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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 하나 할까요? 얼마 전까진 저는 물이 어떻게 범람하는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물이 높아지니 낮은 지대로 흐른다는 자연적 법칙은 알겠는데, 왜 사람들이 하필 그런 낮은 지대에 살고, 왜 21세기 과학으로도 물길을 돌리지 못하는지는 의아했습니다. 범람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던 건 인문과 역사로 습지를 돌아본다는 <습지와 인간>을 읽고나서였습니다.

과거 강 유역의 땅은 물이 항상 드나들던 습지였습니다. 인간은 이런 습지에서 식량을 얻고 교통의 편의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던 인간이 물의 접근을 차단하면서 강 유역의 땅이 점차 육지화 되었고 강줄기의 경계는 확실히 구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물은 인간의 경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퇴적층이 바닥을 높이고 홍수가 수위를 올리면서 물은 다시 그 자리로 흘러들어왔습니다. 물과 뭍의 그간 미루어져 왔던 교섭의 폭발하면서 범람이 일어났던 겁니다.    

아는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범람의 의미를 알고 뭔가 보일 것 같으니 실제 물과 뭍이 교섭해서 만든 모습들이 궁금했습니다. 책이 얘기해준 역사와 자연현상들이 그 땅에서 어떻게 재현되고 있는지 보고싶어졌습니다. 내가 이해한 것과 현실의 모습들을 대조해보고 싶어졌습니다

<습지와 인간>의 저자인 경남도민일보 김훤주기자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소벌(우포)을 같이 둘러보고 책의 설명을 듣고 싶다고 하니 흔쾌히 허락했습니다. 저와 저자 둘만의 답사라면 호화답사 관광입니다. 조금 낮추었죠. 그 전에 부산경남지역의 블로거분들께 같이 답사하자는 제안을 드렸고 두 분이 제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11월4일 오전 9시 마산의 경남도민일보 본사에 저 커서,  실비단안개, 파비 그리고 김훤주기자 이렇게 4명이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날 오후 6시까지 8시간 동안을 저자와 함께 책 <습지와 인간>을 발로 읽었습니다.


푸른우포사람들 홈페이지에서


먼저 소벌에 대한 간단한 설명부터 드리고 여행을 시작하겠습니다. 소벌(우포)은 4개의 습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일하게 분리되어 형성된 모래갯벌(사지포), 가장 큰 소벌(우포), 호수의 모습을 보여주는 나무갯벌(목포), 그리고 제일 작은 쪽지벌입니다.

소벌은 토평천과 낙동강에 의해 만들어 졌습니다. 오른쪽 끝부분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은 소벌을 적시고 낙동강으로 흘러갑니다. 낙동강의 자연제방은 해발고도가 14-17미터로 소벌의 해발고도 9미터보다 높아 홍수시 역류한 낙동강 물이 토평천을 따라 소벌습지로 물을 공급하게 됩니다.




지도의 빨간 선이 우리 일행의 여행 경로입니다. 김훤주기자는 책의 내용 그대로 우리 일행의 습지여행을 창산교에서부터 안내했습니다. 




창산교를 경계로 아래 쪽은 습지보호구역이고 차가 보이는 위쪽은 습지보호구역이 아닙니다. 그래서 위에선 낚시가 가능하지만 아래쪽에선 낚시를 하지 못합니다. 다리 왼편의 자동차는 낚시꾼이 타고 온 것입니다.

김훤주기자는 이런 식의 습지관리에 문제가 있다고 합니다. <습지와 인간> 57-58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물고기도 씨를 말려선 안된다고 했습니다 전국장은 창산다리에서 쪽지벌이 끝나는 지점까지 보전지역에서 하는 어부들의 고기잡이는 금지가 돼 있지 않지만 그것이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고 했습니다.홍수가 나면 여지없이 낙동강이 토평천으로 역류를 하는데, 이때 보전지역 바깥에서 사람들이 그물을 쳐서 오가는 물고기를 싹쓸이 하다시피 잡는다는 것입니다. "다리 위에서 그물을 칩니다. 물고기들에게 범람은 한 해 몇 차례 안되는, 옮겨 다닐 수 있는 기회입니다. 그런데 낙동강에서 소벌로, 소벌에서 낙동강으로 오가는 물고기들이 죄다 그물에 걸립니다. 생물 다양성 유지 확보에 좋은 구실을 할리 없습니다.





이 제방은 일제시대 때 세워진 인공제방입니다. 우리 일행은 이 제방 위로 이동하며 소벌여행을 했습니다.  
 



제방이 생기기 전에는 이 일대가 모두 습지였다고 합니다. 제방이 생기면서 오른쪽에 논밭이 만들어졌고 집들도 아래쪽으로 내려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2003년 태풍 매미 때 이 일대에 다시 물이 들었다고 합니다. 제방이 무너져 토평천의 물이 여기로 쏟아졌던 것입니다. 김훤주기자의 친척분이 이때 직접 그 물을 경험하셨는데 그분 말씀에 따르면 물이 서서 오더라고 합니다.   




멀리 제방의 물을 조절하는 양배수장이 보입니다.




이런 싹들이 물이 차면 녹았다가 땅이 마르면 다시 돋아난다고 합니다.




부들입니다.




쏘세지같이 생겼는데 동강 내니 솜같은 씨앗들이 쏟아졌습니다.




억새가 햇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습니다.




우리 일행은 이 길 앞에서 한동안 멈춰섰습니다. 억새와 다리가 카메라를 갖다 대면 그림이 된다는 바로 그 경치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김훤주기자는 습지를 많이와서 그런지 우리가 탄성을 지른 경치엔 이제 그리 감흥을 못느낀다고 합니다. 대신 여인의 젖가슴같은 봉긋함이 느껴지는 이 버들들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저는 점묘화 그림을 보는 느낌이라니 그도 맞겠다며 맞장구를 쳐줍니다.




이제 넓은 소벌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습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파비님과 실비단안개님입니다.




군데군데 이런 크고 작은 물웅덩이가 있습니다. 습지를 많이 본 적 없으니 습지의 이런 자연스런 모습이 이국적으로 보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습지를 구경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분들은 단체로 오셨습니다.




모래벌(사지포)입니다. 이 늪은 "토평천과 물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수위가 인공으로 조절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수위변화가 적어 물풀이 잘 자랍니다. 멀리 연이 보이는데 연은 사람이 심어야 자란다고 합니다.




넓고 다양한 소벌의 모습입니다. 멀리 김훤주기자가 좋아한다는 버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버들은 육지화의 증거라고 합니다. <습지와 인간> 49페이지를 보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토평천은 여기 이 소벌에서 갑자기 넓어지는 바람에 흐름이 느려집니다. 흐름이 느려지니까 상류에서 떠내려온 것들이 두툼하게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육지화를 일러주는 버들이 새롭게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소벌은 육지화가 진행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건 습지의 자연스런 현상으로 막을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습지보호는 이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하자는 거지 막자는 건 아니라고 합니다.




소벌을 한눈에 볼 수 있는데 위치한 250살로 짐작되는 팽나무라고합니다. 낙동강 바람 때문에 많이 크지는 못한 것 같다고 합니다. 김훤주기자는 이 나무 아래서 소벌을 바라보면 머릿속이 말끔히 비워지는 느낌이 든다고 합니다. 책 50페이지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팽나무 아래에서 바람을 맞으며 조용한 늪을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이 말끔하게 비워지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 것입니다. 저물녘에는 낙동강 쪽으로 해가 블그스레하게 지는 모습도 있습니다. 캄캄해지면 머리 위로 맑게 빛나는 별들을 헬수도 있는데요, 때로는 반딧불이 앵앵거리는 불빛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캄캄한 밤에 딸을 데려와서 소벌을 가만히 느껴본적이 있는데 정말 잊지못할 경험이었다고 합니다. 고요함과 캄캄함 속의 빛나는 반딧불을 보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살아가면서 이런 순간을 몇번 만날까요?  




제방을 내려 소벌에 좀더 가까이 가자 따끔함이 느껴졌습니다. 풀 사이로 대추나무들이 솟아있었습니다. 이 대추나무들이 소벌을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몰래 들어가려다 들킨 사람처럼 가시나무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어 아픔도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소벌을 지키는 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옷에 살짝 붙었는데 아주 따가웠습니다.




소벌 너머로 멀리 토평천이 발원한 화왕산이 보입니다.





이 그림을 보면 왜 소벌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위쪽이 소벌늪이고 아래 쪽이 나무갯벌입니다. 그 사이에 푸른 땅이 무엇으로 보이십니까? 지금 찍어놓고 보니 개로도 보이는데 옛 사람들은 저걸 보고 소의 머리라고 했습니다. 소의 목에 해당하는 곳은 소목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거룻배가 보입니다. 아래 그물도 보입니다.




바로 그 아래 물새들이 놀고 있습니다.




나무벌에서 본 화왕산입니다.



어업허가를 받은 5집이 나무벌에서 고기를 잡아 팔고 있다고 합니다.




소목마을 사람들이 한소리 했을까요? 여기엔 우포가 아닌 우포의 원래 이름 소벌이 적혀있습니다. 그 옆으로 우포가 적힌 장승도 있었습니다.




햇빛을 받아 황금빛을 내는 개구리밥입니다.




이 황금빛 바닥을 쇠오리가 지나갑니다.




나무벌의 새들




나무 위에 비닐이 걸려 있습니다. 소벌엔 이렇게 나무 위에 뭔가가 올라가 걸려있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김훤주기자는 처음 바람에 날려 걸린 걸로 생각했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라 매년 물이 찰 때 나무 위의 수면을 지나가다 걸린 것이라고 합니다.




나무벌은 4개의 습지 가운데 물이 가장 깊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호수같은 분위기를 풍긴다고 합니다.





이름은 모르겠습니다.




두 새가 스쳐지나가는 모습이 재밌습니다.




나무벌 뒤로 소벌이 보입니다.




화왕산에서 발원한 토평천이 드디어 낙동강에 도착했습니다. 바로 여기가 또 다른 소벌의 시작 입니다. 여기서 역류한 물이 드넓은 소벌을 채웁니다. 토평천의 끝이 바로 소벌의 시작인 것입니다.

왼쪽에 파비님이 보입니다.




내년 여름 저 낙동강 물이 또 소벌로 올라올 것입니다.

낙동강 앞에 선 김훤주기자입니다.




토평천의 물을 만져보고 있는 실비단안개님입니다.




나오면서 개간공적비를 보았습니다.




당시 개간에 참여하며 땀 흘리셨던 분들은 습지를 보전하자는 람사르총회를 보고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궁금해집니다. 20년이면 그리 긴 시간도 아닌데 습지를 보는 시각이 확 달려져 버렸습니다.




김훤주기자와 함께 한 8시간은 참 신기했습니다. 그의 책 내용이 그대로 눈 앞에 펼쳐지는 걸 보면서 퍼즐을 맞추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습니다. 김훤주기자도 그랬다고 합니다. 조경학자와 습지를 돌아다니다 그가 말하는데로 펼쳐지는 풍경에 놀라고 재밌었다고 합니다.

마지막 6시 30분 쯤 모래벌의 석양을 마지막으로 보고 마산으로 향했습니다. 이날 김훤주기자와 8시간 동안 발로 읽은 책은 37페이지부터 67페이지까지 30페이지 분량입니다. 그래도 집에와서 보니 못 읽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또 기회가 되면 자연의 퍼즐을 맞추러 나가봐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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