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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에 대해선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삼성입니다. 누군가는 직원들 밥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체크된다는 곳이라고 말해줍니다. 그런데 핵심 중에 핵심인 구조본 법무팀장의 양심선언을 삼성은 왜 막지 못했을까요. 처음 이 사건이 터졌을 때 사람들이 궁금했던 이 사건의 또 다른 일면입니다. 어떻게 된걸까요.

2004년 8월 대선자금수사가 끝나고 김용철변호사는 대검수사기획관 출신인 이종왕변호사에게 삼성그룹 법무팀을 넘기고 법무법인 서정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1년 뒤인 2005년 9월 13일 김변호사는 한겨레편집국 비상임 기획위원에 임명되었습니다. 김용철변호사와 삼성의 갈등이 언론상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김변호사가 한겨레에 들어가면서부터입니다.

사실 김변호사도 밝혔듯이 삼성의 법무팀을 총괄하는 사람이 한창 나이때 삼성을 나간 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김변호사가 한겨레기획위원에 임명되자 언론은 그 이례적인 사퇴 이면의 눌러뒀던 얘기를 살짝 꺼냈습니다.

김변호사가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에서 팀장을 거친 핵심 멤버였던 만큼 알고 있는 '비밀'이 공개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벌써 부터 한겨레 신문에 난 기사가 그의 '작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제기하는 소리도 들린다.(노컷뉴스 2005.9.12)

하지만 삼성을 떠날 때에는 ‘토사구팽’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왔다. 지난해 불법 대선자금 수사를 무리없이 막기는 했지만 삼성그룹 내부에서는 그룹 최고 실세중의 한 사람인 이학수 부회장이 검찰조사를 받는 등 법무팀이 성공적으로 대응을 못했다는 평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가 한겨레신문을 선택한 까닭이 여기에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서울신문 2005.9.13)

삼성 관계자는 "삼성에 재직할 때는 물론이고 떠날 때에도 섭섭하지 않도록 예우를 다해줬는데, 김 변호사가 한겨레신문으로 옮아가게 됐다는 소식은 다소 의아스럽다. 김 변호사가 직무상 취득한 비밀엄수 의무는 지킬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연합뉴스 2005.9.13)

이미 이때 김변호사와 삼성이 서로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사이는 아님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삼성은 한겨레기자를 시작하는 김변호사에게 덕담이 아니라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김변호사의 움직임에; 대한 당시 검찰의 반응.
김 변호사의 친정인 검찰에서도 걱정이 많다. 검사로서 취득한 직무상 비밀외에도 삼성 법무팀장으로 재직할 당시 검찰 고위직과 상당한 관계(?)를 맺어 왔던 만큼 혹시나 불똥이 튀지나 않을지 우려한다.(노컷뉴스 2005.9.12)


그런데 김변호사가 삼성과 사이가 안좋은 한겨레를 골라서 들어간 것은 아닌듯 합니다. CBS보도를 보면 재밌는 내용이 나옵니다.

삼성을 그만둔 뒤 CBS에 있는 절친한 기자에게 CBS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없겠느냐는 제안을 하기도 했다. 비록 그말을 들은 관계자가 지나가는 소리로 듣는 바람에 놓쳤지만 한겨레에서는 그 바람을 들어줬다고 한다.(노컷뉴스 2005.9.12)


CBS로서도 많이 안타까웠을 겁니다. 한국최고의 정보를 다룬다는 삼성구조본의 핵심중에 핵심에 있던 사람의 말을 흘려들었다 한겨레에 뺐긴겁니다.  

인터뷰에서 김변호사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삼성을 안심시킬 발언은 전혀 하지 않습니다. 삼성과 조율된 것이었다면 이미 덕담이 몇마디 오갈법한데 원론적인 입장만 얘기합니다. 미디어오늘도 김변호사가 "정작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라는 말합니다. 

세상이 하도 쑤군덕거리니 김변호사도 드디어 한겨레에 들어온 이유에 대해 입을 엽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것은 한겨레 들어간 이유가 아니라 그가 삼성을 퇴사한 이유입니다. 그는 여기서 삼성에 대한 불편함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순수한 경영 임원으로 변신하고자 노력했으나 능력과 노력이 못미쳐 결국 원치 않던 사내 변호사를 하게 됐다. 그래도 사건·사고의 수습보다 예방적 자문으로 제구실을 다하고 싶었다. 이에 따라 ‘너무도 인간적인’ 욕심에 대해 부하의 처지에서 건의를 통해 제어하고자 하는 무모한 시도를 꿈꾸었으나 어불성설이었다. 적응력 부족을 실감하고 두번째 사직서를 썼다.(한겨레 2005 9.23)


최근 삼성비자금양심선언 관련한 한겨레 21인터뷰에서 김변호사가 밝힌 '무모한 시도'는 바로 이겁니다.

2003년말 불법 대선자금 수사할 때 대검중수부를 접촉하게 했다. 내가 후배와 선배들에게 '우리 수사에 협조할 테니 첫 번째로만 맞지 않게 해달라'고 했다. 검찰은 나름 약속을 지켜서 우리는 좀 늦게 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을 벌자 (대선자금 책임자 격인)***와 ***, 이 사람들이 다 도망갔다. 내가 앞으로 검사 출신 변호사로 살아야 하는데 후배, 선배들에게 사기꾼이 됐다. 이후 대선자금 수사가 진행되는 6개월 동안 나는 업무에서 배제됐다. 나하고는 의논을 안했다. 부하들도 나에게 보고를 안 했고, 어디 가서 뭐하는지도 몰랐다.(한겨레21 2007.11. 6)


김변호사의 한겨레 첫 번째 칼럼을 내막을 잘 모르고 들은 독자들이야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삼성구조본사람들은 아마 아찔했을 겁니다. 저기서 몇마디만 더 나간다면 하며 몸서리 쳤을겁니다. 당시 김변호사가 사직서를 쓴 시기를 떠올리고 거기다 상상력을 좀 보탠다면 저 무모한 시도라는 게 대선자금 관련한 것이라는 것은 쉽게 추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11월 8일 삼성과 김변호사 양자의 사이가 정말 심상치 않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사건이 하나 발생합니다. 이날 안기부도청테이프로 삼성을 협박한 혐의로 기소된 박인회씨 재판에서 김변호사는 삼성부사장 이학수씨의 증언과 다른 증언을 합니다.

8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단독 장성원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옛 안기부 도청테이프(엑스파일) 사건’ 결심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용철(47·변호사) 전 삼성그룹 법무실장은 “(이학수 부회장으로부터) 박인회(58·구속)씨가 돈을 요구한다는 말은 없었다”고 증언했다. 이는 “도청테이프를 건네는 대가로 거액을 요구받았다”고 주장한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의 증언과 다른 내용이어서 주목된다.(한겨레 2005 11. 8)


당시 삼성그룹의 이학수부회장은 박씨가 삼성에게 도청테이프의 대가로 200억원을 요구했다는 얘기를 김용철변호사에게 들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러나 김변호사는 박씨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진술했습니다. 대선자금 수사에서 한팀이 되어 대처했던 두 사람이 다른 말을 한다는 것인데 이건 분명히 양자 사이에 무슨 문제가 있었음을 알게해주는 것입니다. 

이후 양자 사이에 언론에 드러난 대립은 한동안 없었습니다. 그러다 김변호사가 올해 2007년 5월에 쓴 칼럼으로 양자의 갈등이 다시 불거집니다. 김변호사는 <범행 처벌은 사법부 몫이지만 현행범 체포는 누구나 가능>이라는 칼럼에서 당시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됐던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폭행 사건을 예로 들었는데 회사는 한화건설 사건을 맡고 있는 회사로서 그 사주를 비판하는 칼럼을 쓰는 것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이유로 들어 김변호사에게 사퇴를 요구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김변호사의 주장은 달랐습니다.

때마침 같은 날 한겨레에 익명의 전직 삼성그룹 고위 임원의 말을 따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헐값 발행 사건은 사실상 그룹 비서실(구조조정본부)이 개입했다’라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며 “칼럼이 나간 뒤 소속 법인 이아무개 대표 등이 ‘<중앙일보>의 한 간부가 당신을 조처하지 않으면 앞으로 다른 기업 사건을 (수임) 못하게 하겠다’는 취지의 이야기를 하며 휴직을 권고했다”고 말했다. (중략) 김 변호사는 “기사에 언급된 익명의 고위 임원을 구조본 법무팀장 출신인 나라고 판단하고 삼성과 중앙일보 간부가 법인에 압력을 넣은 것 같다”고 말했다.(한겨레 2007.10. 7)


김용철변호사 주장은 한화 관련한 칼럼은 법무법인 서정의 핑계고 사실은 그날 같이 나간 삼성에버랜드 기사가 진짜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칼럼이 나간지 5개월 5일만인 지난 10월 29일 김용철변호사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찾아가 양심선언을 하게됩니다.



김용철 변호사 한겨레신문 입사후 에피소드
며칠 전 어느 언론인 상가에 조문갔다가 초면인 한겨레 기자 출신 언론인으로부터 면박을 당하고 하마터면 멱살잡이까지 할 뻔했다. 취중임을 기화로 ‘삼성 출신과는 이야기도 하기 싫다. 삼성 출신이 한겨레에 와선 안 된다’ 등이 요지였으니 꽤나 과한 말이었다. 피를 나눈 가장 가까운 친족은 “극우 인사가 왜 극좌 언론에 관여하느냐”고 말한다. 나의 내면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지울 수 없는 경력 때문이리라.(한겨레 2005. 9. 23)

김용철변호사의 검찰독립론
김 변호사는 "사법부 독립은 여론, 즉 언론으로부터의 독립"이라며 "정권으로부터의 독립 운운 하지만 사실은 여론에서 자유로우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환란 때 책임있는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 구속됐는데 법조인이라면 누구나 그들이 무죄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론은 아니었다. 여론에 밀리면 형을 때려야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미디어오늘 2005. 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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