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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시절 목마름을 채워주었던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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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을 처음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때이다. 집에서 조선일보를 받아보는데, 아침마다 그 신문의 파렴치함에 치를 떨었다. 동아일보는 지금처럼 맛가진 않아 그런대로 보긴했지만 많이 아쉬웠다. 그래서 한겨레신문 창간호를 카운트다운하며 기다렸다.

창간호를 어떻게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의 두근거림만은 생생하다. '빨갱이신문'소리도 듣던 때라 한겨레신문을 사는데엔 주변시선을 의식해야 하는 두근거림이 있었다. 그리고 신문을 펼치면 기존의 신문과 전혀 다른 내용과 시각의 기사를 볼 수 있다는 기대의 두근거림이 있었다.

신문을 다 읽으면 두어시간이 금방 지났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모든 기사를 다 읽었다. 심지어 광고도 찬찬히 읽었다. 한겨레는 광고도 특별했다. 그렇게 읽고도 모자라 장롱속에 두었다 다시 꺼내 읽곤 했다. 가끔 스스로 멍청하다 느낄 때면 지나간 한겨레신문을 꺼내 밑줄 그은 데를 찾아 머리를 굴려대곤 했다. 그건 신문이 아니라 성경이었다.

요즘 36면 신문도 30분이면 다 보는데 8면짜리를 두시간이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뻔한 내용의 보수신문 36면과 정신을 저 깊숙한 데부터 뒤흔드는 8면의 당시 한겨레는 지적밀도에서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한겨레엔 보수신문이 말해주지 않던 혁명가들의 생애와 사상이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시각들이 즐비했다. 그것들을 단초로 해서 사색의 나래를 펼쳤던 것까지 합하면 한겨레 읽기는 깨어있는 시간 내내였다.
 
당시 아침이 즐거웠던 것은 순전히 한겨레신문 때문이었다. 신문을 사러 집앞 도로로 내려갈 때면 곧 한겨레를 본다는 기대감에 흥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하고 내려간 수퍼에 신문이 없을 때가 있었다. 신문사 형편이 좋지 않던 때라 눈이나 비가 많이 오는 날이면 신문이 늦게왔다. 방학 때 신문이 늦게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그날 집과 수퍼를 열번이 넘게 왔다갔다 했다. 결국 그날 신문을 사지 못했고 나는 하루 종일 초조하고 우울했다.

만약 88년 한겨레가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정말이지 나로서는 끔찍한 가정이다. 그랫다면 지금의 나는 내가 아닐 것이다. 나도 모르는 누군가가 이 육체를 지배하고 있었을지 모르겠다. 지금보다 사고가 자유롭지 못하고 한번 더 생각하지 못하고 섣불리 남을 탓하는 그런 인간이 아닐까? 

오늘은 한겨레창간 20주년이다. 내가 한겨레를 처음 알던 딱 그 나이만큼이다. 한겨레가 내 나이 20에 창간되었다는 것이 내겐 어떤 특혜로까지 느껴진다. 창간된 해에 만났으니 한겨레의 소리들이 더 없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하는 20살에 만나 한겨레의 얘기에 듬뿍 빠질 수 있었다. 


한겨레창간 20돌 축하드립니다. 한겨레가 앞으로 20년 뒤에도 또 나처럼 한겨레를 스승으로 느끼고 한겨레 덕분에 제대로된 40세를 맞았다고 회상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신문이 되었으면 합니다. 항상 한겨레엔 고마움을 느낍니다. 이렇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언론으로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정말이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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