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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경찰에서 전화가 왔다. 선거법을 위반했으니 경찰로 출두하라는 것이다. 내가 쓴 글과 퍼올린 글이 선거법을 위반했다고 한다. 생전 처음 경찰로부터 받은 출두전화였다. 솔직히 처음 며칠간은 밥맛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걱정이 되었다.  

선거법은 나름대로 고려하고 있었다. 선거법 기간도 숙지하고 있었고 해당 정치인에 대한 무리한 비판은 삼가했다. 그리고 당시 내가 퍼올린 글은 필자들의 허락을 맡고 팀블로그에 올리는 글이었다. 푼게 아니라 글을 이동한 것이었다. 문제될 게 없다 생각했는데 출두전화를 받은 것이다.

처음엔 정당 또는 정치인이 고발한줄 알았다. 아니라고 한다. 선관위도 아니었다. 검찰의 인지수사였다. 선거기간이 아니라면 명예훼손으로 당사자가 직접 고발해야 하지만 선거기간 동안 이루어진 비판은 공적인 선거에 영향을 끼치므로 검찰에서 인지수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런 법적 논리를 그때서야 알게 되었다.

처음 수사를 받고 탈진할뻔했다. 많아야 두세시간이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오후 1시쯤 갔는데 앞에 온 사람 수사받는 거 마저 구경하고 내 수사를 끝마치니 오후 7시를 넘겼다. 아주 기본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수십페이지 분량의 문장에서 불분명한 부분을 제거해가는 게 수사문이었다. 그런 수사를 몇시간 받고나니 몸이 내 몸이 아니었다.

죄지은 게 없으면 아무 문제 없는 게 수사인줄 알았는데 내가 겪어본 수사는 그게 아니었다. 수사는 피의자와 수사관의 대결이었다. 수사관의 문장해석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기위한 의도성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에 맞선 피의자인 나는 그 의도성을 부정해야했다. 이 수사관과 피의자의 주관적인 해석 대결에서 이기기 위해선 논리도 있어야하지만 기세도 필요했다. 그러나 수사받는 위치에서 기가 실릴리 없다. 수사는 백프로 피의자에게 불리한 대결이 될 수밖에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내가 쓴 글에 대해선 혐의를 벗을 수 있었다. 너무 쉬웠다. 그 글은 내가 쓴 게 아니라 누군가를 인터뷰한 것이었다. 그 글을 기소하려면 좀 복잡한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팀블로그를 운영하면서 글을 이동한 것에 대해선 그들을 이해시킬 수 없었다. 팀블로그로 글의 이동이라는 걸 그들은 이해하지 못했다. 사실 수사를 위해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여러 필자들의 글을 이동시킨 것은 기술적으로 퍼올린 것이고 법의  펀 글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십여개의 글이라 그 모든 내용에 대해 의도성을 변론하는 것은 무리였다. 결국 기소되었고 재판장도 그런 팀블로그의 특수성에 대한 고려를 하지 않았다. 결국 벌금형을 맞았다.

얼마 전 혜진·예슬법이란 이름의 법이 생길뻔 했다. 유괴살해된 두 초등생의 이름을 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해야한다며 붙인 이름이었다. 그러나 부모들의 반대로 혜진·예슬이란 이름을 붙이진 못했다. 혜진과 예슬의 아픈 기억을 사람들이 떠올리는 게 싫다는 부모들의 반대로 이름을 붙이지 못했다.

이처럼 사람의 이름을 붙이는 법의 경우 희생당한 이름의 사람이 다시는 없어야 된다는 사회적 결의를 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엇그제 여당이 제안한 최진실법도 혜진·예슬법의 명명과 취지가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름을 붙인 두 경우의 상황은 전혀 같지 않다. '혜진·예슬'의 경우 두 어린이를 유괴하여 살해한 범인이 존재한다. 그러나 '최진실'의 경우는 타살이 아닌 자살이다. 최진실씨의 자살이 정신적 충격에 의한 것이라해도 그 충격을 불러온 것이 무엇인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법의 이름을 최진실로의 명명은 범죄를 예방할 강력한 법적 규제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니라 법을 추진할 구실로 최진실씨 이름의 이용으로 보였다.

앞서 나는 선거법 판결의 벌금을 내면서 판결에 수긍하진 않았지만 크게 분해하지 않았다. 선거법에 우리 사회의 공익적 취지도 있다며 일부 이해했다. 인터넷 여론을 제약하는 악법적 요소가 있긴 하지만 그런 악법적 요소도 누구나 지켜야할 룰로서 선거의 공정성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분을 삭였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내가 분해하지 않은 이유는 이 법이 한시적이라는 것이다. 선거기간만 끝나면 나는 또 정치인들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 비판할 수 있다. 내가 쓴 글이 언제나 영원히 검찰과 경찰의 수사대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최진실법이 통과되면 나와 같은 이런 여유도 가질 사람이 있을 것 같지 않다. 인터넷에 글을 적는 사람들은 이제 모두 언제라도 검경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누구나 내가 겪었던 저 수사와 재판 과정을 기간에 상관없이 겪을 수 있다. 인터넷은 소통의 세계가 아니라 언제라도 범죄자가 될 수 있는 위험한 세계가 되버리는 것이다. 선거기간만 참아서 될일이 아니다. 과연 이런 법에 순순히 분이 삭여질까?

걱정되는 건 최진실이다. 만약 그때 이 법의 이름으로 쓰이고 있는 최진실을 사람들은 어떻게 부를까? 실제로 최진실법에 의해 기소되거나 기소될 위험에 놓인 사람들은 이 법을 어떻게 부를까? 지난 선거에서 네티즌들의 선거법에 대한 비난은 아주 거셌다. '선거법은 가라', '선거법은 악법', '선거법은 쓰레기법', '선거법이 네티즌을 죽인다.', 등 선거법에 대해 거친 감정들을 드러냈다. 이 선거법보다 더 악법이 최진실법이다. 이 법의 최진실이란 이름 앞에 네티즌들은 어떤 말들을 덧붙일까? 그 말을 듣는 지인과 가족들은 어떤 기분이 들까?

최진실법은 결국 최진실을 욕먹이는 법이 될 것이다. 최진실을 욕되게 하는 자는 과연 누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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