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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라치로 몰린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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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찍은 사진



블로거뉴스를 보다 재밌는 포스트를 발견했습니다. 이구아수님의 '약국에서 광고지를 찍다 도촬족으로 몰린 사연' 인데 나도 얼마전 사진을 찍다 봉변을 당한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그의 글이 더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은 가판대에 진열되어 있는 신문이었습니다.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조중동 3개 신문이 모두 현대차 파업 부결이라는 똑같은 제목으로 뽑아진(6월17일자) 게 웃겨서 사진기를 꺼내어 몇장을 찍었습니다.

그런데  사진을 찍는 중에 무거운 시선이 느껴졌습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 하나가 사진을 찍는 나를 곁눈질도 아니고 빤히 처다보고 있었습니다.

확연히 느껴지는 그의 불쾌한 시선을 최대한 모른 척했습니다. 세번째 사진을 찍고 카메라를 가방에 넣은 후 팔짱을 낀 채 가판대를 유심히 바라보는 척하며 그의 시선을 외면했습니다.

좀 황당하게 집요한 사람이었습니다. 카메라를 넣은 후에도 나를 계속 처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시선에서 벗어난 것은 지하철이 도착하고 문이 열리고 나서였습니다.

그가 지하철에 타는 걸 확인하고 좀 떨어진 쪽의 문으로 지하철에 올랐습니다. 꼭 봉변의 순간을 빠져나온 느낌이었습니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나 하며 가방 속의 신문을 꺼내려는 순간 바로 옆에서 나를 향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혹시 파파라치입니까?"

기가 막혔습니다. 아까 나를 뚫어지게 바라보던 그 사람이었습니다. 열이 확 올랐습니다. 그의 파파라치라는 말과 승강장에서 받았던 불쾌한 시선이 같이 폭발했습니다.

"뭐라고요? 지금 내한테 뭐라고 했어요?"

제법 큰 목소리였습니다. 지하철 안의 시선이 일제히 내가 있는 쪽으로 쏠렸습니다. 열받고 나니 그런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습니다.

"아니 지하철 가판대를 막 찔길래... 요즘 그런 거 찍어서 올리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그래 파파라치 아니냐고 물어본 건데..."

그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는 내 자신이 느껴졌습니다. 그도 아마 이런 격한 반응은 생각지 못한 모양입니다. 좀 물러서는 듯 말했습니다. 그러나 한번 터진 '화'를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와요? 신문가판대 찍었는데 뭐 잘못됐어요? 당신 얼굴 찍었어요? 내가 사람들 얼굴 찍었어요? 당신이 가판대 찍든 말든 무슨 상관인데. 당신 허락 받고 찍어야 되요?"

"아니 나는 뭐 찍는 건가 궁금해서 물어본거지. 그거 물어본 거 가지고 이렇게 화를 내고 그랍니까?"

"당신이 제대로 물어봤어요? 지하철 안에서 사람들 다 들리게 '파파라치 아니냐?'고 말하면 여기 있는 사람들이 날 어떻게 생각하겠어요? 그게 물어보는 거요?"

처음부터 느낀 그의 눈길은 궁금해서 처다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언가 자신이 보기에 못마땅한 장면을 보는 그런 표정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눈길이 굉장히 불쾌했던 것입니다.

"요즘 그런 거 찍어서 올리고 하는 사람들 있잖아요."라는 말로 미루어볼 때 그는 최근 촛불시위 현장에 나타난 디카와 캠코더의 활약에 대해 정치적 반감을 가지고 있는 듯 했습니다. 그래서 나의 미디어활동에 대해 그 반감을 드러낸 것이라는 추측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40대 후반이라는 그의 나이대와 부산이라는 지역적 성향을 더하니 그런 생각이 더 굳어졌습니다.

격한 몇마디를 더 주고받다 세정거장 쯤 지나자 그가 내렸습니다. 진짜로 내릴 역인지 아니면 나와의 언쟁이 불편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내게 언성을 높이며 지하철 문이 열리자 내리는 모습이 행선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게 했습니다.

객차안에서 소란을 피우던 둘 중 하나가 내리고 혼자 남겨져 좀 민망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 제대로 쏘아붙이고 나니 기분은 아까 불쾌한 시선을 받고 지하철에 올랐을 때보다 한결 나아졌습니다.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게 한번 혼이 났으니 앞으로는 함부로 '파파라치'니 하며 상대를 황당케 하는 짓을 하지 못할 겁니다.  


컨텐츠의 비용

사진을 찍히는 사람은 사진기에 노출되지만 사진을 찍는 사람은 '초상권침해' 등의 공격에 노출됩니다. 사람 많은 장소에선 오해받을까 사진기를 꺼내기가 두렵습니다. 괜히 잘못 꺼냈다 메모리 수색 당하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초상권 등이 실제 적용되는 법보다 사회적으로 너무 과도하게 주장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이구아수님을 도촬로 의심하고 나를 파파라치로 내몬 미디어기기에 대한 거부감은 컨텐츠를 고민하는 블로거의 입장에서 본다면 큰 장벽입니다. 이게 블로거 개인의 문제에만 그치고 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컨텐츠 산업 시대에 미디어기기에 대한 거부감은 컨텐츠의 생산비용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미디어기기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면 강할 수록 컨텐츠 생산 비용은 증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진을 찍으면서 느끼는 것이 가장 훌륭한 컨텐츠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살아있는 표정과 모습만큼 좋은 컨텐츠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찍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자연스럽게 찍으려하다보면 도촬족으로 몰리기 십상입니다.

자동차산업 초기에 차가 위험한 기기라며 속도를 30키로 이하로 제한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자동차 산업이 지금처럼 발달하진 않았을 겁니다. 이처럼 우리가 미디어기기의 접근권을 너무 제한한다면 컨텐츠산업이 발달하기 어러울 겁니다.

컨텐츠산업시대에 초상권 등의 미디어기기의 접근권은 이제 도량형 통일처럼 정비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컨텐츠를 악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우려 때문에 마냥 컨텐츠 생산비용을 늘릴 수는 없습니다. 악용하는 사람에겐 보다 강력한 처벌을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엔 접근권을 보장하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아저씨의 눈길만 아니었다면 제가 더 많은 다양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그 사진들이 제게 광고수익을 한푼이라도 더 얻게 해줬을지 모릅니다. 제 개인적인 돈벌이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이런 경제적 추가수익이 전사회적으로 쌓이게 되면 얼마나 큰 경제효과가 있을지 생각해보라는 겁니다.

창조적인 컨텐츠를 만들고 감상하면서도 경제적으로도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데 이런 기회를 우리가 초상권침해 등으로 인한 갈등 때문에 걷어차고 있는 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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