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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오래 하더군요. 두어 시간 하고 보내줄라나 했는데 거진 4시간이 넘더군요. 지쳤습니다. 수사관도 지치죠

처음엔 약간 긴장을 했는데 수사관이 고압적이진 않더군요. 하지만 아무리 성격 좋아도 시간에 지치면 짜증이 나는 법이지요. 수사관의 미간이 간혹 찌푸려지더군요.

나중엔 옆에서 지켜보던 분이 충고를 해주더군요.

"좋다고 하셨죠. 어떻게 좋다는 말이죠"

그때 알았습니다. 막연한 형용사는 쓰면 안된다는 거. 수사문은 정확해야 한다는 거. '어떻게' '왜'라는 의문이 더 이상 붙지 않도록 진술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제가 말하는 문장을 낱낱이 분해했습니다. 더 이상 부연 설명이 필요없도록 진술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니 수사가 좀 빨라지는 것같았습니다.

내 머리 속까지 뒤집고 재단하는 그들의 수사가 불쾌하긴 했지만 그게 그들의 일이라 생각하고 이해했습니다. 마치 발가벗긴 채 누군가 앞에서 4시간 서있다는 기분이 들었지만 마지막에 가벼운 인사를 하고 나왔습니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나같은 시민이 감수하는 불편이 진짜 범죄자를 잡는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국가의 원활한 공무수행을 돕기위해 이정도 쯤은 도와야 한다고.

12월 5일 오늘 검찰의 BBK 수사 발표가 있었습니다. 이명박후보가 무혐의를 받았더군요. 어떤 수사가 있었는지 검찰의 발표를 살펴보았는데 제가 받은 수사와 좀 다르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장춘대사가 밝힌 이명박씨 명함과 방송과 언론에서 한 각종 인터뷰에 대한 해명이 어느 정도 있을 줄 알았습니다. 이명박측이 서면질의에 응했다고 하니 그 부분 검찰에서도 안물어볼리 없다고 생각했죠.

다스가 거의 초면이다시피한 청년 김경준에게 190억을 투자하게 된 과정도 납득할만한 설명이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간 상대의 주장에 따르면 다스는 김경준을 만난지 몇시간만에 190억이라는 거액을 투자하는데 그건 일반적인 상식은 아니었습니다.

김경준씨가 BBK가 100% 자신의 회사라고 주장했다고 하더군요. 그 진술에 따라 BBK 이명박 소유 의혹은 무혐의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김경준씨가 BBK투자금 30억을 어떻게 구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사무실 사람들이 모두 김경준씨의 지시였다고 증언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무실사람들은 이전부터 이명박측의 주장에 동조했던 사람들입니다. 검찰이 이 사람들 증언의 객관성은 신뢰한 근거가 무엇인지 얘기해줄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없더군요. 명함과 인터뷰에 대해선 어떤 언급도 없었습니다. 다스가 190억을 투자한 이유는 여력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떤 여력을 말하는걸까요. 김경준씨가 투자했다고만 있지 그 투자금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없었습니다. 회사직원의 증언이라면서 그 증언을 신뢰할만한 어떤 근거도 밝히지 않았습니다.

만약 제가 이 수사를 받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제가 명함의 출처에 대해 대답안하고 수사실을 빠져나갈 수 있었을까요. 190억이 여력이 있어서 투자했다는 말에 수사관이 순순히 도장을 찍도록 했을까요. 수사문에 '여력'이란 불분명한 단어가 어떻게 쓰일 수 있죠. 돈이 나온 출처도 말안했는데 투자했다고 믿어줄까요. 직원들이 그랬다니깐요 그러면 "아 그러세요"하고 무혐의라고 썼을까요.

이런 수사문을 들고가면 위에서 과연 결재를 해줄까요. 명함출처야 알 필요 없고 여력이 있으니 됐고 30억 투자했으면 됐지 걔돈 우리가 알바 아니야 그러고 직원들이 다 착하네 증언도 잘해주고 하면서 수사문에 오케이하고 도장을 찍어줄까요.

검찰이 아니라 일반 회사에서도 이런 보고서엔 도장이 안찍히는줄 알고 있습니다.

제가 받은 수사와 이 수사는 질이 다른 건가요. 사람이 달라서 그런건가요. 아님 제 죄가 너무 중해서 그런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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