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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 수십만에 지지율 10%대, 이 정도 상황이면 정권의 위기랄 수 있다. 이런데도 친미정권을 표방하고 나선 이명박정부에게 이번 소고기협상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은 좀처럼 구원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있다. 미국대사는 한국민에게 공부 더하라는 외교상식을 벗어난 발언을 하고 미국관료들도 재협상은 없다며 선을 확실히 긋고 있다.
한국정부도 재협상은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고 있다. 똥줄이 탄 한국정부에서 이 상황에서 미국에 재협상의사를 물어보지 않았을리 없다. 지금 한국정부가 재협상이 없다고 못을 박는 것은 순수한 한국정부의 의지가 아닐 것이다. 미국측에서 재협상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을 읽었기 때문이다.
왜 미국은 재협상에 나서지 않는걸까? 지금 선거가 코 앞에 닥친 공화당정권으로선 그럴 처지가 아니다. 안그래도 민주당 오바마후보가 한미FTA를 공격하는 판인데 여기다 어떻게 소고기재협상을 꺼낼 수 있겠나. 한국사정 봐주다간 미국공화당이 망할 판이다. 외국과의 협상 하나 때문에 정권을 내주려는 정치세력이 세상 어디있겠나.
게다가 현재의 소고기협상을 반기고 있는 미국의 축산업자들은 미국정계에서 두번째라면 서러울 정도의 정치영향력을 행사하는 단체라고 한다. 선거정국에서 민주당으로부터 FTA 비판의 빌미도 안주려는 부시정권이 그보다 더 곤혹스러운 거대 이익단체로부터의 따돌림을 각오하고 재협상에 나설리 없는 것이다.
이때문에 지금 이명박정부는 한국민에게 매달리고 있다. 미국에는 도무지 답이 없으니 국민에게 답을 찾으려는 것이다. 친정부 언론과 정부기관을 동원해 읍소하고 때로는 윽박지르면서 국민들이 소고기협상안을 받아들이로독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과 국민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이명박정부에게 동정심도 생긴다. 이제 100일 갓 지난 정부인데 실정하나로 너무 몰아부치지 말고 왠만하면 이번엔 적당한 선에서 봐주고 넘어가자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사태가 왠만하지 않다. 미국정부만큼 국민들도 지금 물러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민들을 가장 자극하는 말을 30개월이나 SRM이 아니다. OIE 권고사항이 그렇다면, 우리가 미국민이 먹는 소고기와 같은 소고기를 먹는다는 보장만 있다면 여론의 시계추는 지금쯤 어느 정도 평형을 이루었을지 모른다. 극단적으로 쏠린 여론이 돌아올 모르는 것은 '30개월 이상'과 'SRM'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민족적 자존심의 영향이 더 크다.
소고기협상에서 한국은 검역주권의 상당부분을 상실했다. 우리가 일본은 물론 대만이나 다른 개도국보다 더 낮은 수준의 협상을 한 것을 국민들은 알게 되었다. 우리에게 협상의 주도권이 조금도 없었다면 이해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미국축산협의 보고서에서도 있듯이 한국은 장차 미국의 최고의 소고기 시장이 될지 모르는 나라이다. 한국은 이런 주도권을 제대로 휘둘러보지도 못하고 최악의 협상을 한 것이다.
국민은 다른 건 다 받아들여도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받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한다. 실익을 포기하고라도 국가적 자존심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국민의 자존심을 지키지 않는 국가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다. 잘먹고 잘살려면 잘사는 나라의 시민이 되면 된다. 개인이 경제적 이익에도 국적 앞에서 갈등하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자부심 때문이다. 그런데 국가가 이런 국민적 자부심을 돌보지 않는다면 국민은 국가의 구성원으로 남을 의지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소고기협상이 예상외의 폭발력을 가졌던 것은 이 사건이 일제침략 이후 국가적 자존심의 침해가 그 어떤 것보다 극명하게 드러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이명박정부가 노력을 한다해도 검역에서 우리의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는 현재의 소고기협상의 국가적 자존심 침해를 아닌 걸로 포장하긴 힘들다. 국민적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야하는 국민으로서 이 정권의 첫 협상에 아량을 베풀 수가 없는 것이다.
이명박정부는 지금 '미국과 외교일전까지 각오하는 재협상 하느냐.' 아니면 '국민의 민족적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거의 일세기만의 사건을 만들어내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 현재 사태로 보아 이명박정부는 결국 재협상 없이 고시를 할 확률이 높은 것 같다. 현재의 협상안에서 한치의 후퇴도 받아들이려하지 않는 미국을 등뒤로 하고 국민 앞에 계속 꼼수만 들이대는 걸로 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명박정부는 제발 이 사태가 어떤 식으로든 지나가라고 주문을 외우고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지지율도 올라가고 다들 잊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상처는 깊이 새겨지고 오래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는 것이 상처다. 만약 소고기협상을 국민에게 밀어부치려 한다면 상처받은 국민이 어떻게 반응하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이명박정부를 대할 건지 각오 단단히 해야할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번 사태를 결정하기 전에 고시강행 파장의 크기가 미국과 재협상에 나서는 것과 비교해서 어느 정도인지는 측정해보기 바란다. 혹시 친정부 언론과 국가기관을 동원할 수 있는 국민이 만만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도 돌아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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