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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에 연재되는 안도현시인의 <시와 연애하는 법>이라는 시작에 관한 연재물입니다. 이 연재물을 첫회부터 꼭 챙겨보고 있습니다. 시작에 관한 글이지만 그외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많은 깨우침을 줍니다.




지난 목요일 기사에선 안도현시인 자신이 어떻게 시를 완성하는가를 독자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안도현시인의 시는 메모의 힘이었습니다. 안도현시인은 볼일을 보는 상황에서도 시상이 떠오르면 아내에게 메모지를 달라고 할 정도로 열성적인 메모광입니다.

안도현시인은 이렇게 메모한 것을 "반드시 컴퓨터 속에 있는 '신작시'라는 파일에다 옮겨둔다"고 합니다. 이 파일 안에는 "7-8년 전에 메모했으나 아직 시로 날개를 달지 못한 것들도 수두룩하다"고 합니다.




얼마전 고재열기자가 부산에 내려와 경남도민일보까지 안내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고재열기자의 메모습관이었습니다. 부산에서 마산까지 1시간도 안걸리는 제 차 안에서 고재열기자는 수첩을 넣었다 뺐다를 수십번도 더했던 것 같습니다.

뭔가 떠오른 기사감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골몰하다가 수첩을 찾고, 다시 수첩을 넣고 생각에 잠기다 또 수첩을 찾는 모습을 여러번 보여주었습니다. 저와의 대화 중에도 뭔가를 캐치한 게 있었는지 수첩을 찾아 적는 모습을 몇번 보여주었습니다. 짐작컨데 수첩도 한 개가 아닌 듯 했습니다. 가방을 여기저기 뒤지는 걸로 보아 메모도 분류하여 적는 것 같았습니다. 

저의 경우 예전엔 글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그 자리에서 앉아 적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디어 한개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보통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디어를 부풀리고 또 연결할 아이디어를 떠올리느라 대여섯시간이 넘게 앉았던 적이 흔했습니다. 그렇게 서너시간 공을 들이다 포기한 글도 적잖았습니다. 

처음 블로깅 할 때도 이런 식의 글쓰기였는데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매번 블로그에 글 하나 올리려고 머리를 쥐어 뜯으며 서너시간 앉아 있으려니 몸이 버텨낼 것 같지 않았습니다. 이래서는 지속적인 블로깅이 불가능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오히려 그 아이디어에 혹사당할 몸이 생각나 아이디어가 두려웠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블로깅 하다 죽지 않기 위해 메모를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아이디어를 바로 쓰지않고 메모해놓고 그와 관련된 생각들을 붙여나갔습니다. 그러다 메모가 어느 정도 붙고 글이 익었다 싶으면 글을 적었습니다. 

이렇게 글쓰니 뭔가 한번에 이루어지는 통쾌한 맛은 좀 덜했습니다. 그러나 정말 효율적이고 건강한 글쓰기였습니다. 하루에 한번 힘들었던 글쓰기가 이렇게 시스템화를 하니 2-3개도 가능했습니다. 적당한 글이 없던 날은 메모를 펼쳐놓고 그 중 쓸거리가 가장 풍부한 걸 골라 올리곤 했습니다. 이 포스트도 그중 하나입니다.




메모를 함에 있어서 블로거와 시인은 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블로거는 안도현시인처럼 아이디어를 느긋하게 묵힐 수만 없습니다. 시는 7-8년이 지나도 써먹을 수 있지만 블로깅의 아이디어는 며칠 또는 몇달만 유효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시인처럼 메모를 하고 익히기도 하지만 그 기간은 제한이 있는 게 블로그 포스팅입니다. 




이 기사의 마지막 부분엔 안도현시인의 글쓰기에 대한 고백이 있습니다. 시 하나를 두고 "칭피할 정도의 별의별짓을" 다하는 자신을 "쩨쩨하고 치사한 사내"라고 얘기합니다. 안도현시인께서 쩨쩨하고 치사하다면 저 같은 사람은 뭐라고 말해야할지. 저는 글쓰기가 편집 그 자체입니다. 일필휘지는 절대 없습니다.

그런 생각도 합니다. 안도현시인의 마지막 부분은 글쓰기의 어려움이 아니라 글쓰기와 영상물의 공통점을 말하는 건 아닐까 하는. 문단과 문단을 이어붙이는 과정이 영상물 편집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이미 우리는 영상물 시청을 통해 은연 중에 글쓰기를 배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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