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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K사건이 대통령선거를 한달 앞둔 한국을 뒤흔들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들여다 봐도 이 사건은 그 윤곽을 파악하기 힘들다. 기자들 사이에서도 도대체 모르겠다는 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복잡한 금융거래가 얽혀서 그렇기도 하지만 이 사건이 어려운 데엔 다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사건만 있고 그 주역들이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사건에서 알려진 인물은 이명박후보다. 그러나 그 외 나머지는 베일에 가려있다시피 하다. 그렇게 시끄러웠지만 정작 사건의 핵심인물인 김경준에 대해선 잘 알려지지 않고있다. 에리카김이 이명박씨와 한때 절친한 사이였고 에리카김의 동생이 바로 김경준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않다. 언론들이 왜 이 사건의 흥미진진한 ‘관계도’를 써먹지 않는지 의아스럽기까지하다. 

사건을 파악하기 위해선 사건 주역들의 심리와 입장 등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 김경준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왜 최고의 엘리트코스를 거치고 미주교포사회의 명명가 누나까지 둔 그가 주가조작사기를 저질렀을까. 그간 언론을 통해 드러난 김경준을 살펴봤다.

김경준의 생년월일은 1966년 6월6일이다. 그는 6살 때인 72년 부모를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김경준가족의 미국생활은 그런대로 안정적이었다고 한다. 이미 미국에 건너간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국이민자와 비교해 낫다는 것일뿐 김경준 부모도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겪는 과정을 거쳤다. 한국에서 연세대와 이화여대를 나온 김경준의 부모는 미국에서 하루에 16∼18시간씩 일했다고 한다. 김경준도 어릴 때 그런 부모를 보고 공부를 열심히 안 하고는 경쟁사회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이코노미스트 1999. 12)

에리카김씨가 1995년 직접 쓴 자서전 <나는 언제나 한국인>이란 책에는 김경준의 어린시절 에피소드가 두개 나온다. 시사IN은 이 두개의 에피소드를 소개하면서 김씨가 복수심이 남다른 점을 얘기했다.

중소도시에서 엘에이로 가족들이 이사가게 되었다. 그런데 어린 김경준씨가 이사 못가겠다며 울었다고 한다. 자신을 동양인이라고 놀리던 애들에게 복수해주기 전엔 갈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에리카 김씨가 코넬 대학교 2학년이었을 때 1학년 남자 후배에게 강제로 키스 당했다고한다. 이 때문에 에리카김씨가 크게 울었다. 1년 뒤 누나와 같은 코넬대학에 진학한 김경준씨는 그 남학생을 찾아내 다짜고짜 주먹질을 해서 넙치로 만들었다고 한다.

복수심은 다른 말로 하면 자존심이다. 에리카김은 이명박씨에게 동생을 소개하면서 “자존심이 굉장히 강한애”라고 말했다.(시사저널 2007년 11월 19일) 1999년 12월 이코노미스트 인터뷰에서 김경준씨가 밝힌 고교 때 에피소드에서도 그의 강한 자존심이 드러난다.  

당시 김경준은 스티브셰어라는 백인 학생이 ‘그 해의 운동선수’상을 받은 것에 대해 강력히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이미 농구명문대로부터 스카웃제의까지 받은 키 2미터20의 농구선수였다. “여러 가지 운동을 고루 잘하고 공부도 잘하는 학생이라야 한다”는 선발 기준을 들어 “농구는 물론 MIT(매사추세츠 공대) 풋볼팀으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도 받고 배드민턴도 잘 치는 나 같은 학생이 받아야 한다” 따졌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김경준은 급기야 스티브셰어에게 1:1 21점 내기농구게임을 제안한다. 고등학교를 1등으로 졸업하며 받은 자신의 우등상과 셰어의 올해의 선수상을 걸고 내기하기로 한 것이다. 이후 그는 한 달 가까이 농구 연습에만 매달렸고 결국 스코어 21대 17 이겼다. 며칠 후 그 트로피는 2백 달러를 받고 셰어에게 다시 팔았다고 한다.

김경준은 그후 코넬대 경제학과와 시카고대 경제학 석사를 마치고 GE 캐피털 M&A팀을 거쳐 와튼 스쿨(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서 MBA를 했다. 미국에서 GE캐피탈 M&A팀, 모건스탠리 금융공학팀 동경지점에서 각각 2년간 근무한 후 97년4월 한국의 한·미 합작증권사 환은스미스바니로 옮겼다.

스미스바니에서 그는 아비트러지상품개발에 주력했는데 뉴욕본사와 전세계 지점 가운데 최고 수익율을 올리기도 했다. 97년과 98년 회사로부터 9억원과 10억원의 성과급을 받기까지 했다. 그런데 1999년 2월 샐러먼스미스바니는 김경준씨를 해직시킨다. 그리고 김경준씨는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회사는 ‘허위실적유포’와 ‘회사 허락 없이 다른 펀드 설립에 관여’한 이유였고 김경준씨는 연봉성과급을 제대로 지급하라는 소송이었다. 

김경준씨는 애초 계약했던대로 회사의 순실현 이익 109억원의 20%인 21억8천만원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회사측은 109억원은 순실현 이익이 아니라 파생상품팀 전체의 수익이므로 파생상품팀 직원들의 연봉과 김 씨의 연봉 등 비용을 제외하고 다시 계산해 10억원 정도 주겠다고 했다. 회사가 주장한 허위실적유포는 순실현 이익 109억원에 대한 서로간의 시각차를 말하는 것이고 다른 펀드 설립은 BBK와 관련있어 보인다.

김경준 스스로 이코노미와의 1999년 회견에서 밝힌 아비트러지(차익거 래)
그는 지금 한국의 금융시장이 ‘시장중립적’(market neutral)인 아비트러지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아비트러지는 시장이 비효율적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생기는 주식·선물·옵션·CB 등의 국내외 시장가격차를 이용해 수익을 올리는 금융기법. 금융시장마다 수급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가격차는 늘 나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영국시장서 발행한 현대건설 GDR의 상대적인 가격이 한국시장의 현대건설주보다 싸면 GDR는 사들이고 국내 주식은 파는 식이다. 판 것을 메워 주기 위해 사들인 GDR는 국내 주식으로 전환시킨다. 이익은 매매계약 체결과 동시에 발생한다. 주식의 내재가치와는 상관없다. 기업의 가치를 분석할 필요도 없다. 기업은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비유하면, 서울의 콜라값이 부산보다 비싼데 물류비를 제하고도 남으면 서울에 실어 와 파는 식이다. 비효율적이라는 말은 물류비만큼만 가격차가 나야 하는데 실제로는 이를 초과해 가격차가 생긴다는 뜻. 콜라의 비유로 돌아가면 부산에 콜라가 너무 많다는 얘기다. 이런 거래는 시장의 효율성을 높여 준다.

샐러먼스미스바니를 그만둔 2달뒤 1999년 4월 김경준은  BBK투자자문을 설립하고 6월부터 영업을 시작한다. 2000년 2월에는 1년간의 미국생활 후 돌아온 이명박후보와 함께 LKE를 공동설립한다. 이명박후보는 이즈음 김경준을 처음 소개받았다고 했다. 그러나 이명박씨와 김경준이 그 이전부터 알고 지냈을 거라는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김경준을 이명박에게 소개한 것은 에리카김이다. 그런데 또 이 에리카김을 소개한 사람은 한미신용정보회장인 이동연씨다. 시사저널 2007년 11월 19일자에 따르면 재미교포 사업가인 이동연씨가 94년 미국에 간증 하러온 이명박후보에게 에리카김을 소개했다고 한다. 이후 에리카김과 이명박씨는 사람들의 오해까지 받을 정도로 절친한 사이로 지냈다고 한다. 95년 에리카김의 출판기념회에서 이명박후보가 직접 커팅을 하기도 하고 에리카김도 1994년부터 수십 차례에 걸쳐 한국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거의 대부분 이후보를 만났는데, 거기에 동생 김씨도 자주 동행했다는 것이다. 이동연씨는 시사저널 기자의 “당시 김변호사의 동생인 김경준씨도 함께 동행했나?”라는 물음에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후보, 김변호사 등과 만날 때 김씨도 함께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한다.

2001년 3월 BBK는 펀드운용보고서 위조 위혹 등으로 등록을 취소 당한다. 4월에 이명박후보는 LKE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김경준씨와 결별한다. 그전인 2001년 1월 김경준은 주가조작사건 회사인 옵셔널벤처스를 인수하고 자신이 대표로 취임한다. 9월에는 대표이사를 사임하고 11월 심텍이 사기사건으로 자신과 이명박후보를 고소하자 이사도 사임한다. 심텍의 고소로 잡혔다가 심텍에게 30억을 주고 풀려난 후 12월 부인 이보라씨와 함께 미국으로 도피한다. 

2005년 한국검찰의 범죄인인도요청에 의해 미국에서 잡힐 때 그는 로스앤젤레스시 산업개발위원회 위원과 로스앤젤레스시 아시아태평양계 자문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누나 에리카 김씨는 LA한인상의회 회장이었고 LA시 인권위원회 위원이었다. 그의 누이 에리카 킴(35)은 미국 한인사회에서 가장 큰 한국계 로펌 대표로, 대한건설협회·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고문 변호사이기도 하다. 괌 추락사고 관련 소송에서 대한항공측 변호를 맡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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