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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봐봐. 여기 덕천동 아이가?"

요즘같은 세상에 티브이에서 아는 데 나왔다고 부르는 동반자의 호들갑이 좀 귀찮았습니다. 건성으로 "어" 하면서 신문 보던 눈을 살짝 들어 봐주는 척 했습니다.

화면 속엔 한 아주머니가 아주 숙련된 모습으로 카메라를 들고 아들로 보이는 장애인의 뒷모습을 찍고 있었습니다. 시늉만 하려던 눈은 이 특이한 장면에 멈춰 버렸습니다.

"60 가까운 아줌마가 카메라 잡는 자세가 장난 아니네."

어느새 나는 동반자와 같이 이 프로그램을 시청하며 대화까지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보고 말았습니다. 

다음 예고편에선 어머니에게 카메라를 맡겨 영상을 찍던 그 장애인이 다른 장애인 여성을 만나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장애인이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은 얘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신선한 내용이었습니다. 

 


10월25일 오늘 부산에서 블로거모임이 있었습니다. 12분이 참석했는데 그 중엔 미리 알리지 않은 세분의 손님이 더 있었습니다. 블로거 '세미예'님이 모시고 오신 미디어 활동가들이었는데 이들 중 두 분은 장애인이셨습니다.

중간에 흰 옷을 입은 남자장애인이 어디서 낯이 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디 사시냐고 물으니 덕천동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동반자와 함께 본 다큐가 생각났습니다. 혹시 최근 방송에 나온 적 없나고 물으니 맞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이분이 바로 장애인영화제 폐막작 <제제에게 가는 길>의 강우영감독입니다. 그의 영화 <제제에게 가는 길>은 내가 봤던 그 다큐에서 그의 애인을 찾아가는 길을 영상에 담은 얘기였습니다.

* 강우영감독과 그의 영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세미예님 블로그에 잘 나와있습니다.




강우영감독 소개 순서가 돌아왔습니다.   

앞에서 말하는 사람은 청중 중 누군가와 눈길을 마주쳐 호응을 얻곤합니다. 강우영감독도 말하는 중 그런 눈길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마주 앉은 내가 그 눈길을 피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왜 그랬을까? 강감독에게 내 불편한 인상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였던 것 같았습니다. 강감독의 알아듣기 힘든 발음에 내 인상이 이그러졌습니다. 이러면 안되지 했는데 그건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나만 그랬을까? 만약 모두 나와같은 반응이었다면 그래서 마주칠려는 강우영감독의 눈길을 모든 사람들이 피했다면?

얼마뒤 파비님의 내 고민에 답이 될만한 말을 했습니다. 하재근씨의 강연에서 들었다면서 핀란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교육받는다는 사실을 파비님이 얘기해주셨습니다.

난 훈련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평소에 강감독같은 장애인들을 대할 일이 없으니 익숙하지 않은 내 귀와 몸의 반응을 나도 어쩌지 못했던 것입니다. 




블로거모임 하루 전날 모임의 장소를 문의하는 한통의 전화가 왔습니다.

"거다란선생님이시죠."

60대는 넘은 것 같은 여성의 목소리였습니다. "노인네가 가도 되냐"는 식의 물음이 있어 당연히 블로거면 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연세를 물어 봤습니다.

"낼 모레 80이예요."

그럼 70대 후반? 내가 아는 블로거 중에는 최연장자였습니다. 그리고 할머니 블로거는 처음이었습니다.

아쉽게도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서 오래있진 못하셨습니다. 참석자들과 20여분 명함과 인사를 나누고 가셨습니다. 

블로그 사용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 주변에 없어 블로거모임에 찾아오셨다고 하셨는데, 나중에 한번 시간을 내서 꼭 뵙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블로그를 보니 2006년에 첫 글을 올리셨는데 그때가 77세였습니다. 사실 처음 뵙고 "낼모레 80이예요." 하신 말이 과장해서 하는 말인줄 알았습니다. 실제 뵈니 주름없이 고운 얼굴이 많아봐야 70대 초반 정도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올해 79세로 정말 낼 모래 여든이셨습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낼모레 수능을 앞둔 고등학생부터 여든을 앞에둔 할머니까지 함께 한 부산의 블로거모임은 여태껏 참석한 블로거모임 중 가장 다양한 구성을 자랑하는 모임이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다보니 쏟아지는 얘기들도 재밌었습니다. 자기소개만 듣다보니 이날 예정한 두시간이 모두 흘러버렸습니다.

참석하신 분들의 다양한 자기소개는 다음 모임을 기대하도록 만들었습니다. 특히 강우영감독과 '깊은산'이란 아이디를 쓰시는 할머니 블로거 두분이 다음 모임에 대한 기대를 더 높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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