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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bs.movie.daum.net/gaia/do/movie/menu/star/photo/read?articleId=65781&&bbsId=P001


다음 메인에 올라온 한 영화배우의 탈모를 화제 삼은 게시물이 눈에 걸렸다. 외모, 특히 탈모를 얘기 꺼리로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얘기를 메인에 올려 네티즌의 눈길을 사로잡는 포털의 행태도 늘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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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보니 나와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꽤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국사회의 탈모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비판하고 이런 게시물을 메인에 배치한 다음에 반감을 표시하는 댓글들이 적지않았다.

달라진 반응이다. 예전에는 탈모를 화제거리로 삼으며 웃고 떠드는 댓글이 대부분이었다. 탈모 관련 게시물에서 이런 심각한 분위기를 느끼게 될지 몰랐다. 이 정도라면 조만간 탈모 관련 게시물을 올리는 건 실례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동안 못만났던 친구의 결혼식에서 친구를 못찾아 잠시 헤멘 적이 있다. 분명히 식장 게시판엔 친구의 이름이 있는데 친구를 찾을 수가 없었다. 와이프가 "저 사람 아니야?" 하며 한 사람을 가리켰다. 아닌 거 같은데 하며 고개를 돌리려다 다시 찬찬히 보았다. 녀석이 가발을 쓰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가발이네." 해놓고 누가 들었나 싶어 급히 주변을 둘러봤다.

얼마전 그 친구를 또 만났다. 술을 먹다 가발 얘기를 물어보게 되었다. 아직 와이프에게 가발을 얘기하지 않았단다. 결혼한지 5-6년이 지난 마당에 두려워서 말하지 않는 것은 아니란다. 와이프도 눈치는 챈 거 같은데 그냥 서로 모른 척 하고 지낸다는 것이다.

넘 얘기 할 거 없다. 나도 위 영화배우나 친구랑 같은 처지다. 군대 다녀온 뒤부터 조짐을 보이던 머리는 30전후해서 완연해졌다. 탈모의 낌새를 눈치 챈 친구들이 그때부터 수시로 머리를 화제삼아 놀려대거나 걱정스럽다는 식의 얘기를 자주해왔다. 둘 다  싫었다, 놀리는 거야 당연히 싫었고 걱정해주는 것도 못지않게 싫었다.

남의 머리에 관심을 가지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뚱뚱한 사람은 자신의 비만을 걱정하고, 삐쩍 마른 사람은 앙상한 체형을 고민하고, 머리 빠지는 사람은 탈모를 고민한다. 이렇게 상대가 불편해하는 개인적인 것에 관심을 가지거나 나서서 걱정해주는 것은 인간이 사는 사회라면 어김없이 실례에 해당되는 것이다. 부부끼리도 탈모를 모른 척한다. 상대가 불편해 하는 개인 적인 것엔 관심을 아예 안나타내는 게 최고의 예의다. 그런데 이노무 나라는 뭘 잘못처먹었나 그런 개념이 별로 없는 인간들이 상당히 많았다.

만나는 사람들은 가끔 하는 얘기지만 듣는 사람은 하루에도 몇번씩 듣게 된다. 한 두 번도 그냥 넘겨지지 않는 소린데 매일 여러번 들어보라. 심리적 장애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다. "대머리만은 제발 아니었"으면 하는 여성들의 우스개 섞인 티브이 인터뷰는 20대의 탈모자에 며칠밤의 고민거리를 안긴다.

도대체 그들은 왜 이렇게 기본적 예의가 없는 걸까? 그런 처지에 있어서 생긴 습성인지 모르나 나는 타인이 불편해하는 것을 조심한다. 아픈 사람에게도 안색을 얘기하지 않는다. 안색이 좋으면 말해도 좋지않으면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타인이 심적 부담감을 느낄만한 것들은 삼가한다. 

타인의 불편해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떠드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경쟁지상주사회인 한국에서 경쟁자이기도 한 상대의 기를 죽여놓고자 하는 욕망이 무심코 발현된 거 아닐까 하는. 조금이라도 상대에게 결함이 발견되면 물어뜯고 드러내어 경쟁에서 탈락시키려는 음모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확신은 못하지만 난 이런 의도가 다분하다고 믿는다. 장난 속엔 무의식의 의지가 감추어져 있다.)

탈모자의 입장이 되어서 바라본 이 사회는 예의와 배려가 형편없는 나라다. 공중파 미디어에서 대놓고 대머리에 대한 조롱을 해대니 같이 보던 사람은 아무 부담 없이 공중파의 예의 수준을 발판으로 탈모자를 놀려댄다. 개념을 국가적으로 밥말아 처먹은 나라인 것이다.

이 스트레스를 고백할 수도 없다. 남자가 그런 걸로 사소한 신경 쓴다며 왜 그렇게 약해빠졌냐는 대답이 돌아올게 뻔하다. 화내면 그런 걸로 삐진다고 하고, 걱정하면 약하다고 지적한다. 그들이 깔깔거리는 그 스트레스 혼자 안고 가는 수밖에 없다. 탈모자로서 내가 느낀 한국은 참 치가 떨리는 사회다.
 
탈모자가 이정돈데 다른 사회적 약자는 어떨까? 뚱뚱한 사람은? 삐쩍 마른 사람은? 장애인은? 얼굴이 못생겼다는 얘길 듣는 사람은? 아마 내 '치'는 그 '치'에 비하면 비교도 안될 것이다.

대머리가 캐병신인지 한국이 캐병신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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