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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렉 1편은 외모에 대한 뒤집기다. 슈렉 2편은 그 뒤집기의 연장이다. 1편 결론의 충격이 너무 커서 2편에선 두 못난이 슈렉과 피오나가 같이 살아가는 모습만으로도 영화는 긴장감을 가질 수 있었다. 1부를 도입부로 한 2부는 둘의 사랑이 어떻게 ‘깊어지는지가’의 이야기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러나 3편에선 못난이 캐릭터를 또 써먹을 수 없었다. 외모 뒤집기는 이제 식상한 것이 되었다. 통념에 대한 뒤집기라는 영화의 장점을 유지하면서 외모뒤집기가 아닌 다른 소재가 필요했다. 이번엔 어떤 걸까?

3편의 포인트는 ‘아더’다. 아더는 왕따에 약골이다. 그런데 이런 아더가 '겁나먼' 왕국의 왕이 된다. 왕따를 왕으로 만드는 거? 그럴싸 해보인다. 그런데 아더의 품행이 예상보다 좀 심각하다.

슈렉이 아더에게 왕이라고 알려주는 순간, 직전까지 친구들의 놀림감이던 아더는 갑자기 주먹을 불끈 쥐고 친구들 앞에 서서 괴롭히는 한 친구가 나중에 왕이 될 수도 있고 그가 후일 너희들을 잡을 수도 있다는 연설을 한다. 이거 왕따에 오바맨이다.

그거뿐 아니다. 왕이 생각보다 힘든 일이 될 수도 있다고 하니, 바로 맘이 돌변해서 배에서 내리려고 온갖 수를 다 쓴다. 마법사에게 자존심 버린 영악한 눈물연기까지 펼친다. 왕따에 오바맨에 얍삽하고 잔대가리까지 굴린다.

이건 좀 곤란하다. 어느 정도만 왕따여야 하는데 자질 자체가 왕따다. 어쩔려구 이런 주인공을 만든걸까. 영화가 경멸하는 모든 악덕들을 다 가진 이런 캐릭터를 결말에서 어떻게 수습할려고 주인공으로 만들었을까? 슈렉은 생김새가 괴물인 캐릭터지만 아더는 여태껏 어느 영화도 다뤄보지 못한 괴물스런 캐릭터다.

세상으로부터 조롱 받는 왕따에다 약골에 오바하고 자존심도 쉽게 버리는 영악성도 있다. 이런 아더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 좀 느낌이 오지않나. 아더가 상징하는 것은 바로 정치인이다.

정치인들은 간이라도 빼줄것처럼 하다가도 상황에 따라 돌변해버린다. 그리고 그들은 대중 앞에 서서 연설할 기회를 항상 찾고 자리가 주어지면 오바해서 연설한다. 정치인을 상징하는 아더가 왕따인 것은 정치인이 가장 가장 비난과 조롱을 많이 받는 직업이기 때문일 것이다.

슈렉은 해피엔딩이다. 그렇다면 아더의 결말도 해피엔딩이다. 여태까지 정치인 캐릭터가 영화의 주인공으로 행복한 결말을 맞이하는 영화는 거의 없었다. 정치캐릭터의 해피엔딩으로 슈렉3는 통념에 대한 뒤집기라는 시리즈의 장점은 일단 살렸다. 문제는 이 정치인 캐릭터의 뒤집기가 박수받을만한 자격이 되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는 불굴의 의지나 선명한 투쟁이 인류를 이끌어 왔다고 믿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극적이고 선명한 심성을 가진 역사적 위인들을 기억한다. 그런데 이런 선명한 심성이 충돌하면 어떻게 될까. 불굴의 의지와 투쟁으로 뭉친 두 집단이 대결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 일어난다. 이럴 때 누군가 두 그룹의 명분 사이에서 조정을 하는 활약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조정자는 자신의 자존심과 명분을 내세워선 안된다. 그는 온갖 제스처를 취하고 잔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게 누군가? 바로 정치인이다.

보스니아내전에서 불굴의 의지와 투쟁심으로 무장한 각 민족이 대결해서 수많은 생명이 죽었다. 각 민족 사이에서 그들의 명분을 조정해줄 정치가 없었던 것이다. 자코뱅이나 크롬웰 등의 원리주의자나 도덕주의자에 의해 세상은 엄청난 피를 흘렸다. 그들이 도덕과 원리의 이름으로 정치를 무력화 시켰기 때문이다. 정치가 무력화 되고 부재하면 세상은 그만큼 불행해진다.

그러나 정치가 두 그룹간의 대결을 막았을 때 역사는 누굴 기록할까. 두 그룹사이를 뛰어다닌 정치인과 한 그룹에서 세를 모은 지도자 중 누구를 기억할까. 역사와 여론은 지도자를 더 숭배하고 기억한다. 정치는 오명의 대명사다. 빙산의 밑에서 애썼지만 역사는 명분을 가진 빙산의 일각만을 기억다. 

 

 

아시아가 서구에 밀리는 것은 한중일 간에 정치가 없기 때문이다. 남북이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는 것은 남북간에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많은 나라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고도의 정치력이 작동하는 유럽은 평화롭게 잘 산다.

인류의 희망은 정치다. 남북이 하나가 되고 아시아인의 화합을 도모하는 것은 정치의 힘이다. 우리의 삶을 평화롭고 풍요롭게 하는 것은 강력한 지도자보다 유능한 정치인이다.

마지막에 악당들을 물리친 것은 슈렉의 힘이 아니었다. 슈렉이 위기에 처한 순간 왕따를 통해 정치를 배운 아더의 몇마디 연설이 악당의 총칼을 내려놓게 만든다. 정치는 이렇게 총칼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위대함이다. 누군가도 그랬다 "정치는 예술이다"라고.

정치가 오명을 씻고 좀 더 명예로와질 때 정치는 원활히 작동하고 그 원할한 정치는 이 사회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는 과도하게 비난받으면서 많은 제한을 받고 있다. 정치의 역할이 축소되면 그것은 우리사회의 손해일뿐이다.

한국사회 이제 슈렉처럼 정치 뒤집기를 해보자. 정치에 대한 무차별적 비난을 멈추고 군중들이 아더에게 박수 쳐주듯 우리도 정치를 격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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