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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한국영화 점유율이 37%라고 한다. 8년만의 최저수준이다. 깊어가는 한국영화 침체에 대해 요즘 영화 <놈놈놈> 개봉으로 주목받고 있는 김지운 감독이 의미 있는 한마디를 던졌다.

“안될 영화가 되고 될 영화가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같은 영화인이 봐도 부끄러운 영화들이 흥행이 되면서 관객들에게 실망을 준거다.”(한겨레신문 7월9일)

2001년 가을 거의 동시에 개봉해서 이런 식으로 희비가 엇갈린 영화가 있었다. ‘무사’와 ‘조폭마누라’다. 될 영화인 무사는 안 되었고, 안될 영화 조폭마누라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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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흥행의 엇갈림은 한국영화계를 갈피를 잡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후 조폭마누라 류의 코믹갱스터가 봇물을 이루었고 무사 같은 영상에 공을 들인 작품은 설자리를 잃었다.

2001년 ‘관객의 배신’에 가장 큰 책임은 20여일 차이로 개봉된 두 영화를 가려내는데 실패한 비평가들에게 있다. 비평가들은 대중에게 무사와 조폭마누라의 차별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했다. 이건 비판받아야할 나태함이다.

비평가들은 무사와 조폭마누라가 가려질 수 있는 비평지점보다 비평의 자극적 영향력에 더 관심이 많았다. 한국영화사적 의미와 상대적 평가 그리고 한국적 현실에 대한 차분한 고려는 내팽개쳐졌다. 한국영화의 약진이 비평가들에게 허영끼를 주입시켰던 것이다.

이러한 비평의 경쟁은 이제 막 태동기에 있는 한국의 블록버스터를 힘들게 했다. 이들의 경쟁적 비평은 한국영화가 헐리우드영화에 대해 가지던 산업보호론적 이점을 완전히 사라지게 했다.

디워 논란이 한창일 때 벌어진 한 토론에서 진중권은 ‘디워라는 불량상품을 고객에게 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티브이를 보면서 이 허술한 주장에 아무도 반박하지 못하는 것이 좀 답답했다.

대한민국 20세기 후반 경제사는 진중권이 혐오하는 대중에게 불량상품을 권하는 역사였다. 국가는 ‘질이 낮더라도 국산품을 애용해달라’며 국민의 애국심에 호소하며 경제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누구도 당시 정부가 국민에게 질 낮은 상품을 권한 것이 옳지 않다고 비판하지 않는다.

학자들은 개도국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국의 산업을 보호하는 것을 합리적인 행동으로 인정한다. 국내산업보호론은 한국가의 경제가 다른 나라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기간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에 반대하는 주장도 있지만 어쨌든 경제적 측면에서 국민에게 자국의 질 낮은 상품을 권하는 행동이 결코 조롱받을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경제적 태도를 문화에 적용하면 어떨까? 자국 문화의 경쟁력을 위해 수준이 좀 떨어지지만 자국의 문화상품을 많이 봐달라고 누군가 호소한다면 그는 어리석다는 비판을 받을까? 문화에 대한 산업보호론적 애국주의는 일반 상품에 대한 것과는 다른 평가를 받을까?

그렇지 않다. 오늘날 문화도 산업이다. 한국이 영화점유율을 끌어올리려 노력하는 것도 영화를 산업적 측면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산업보호론적 관점에서 보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다.

질 낮은 문화상품을 고객에게 권유할 수 없다는 진중권의 태도는 문화적으로 고상해 보인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보자면 진중권은 시장주의자이다. 상품의 소비에 있어 산업보호론적 애국심보다 경제적 효용성을 첫번째로 따지는 그의 태도는 그가 속한 진보신당이 혐오하는 신자유주의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2001년 관객배신사태를 이끈 비평가들과 2006년 디워사태의 진중권은 문화시장주의자라 할 수 있다. 그들은 비판의 지점을 높이고 애국주의를 혐오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문화에 있어 시장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나타냈다. 오늘날 문화가 산업인 시대에 이들은 경제의 시장주의자만큼 위험할 수 있다.

한국영화가 위기를 맞으면서 문화시장주의자들의 허영끼도 슬슬 사라지고 있다. 한국영화가 사라지면 비평시장도 사라진다는 공동의 위기감을 느끼면서 비평의 지점도 많이 내려오고 있다. 허점이 숭숭 드러나는 영화 <추격자>에 비판은 없고 찬사가 쏟아지는 걸 보면 이들의 위기감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것 같다.

이제와서 질 낮은 상품에 목매다는 그들을 보면 한때 고상했던 귀부인이 붕어빵을 파는 모습을 목격한 기분이다. 이제 그들은 위기의식 때문에 비평의 적절한 지점을 반대쪽으로 지나칠 것이다. 이래 저래 그들에게서 제대로 된 비평을 듣긴 힘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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