입해서 동료연기자들을 인터뷰하는 잔꾀(?)를 부렸다. 


 

12명의 인터뷰를 경쾌하게 따라가고 있는데 11번째 박영진씨 부분에서 시선이 멈춰서버렸다.




헐~ 이럴수가. 개그천재다. 7살 때 개그를 구사하다 개그를 오해한 선생님에게 뻰찌를 당했다. 이어지는 말을 보니 농담이 아닌 사실이다.

이 대화 막판에 튀어나온 박영진의 멘트가 또 놀랍다. "난 웃기는 건 좋은데, 웃음거리가 되는 건 싫어했던 것 같아." 말문 막히게 하는 개그 참 신선하다 했는데 이 녀석 역시 뭔가가 있다.

 


마지막 12번째 인터뷰에 등장한 김병만은 바나나 하나 갖다주고 오는 데에도 웃길 게 너무 많다는 얘기를 한다. 그런 공간을 놓치는 후배들이 너무 안타까워 김병만 자신이 나선 것이다. 정말 개그의 달인이시다.

그런데 같은 날 민언련이 뽑은 최악의 프로그램은 개콘이었다. ^^;; ~~ 봉숭아학당은 아니었지만서두.




4면에선 독특한 여행을 하는 두사람을 소개한다. 손을 가리고 웃고 있는 여자분은 우리나라에 도보여행 유행을 일으킨 장본인 김남희씨고 옆의 남자는 다방을 찾아다니는 여행으로 눈길을 끈 유성용씨다.

물집 아물고 걸음 내디녔을 때 행복했죠.




김남희씨는 60일 동안 식빵에 잼을 발라 먹어가면서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유성용씨는 스쿠터 타고 다방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정말 다방 돌아다니는 자세도 제대로다.




ESC 5면의 이 연재는 내가 처음 "난 요리에 관심 없어." 하며 안보다다 나중에 그 재미를 알고 "왜 이 걸 몰랐지."하며 꼭 챙겨보는 요리사의 칼럼이다.




오늘 정말 흥미로웠던 것은 100g에 수십만원이나 한다는 외국의 소금가격이다. 더 놀라운 것은 한국 서해안의 천일염 맛이 이 고급 소금의 맛을 능가한다는 것이다. 이 글을 쓴 박찬일요리사가 혀를 걸고 보증한다고 한다.

원하는 걸 하게 인생은 짧다네




이 포스팅을 하게된 결정적 원인을 제공한 기사다. 야매상담가 김어준씨가 개인의 상담을 들어주는 연재물인데 이번엔 정혜신씨와 인생상담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다. 생각의 문을 열어주는  내용들이 많아 도움이 되는 기사인데 이번엔 정말 큰 거 하나 열어준다. 

김어준의 그까이꺼 아나토미


정혜신 : 불안이 없으려면 자기 확신이 있어야 하는데 자기를 느껴볼 수 있어야 자기 확신도 생긴다. 연애 등의 인간관계나 여행, 예술적 체험 같은 게 다 온몸의 세포가 살아나는 경험인데 우리는 이런 것들을 맨 뒤로 밀어놓는다.


정혜신씨의 이 멘트부터 글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김어준씨의 이 말은 본격적으로 자세를 바로잡게 하더니




후반부터 영감과 개념이 막 쏟아진다. "절대적으로 내가 나를 느껴서 얻는 게 자존감이라면, 자신감은 외적 조건에 의해 결정된다." 이 부분부터는 몇번을 리와인드해서 읽었다. 이거 왠만한 책 한권 읽은 것보다 더 큰 걸 얻었다.




9면은 공지영씨 에세이다. 차한잔 마시는 이 아주머니의 우아한 모습에 절로 글에 눈이 갔다. 확실히 남자의 입장에서 여자의 글은 상상력을 더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내가 마냥 혹해서 공지영씨 글을 본 건 아니다. 한겨레신문에 연재된 착한 여자는 그녀가 누군지도 모른 채 표현 하나 하나에 감탄하며 정신 없이 읽었다.   

아쉽게도 공지영씨의 에세이는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끝난다고 한다. 다음에서 소설 연재를 시작하더니 에세이까지 쓰기 힘든 모양이다.

공지영의 아주 가벼운 깃털 하나




절대 놓치지 않는 기사다. 방송관계자 두 사람이 나와 지난 방송을 두고 대화를 나누는데 드라마나 예능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참여자가 아니면 모르는 사실들을 알게 해주는 기사라 꼭 챙겨본다. 

이번 주엔 '골드미스가 간다'의 김재혁피를 불러 방송칼럼니트스 정석희씨와 시나리오작가 신광호씨가 대화를 나누었다. 두 대담자가 집중적인 대화가 아니어서 그런지 이번엔 재미가 좀 덜했다. 

너 어제 그거 봤어?

11면까지 다 보고 12면 광고를 확인하고 보니 열차는 대구 부근까지 왔다. 약 1시간 40분 동안 한겨레신문 ESC를 읽었던 것이다. 12면 짜리 신문에서 너무 많은 걸 챙겼는가보다. 머리가 무거워져 다른 잡지를 읽을 수 없었다.

한겨레신문 ESC가 왠만한 잡지 두권 값을 하는구나. ESC 때문에 한겨레는 끊을래야 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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