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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는 12일, 장소는 북한과 독일의 여자축구 경기가 열린 천진경기장, 이날 세계가 지켜보는 베이징 올림픽에서 제가 단일기 깃발을 들고 북측 응원단까지 달렸습니다.

천진경기장은 시작부터 한국응원단의 응원으로 달아올랐습니다. 한국에서 온 코리아 응원단은 재밌는 단체 응원으로 중국과 세계 각지에서 온 관중들의 눈길을 끌었고 그렇게 높아진 호응으로 파도타기 응원까지 연출해내면서 경기장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렸습니다.

한국응원단의 응원 모습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코리아응원단의 구호와 퍼포먼스를 신나게 따라하며 노는 중국아이들도 보였습니다. 일부 외국관중들은 아예 한국응원단의 응원에 동참하며 같이 놀기도 했습니다. 남북이 함께 응원한 천진 경기장엔 북한 여자축구팀을 응원하는 함성과 구호로 가득찼습니다.

상황이 일방적으로 흐르자 독일응원단의 저항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응원단은 프라스틱 의자를 두드리며 경기장을 북처럼 울리는 독특한 효과음으로 맞섰습니다. 거기에다 깃발을 들고 달리는 퍼포먼스를 연출하면서 관중들의 시선을 끌었습니다. 제법 효과적인 응원이었습니다. 관중들의 독일응원단에 대한 호응이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독일응원단의 반격에 약간 자존심이 상한 한국응원단, 독일응원단보다 더 크게 의자를 두드렸습니다. 그리고 곧 기수 징발령도 떨어졌습니다. 깃발 들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모이라는 외침이 터져나왔고 4명이 모였습니다. 더 큰 소리와 더 스펙타클한 장면으로 독일응원단을 압도할 작정이었습니다.

하필 그때 제가 깃발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옆에 있던 대학생에게 깃발을 건네다 단호히(?) 거절 당하고 주변의 재촉에 관중석에 열린 트랙위로 올라서고 말았습니다. 운동장 트랙길이가 대략 400미터입니다. 지름이 더 큰 관중석 트랙은 분명 두배는 족히 넘을 것입니다. '저길 뛴다고?', 생각하며 경악할 쯤 앞선 깃발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방금 전까지 파도로 잇던 그 길을 이제 4개의 한반도 깃발들이 달렸습니다. 관중들도 달리는 깃발의 의미를 아는 듯 했습니다. 관중석 아래 위에서 깃발 위로 커다란 함성이 덮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달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의 환호에 화답하는 손을 흔들고 깃발을 내저어 보였습니다. 달리기에 퍼포먼스까지, 게다가 앞서 달리는 사람이 어찌 빨리 달리던지.
 
그렇게 300미터 이상 뛰어갔고 드디어 북쪽 응원단에 도달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북한응원단은 중장년층 남성이 많았습니다. 깃발에 무뚝뚝한 반응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지나가나 싶었는데 빨간색 응원단 끝부분에서 함성이 들려왔습니다. 북한 응원단의 젊은 여성들 수십명이 달리는 깃발에 아주 반가운 모습으로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달리던 4명은 더 힘차게 깃발과 손을 흔들었습니다.

북측 응원단을 지나자마자 숨이 턱에 찰 쯤 조직위 측에서 깃발부대를 제지했습니다. 한편으로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잠시 숨을 가다듬고 온 길을 다시 뛰었습니다. 뒤에서 뛰던 분이 헉헉대며 앞에 천천히 뛰라는 얘기를 했지만 깃발의 속도는 그대로 였습니다. 다시 북측응원단을 마주치고 북측여성분들의 환호와 박수를 또 받았습니다. 조직위 측의 깊은 뜻을 또 한번 느꼈습니다.

돌아오자 숨도 못돌린 제게 사람들의 박수와 격려가 쏟아졌습니다. 그리고 곧 질문도 쏟아졌습니다. "북쪽 응원단 직접 보니 어때요?" 그 여성분들을 얘기해주었습니다 아주 밝은 표정으로 환호를 지르고 박수를 치더라고. 그걸 보고 정말 기뻤다고.

14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한겨레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랬습니다. 제가 깃발을 들고 뛴 모습이 한겨레신문 전면에 실려있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저 나왔어요." 하며 보여줬지만 아무도 절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당연했습니다. 4명 중 저만 얼굴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사람들 말로는 제 깃발이 가장 돋보였다던데 사진에서 낭패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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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 8월14일자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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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사진.



증거샷입니다. 저 깃발 든 사람이 바로 저, 사진 속 세번째 깃발입니다. 얼굴 아래 부분이 똑같음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한겨레가 기사는 좋은 데 사진은 별로 인 거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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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설명했던 장면들 사진으로 함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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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응원단 거의 맞은 편에 있었던 북측 응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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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남측의 코리아응원단.





남측이 주도한 파도타기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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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의 응원에 즐거워하며 단일기를 흔드는 중국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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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코리아응원단에 동참한 인도 아가씨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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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발을 들고 도는 독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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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의 사진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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