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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갔다 왔다. 마눌과 6살, 5살 아이 이렇게 4명이 갔다. 갑작스런 결정이었다. 어느날 "일본가자"라며 선언했고 왠 뚱딴지 같은 소리냐며 처다보는 마눌에게 내일 당장 여권을 만들라고 했다. 그리고 여권 나온지 이틀 뒤 일본으로 떠났다. 사실 처음 외친 말은 "해외가자"였다. 그런데 돈과 모든 것을 고려하니 일본이 제일 만만했다. 그 중에서도 배타고 갈 수 있는 큐슈가 딱이었다.

날짜도 배회사에서 정해줬다. 6월 중순쯤 날짜를 잡으려는데, 6월10일 떠나서 6월12일 돌아오는 정해진 배편을 이용하면 호텔 이틀 숙박권이 무료라고 한다. 회사 홈페이지를 뒤져보니 비수기에는 이런 초저가상품이 꽤 된다. 어차피 내 여행목표는 사람들 보러 가는 거였다. 예전에 동경 갔을 때도 외국인은 어떤 사람일까 그게 궁금했다. 일본가면 어딜가도 일본이니 그거 자체가 관광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마눌의 목표는 좀 달랐을 것이다. 그래서 난 잽싸게 배회사의 상품에 오케이를 했고 10분 내에 돈을 송금했다.

6월 10일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8시45분 출발 후쿠오카행 비틀을 탔다. 비틀은 쾌속정으로 일본까지 2시간 55분이 걸린다. 위 사진은 비틀이 아닌 시모노세키로 향하는 하마유호다. 쾌속정은 저 배의 1/100도 안될 정도로 작다.



녀석들 신났다. 아빠를 따라 고난의 행군이 기다리는 줄은 꿈도 못꾸고


배에 타서부터 갑자기 당황된다. 8년전 동경에 갔을 땐 그래도 한창 토익공부한답시고 기본 문장들을 좀 외웠는데, 이번 여행엔 전날까지 블로거기사 쓰다 왔다. 내려서 쓸만한 영어 문장이 잘 안떠오른다. 게다가 여행목표도 자세하게 정하지 않았다. 안내소 앞에서 버스 1일 이용권을 사야할지, 지하철 1일 이용권을 사야할지 갈등하고 자빠졌다. 일본가서 사야지 하던 큐슈레일패스는 배안에서부터 컷팅 당했다. 그건 일본에서 살 수 없단다. 마눌은 나를 처다보고 애들은 여객터미널에서 신이 나서 돌아다니고 난 땀 찔찔.




내 타는 속도 모르고 마눌은 짱구에 나오는 초코비 있다며 신기하다면서 애들에게 하나씩 사준다. 천원쯤 하는데 한국돈 천원을 받더란다.




한국인 중년부부가 우리 앞에서 표를 사고 있는데 남편은 영어를 능숙하게 하고 여자는 일본어를 한다. 그런데 숙박지가 우리와 똑같은 센트랄호텔이다. 이거 재수! 바로 인사하고 "같이 갑쇼" 했다. 호텔에 도착하니 1시쯤이다. 호텔에서 점심을 먹는데 종업원이 아이들과 동행한 걸 알고는 풍선을 불어준다. 근데 말을 좀 더듬으시는 것 같다. 영어 단어 사이에 일본어를 쓰는데, 일본어 모르는 내게도 그 더듬거림이 느껴진다. 3일간 지켜봤는데 참 친절한 양반이다.




본격적인 관광을 위해 시내를 나갔다. 그런데 온통 자전거판이다. 길에 사람보다 자전거가 더 많다. 과장이 아니고 진짜다. 다음날 아침에 길에 갔을 땐 횡단보도 앞에 열명 넘는 사람 중에 자전거 안 탄 사람은 우리밖에 없었다. 자전거가 없고 짐을 들면 바로 외국인이라고 보면 된다.


첫 관광지로 후쿠오카 시내의 자야마 역 인근의 유센테공원에 갔다. 원래는 그 곳에 갈 계획이 없었다. 그런데 배안에서 보여주는 관광 동영상에 아주 멋진 정원이란 소개가 나와서 즉각 그날의 관광목표를 수정했다. 지하철 자야막역에서 내려서 20분 걸으면 있다고 한다. 자야마역에는 잘 내렸다. 그런데 지하철에 내려보니 어디에도 공원방향 표시가 없다. 일본의 지리 교통 시스템을 믿고 갔는데 이럴수가.


길 가는 사람에게 물었다. 길에 사람도 별로 없고, 또 자전거 안타는 사람도 드물어 물을만한 사람찾기도 참 힘들었다. 그런데 그 공원을 잘 모른다. 세번째 물어본 사람은 뭔가 알고 있기는 했는데, 일본어로만 얘기해 도저히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여긴 외국인에게 일본어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좀 당황스러웠다. 그러다 나중엔 직접 지하철에 내려가서 복사한 간이 지도를 들고와서 준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일본인의 친절인가.  





난 한국의 공간을 생각했다. 그래서 큰 대로를 따라가면 목적지를 금방 찾으리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일본엔 그런 대로가 없다. 일본의 공간은 우리와 많이 달랐다. 주택가 내엔 전부 편도차선이었다. 1차선만 되도 큰 도로다. 택시도 간혹 보여 어딘가 도로가 있지 싶었는데, 몇십분을 가도 좁은 편도차선이다. 배에서부터 떠들어댄 그 유명하다는 공원이 이런 골목길을 따라가야 있다니, 일본인이 가르쳐 준 길이 자꾸 의심스러워 다시 물어봤는데 우리가 간 방향이 좀 둘러오긴 했지만 맞다고 한다.




덕분에 일본 주택 구경을 실컨했다. 담장이 없고 집들이 다 다르고 참 예뻤다.  




주택가 한 가운데에 이렇게 큰 연못이 있다. 주변 산책로에서 노인들이 산책을 즐기신다. 다음날 만난 한국인 부부가 일본주택가는 걷고 싶은 맘이 든다고 하더니 정말 그렇다.



대단지 아파트가 없고 한동짜리 빌라가 많다. 이게 그래도 대단지에 속하는 아파트인데, 4층 이하다. 아파트 동마다 이렇게 큰 잔디부지가 딸려있다.




공원을 찾다 헤메면서 한시간쯤 걷고나니 마눌과 아이들이 아빠를 원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렇게 남의 집 계단 앞에서 퍼졌다.






 

드디어 유센테 공원에 도착했다. 그런데 공원이 정말 코딱지 만하다. 이런 걸 관광지라고 배에서부터 떠들다니 속았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길에서 물어본 사람들이 이 공원을 잘 몰랐는갑다. 우리로 치면 어디 구석에 있는 서원인데 그걸 외국인이 찾아가겠다고 했으니 좀 의아했을지도 모르겠다.


공원의 아기자기함들이 볼만하다고 하는데 나의 예술적 안목이 부족해서 그런 건 알 수가 없었다. 이 씨알 굵은 잉어들이 그저 내겐 볼만했다. 한국에서 볼 수 있는 잉어의 1.5배 정도 되어보였다.


첫 관광지부터 헤메어 지친 우리에게 천사가 나타났다. 갑자기 우리 앞에 차가 서더니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공원에서 우릴 지켜봤는데, 애들이 있어 태워줘야 겠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눔의 자식들 잘 데려왔다.  유센테공원도 멀리서 보러온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베푸는구나 싶다. 이왕 동행한 김에 같이 관광하자며 도심을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데려주겠다고 한다.




 저 너머에 부산이 있다.


부부가 저녁엔 식사도 하고 쇼핑도 하라면서 캐널시티를 권한다. 난 그런 쇼핑가는 별로였지만 핸들을 그들이 잡았으니 어쩔 수 없다. 물론 마눌은 좋단다.




울트라맨이라면 애들은 신났다. 마눌은 명품구경하러 갔다. 온통 명품 천지란다.




다음날 나가사키로 떠났다. 하카다역에서 특급으로 1시간 46분이 걸린다. 표를 보니 날짜도 안나오고 시간도 안나오고 좌석표시도 없다. 일본은 기차가 자유석이다. 표도 날짜가 있는게 아니라 기한 내에 타면 된다. 거참 희안하네 하면서 기차에 올랐다. 차창밖으로 보이는 일본집들이 예쁘다.




1000엔짜리 도시락인데 마눌은 달작지근해서 못먹겠다고 한다. 난 짜지 않아 속이 편해 좋다. 8년전 동경에 갔을 때도 오히려 일본에서 속이 더 편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드디어 나가사키역에 도착했다.




오늘은 이 전철을 타고 돌아다닌다. 목표는 데지마다. 일본노인께 데지마행 전차를 물어보니 "이찌방" 이라고 하신다. 바로 저 전차다. 그런데 방향은 반대로.




여기가 일본 근대화의 비밀을 알려주는 섬 데지마다. 수백년전 일본이 쇄국정책을 하면서 유일하게 서양과 교류창구로 열어두었던 인공섬이 데지마다. 이 데지마를 통해 서양의 각종 문헌과 상품들이 들어왔고 당시 데지마는 이렇게 수입되는 서양의 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고 한다.





배가 들어오면 이런 통관절차를 거쳐 일본으로 수입된다.




조상의 흔적을 찾는 네덜란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바로 위쪽에 차이나타운이 있다. 나가사키엔 중국화교들이 예전부터 몰려와서 살았다. 본국에서 절 만드는 기술자까지 불러올 정도였다고 한다.




카스테라도 나가사키가 원조다. 예로부터 일본의 대외교역항구이다 보니 나가사키엔 이국적인 유적들이 많다. 성당유적도 있고, 조금 올라가면 유적은 아니지만 네덜란드의 모습을 재현한 하우스텐보스도 있다.




저 중에서 한 개를 먹었는데 맛이 괜찮다.


차이나타운 지나서 시장이 몇 개 있었는데, 노점에서 장사하는 모습이 우리 시장과 별로 다르지 않다.




시장이라는 게 저런 노점들과 상점들이 약 50미터 골목에서 늘어선 것이다.






경제대국 일본의 시장치곤 소박하다는 느낌이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길에 내놓은 것도 한국과 다르지 않다.





꼭 유명 관광지를 가야 관광인가? 이렇게 일본의 거리를 무작정 돌아다니는 것도 참 재밌다. 외국인에겐 그나라 자체가 관광거리다. 일본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아예 계획하지 않고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그러면 그 나라의 사람과 길과 집들을 더 많이 보고 만나게 되고 거기에서 여행의 참 의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다.


그래서 3일간 일본여행하고 이런 문장을 생각해냈다.  관광하고 싶으면 계획하고 여행하고 싶으면 그냥 떠나라. 좀 무책임한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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