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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시작한지 100일 지난 정부에 대해 학습효과를 논한다는 것이 좀 이르긴 하다. 그러나 이미 확골하게 드러난 걸 못본척하기도 참 어렵다. 눈에 뻔히 보이는데 분위기 맞춰 기다릴라니 입이 근질거린다.

이렇게 이른 주제의 글을 적는 데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어떤 블로거는 이명박정권 때문에 쓸 게 많아 쉴 틈이 없다고 하는데 난 사실 이명박에 대하여 뭘 써야할지 모르겠다. 이 정권은 욕할 건 많지만  쓸 건 없다. 쓴다는 것은 한꺼풀 벗기는 작업인데 이명박정권은 너무 안봐도 비디오라 벗겨 보일 게 없다. 그래서 쓸 게 없다. 그래서 이명박정권의 또 다른 별명은 이문세(이명박정권의 문제는 세상이 다 안다.)다.

이명박정권의 첫번째 학습효과는 CEO.

이명박정권에서 우리 국민이 얻은 가장 큰 교훈은 기업가 식의 국정운영의 위험성이다. 기업은 10개의 과제 중 1개만 성공하면 된다. CEO에게는 9개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적 기질이 미덕이다. 따라서 기업가는 안정적이고 민주적인 시스템보다 일사불란하고 수직적인 체계의 조직을 선호한다. 그러나 국가는 다르다. 국가는 10개중 1개도 실패해선 안된다. 국정의 실패는 그대로 남아 언젠가는 해결해야할 짐으로 남는다. 국가는 모든 가능한 방향을 검토하고 신중하게 일을 추진해야한다.
 
국민은 이명박대통령이 CEO형 리더쉽의 장점을 국정운영에 접목시키길 바랬다. 그러나 이명박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리더쉽을 기업가의 리더쉽으로 접목이 아닌 대체를 해버렸다. 5천만 인구의 국가가 잘해야 수만명 정도에나 통용되는 기업가리더쉽에 맡겨지면서 국민은 이명박사장의 직원이 되버렸다. 반대는 능력 없는 직원(국민)의 불평으로 받아들여졌고, 국가의 과거와 미래를 관통하는 철학이 담겨야할 외교는 50년도 못간다는 기업의 거래로 전락했다. 복지는 부자가 돈을 벌면 베푸는 은전이 되었다. 국가조직들은 기업가가 전횡하는 사조직으로 변해버렸다.

둘째, 도덕적우위를 가지지 못하는 대통령의 한계

이명박대통령의 도덕성은 선거 때부터 그 심각성이 드러났다. 부동산에, BBK에, 자녀위장취업 등 도덕성 문제는 작년 한해 끊이지않고 터져나왔다. 이명박대통령의 대선 승인 중 하나는 도덕성 문제를 계속 일으켜 하나의 도덕성 문제에 집중 못하게한 돌려막기였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대통령과 지지자들은 이런 이대통령의 도덕적 흠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당선되고나면 잘 풀리리란 막연한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러나 대통령의 도덕성문제는 그렇게 쉽게 사그라들 문제가 아니었다. 국민에 대해 도덕적 우위를 가지지 못한 대통령은 반대자의 비난과 조롱에 그대로 노출되어 버렸다. 정권의 사람들과 지지자들은 대통령의 부도덕까지 존경하라고 말할 수 없었다. 조롱과 비난에 대응할 수도 당당할 수도 없는 정권의 상처는 점점 깊어갔고 막아보려 둔 무리수는 사태를 더 악화시키기도 했다.

노대통령이 독선적이란 비판을 들으면서도 참여정부의 정책을 밀어부칠 수 있었던 것은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파들이 '좌파다', '독선적이다', '안하무인이다' 하면서 반발 하면서도 그 이상은 나아갈 수 없었던 것은 노대통령이 야당과 반대쪽 진보진영 등에 대해 도덕적 우위를 놓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대통령이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말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동력은 도덕성이었다.

그러나 이명박대통령이 노대통령처럼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하면 독선이란 비판에서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다. 과반수 가까운 득표가 이대통령의 거의 유일한 통치자산인데 그마저 훼손된다면 이명박정권이 무엇을 내세워서 국민을 이끌 수 있단 말인가. 정말 곤란해질 수 있다. 대통령에 대해 도덕적 우위를 가진 시민들이 언제든 거리로 쏟아져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대통령의 종교

청와대 추부길 비서관은 목사 출신이다. 그는 얼마전 강연에서 촛불집회 참여자를 사탄의 무리라고 공격하여 많은 비판을 받았다. 촛불들이 청와대를 향해 국민과 소통하라고 했는데 그 말을 새겨들어야할 홍보비서관인 추부길씨는 국민이 아닌 자신의 신과 소통해버렸다. 추부길씨는 청와대로 몰려오는 촛불을 보고 진지한 고민을 하기보다는 자신의 신에게 달려가 기도를 드렸던 것 같다.

이명박대통령은 소망교회 장로다.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을 할 정도로 종교적 열의를 가졌다. 그리고 이명박대통령은 추부길 비서관의 임명자다. 이명박대통령은 추부길씨를 비서관에 임명할 정도로 신뢰하고있고 그와 같은 종교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여기서 궁금해진다. 국민을 사탄의 무리라하는 추부길씨와 이명박대통령의 사고는 얼마나 다를까?

사람보다 신을 먼저 앞세우는 것이 종교인들의 일반적인 모습이다. 적당하면 좋은데 이런 태도가 너무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종교인들도 일부 있다. 자신에 대한 도움을 신의 보살핌으로만 받아들이고 비판은 신이 내린 고난으로 받아들여 주변사람을 당혹스럽게 하기도 한다. 현실적 장애를 신에게 맡기고 해석하기만 하면 인간관계의 정교함이 떨어져 서로 오해와 불신이 쌓일 수 있다.

이명박정권에 포진한 적잖은 종교인들이 추부길씨같이 자신의 종교에 근거해 국민을 바라보는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든다. 국민과의 정교한 소통을 할 생각은 안하고 문제가 생길 때마다 자신의 신에게 달려가지 않는지 걱정이 든다. 추부길씨 발언으로 봐서 이런 걱정이 마냥 기우는 아닌듯하다.

국민들은 앞으로 3가지 잣대에서 보다 엄격해 질 것이다. 기업가 출신이라면 치를 떨지 모른다. 도덕적 하자엔 눈길도 안둘것이다. 지도자로서 종교적 장애가 있는지도 살필 것이다. 이번 촛불집회를 통해 이명박대통령만 배운 것은 아닌 것 같다. 국민들도 국정운영과 기업의 운영의 차이, 정치가의 존재이유, 종교적 검증 필요 등을 깨달았다. 앞으로 어떤 정국이 펼쳐지더라도 국민은 이 학습효과만은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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