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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16일 토요일 저녁




"민지아냐?."

엘리베이터 소리가 들리지 아내가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청명하지 않은 소리가 분명 우리 층은 아니었다.

"아래 층인데."

바로 아내의 짜증섞인 목소리가 날아왔다.

"내가 그렇게 부탁했잖아. 애 좀 데려오라구. 공부한다고 피곤한 애 데려오는 게 그렇게 힘들어. 집에서 하루종일 쉬지나 않았으면 말을 안하지."

"아니 토요일까지 애들 이렇게 붙잡아두냐? 이런다고 능률이 올라?"

"무슨 딴 소리야. 중3 올라가면 이런 줄 몰랐어?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고생한 애 걱정도 안돼?"

민지는 중학교 3학년에 올라가고 나서 합숙을 시작했다. 학교의 방침이었다. 학기초 학부모 모임에서 교장은 명문고에 가려면 중3엔 몰입수업을 해야한다면서 중3 전원이 합숙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근 영방중학교는 2학년부터 합숙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민지야 너 중3 되면 합숙할 수 있겠니?"

올해초 겨울 방학 때 딸에게 물었다.

"학교 안가도 괜찮아요?"

'합숙'을 '학교'로 받아들이는 딸의 대답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렸다. 아이는 '합숙' 안하는 걸 '학교' 안가는 걸로 이해하고 있었다.

작년 중2 때 10시까지 보충수업을 하고 돌아오는 딸을 보고 대안학교를 심각하게 생각해봤다. 공교육이 학원처럼 변하면서 그 반동으로 대안학교들이 몇개 생겨났다. 학교의 방침에 반발하며 나온 전교조 쪽 교사들이 대안학교의 교사로 많이 참여하면서 대안학교도 제법 생겨났다.

그러나 아직 대안학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았다. 주변에 대안학교로 옮기는 것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자 다들 걱정스런 말들을 던졌다.

"거긴 부적응 애들이 간다던데." "외딴데 애들 끼리 사고도 많데."

지난해 대안학교 여학생 임신사건이 언론에 크게 기사화 된 적이 있었다. 사실 그런 사건은 일반고교에서도 있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유독 그 학교의 사건이 이상하게 크게 보도되었다. 알만했다. 대안학교가 성장하려는 기미가 보이자 기득교육권력들이 견제구를 날린 것이다.

대안학교를 고민한 건 애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반학교에 애를 보내는 데 경제적 부담이 너무 컸다. 민지가 중 1 때부터 공납금 외에 수업료와 여러가지 잡비로 학교에 20만원을 내고 있었다. 그리고 중 3이 되면서 30만원을 합숙과 추가 수업료로 학교 측에서 더 요구했다. 공납금까지 합쳐 한 학기 400만원이다. 교장이 학기초에 학부모를 부른 것도 이 부분을 통보하기 위해서였다. 교장은 설명회 내내 하바드출신 원어민 강사가 두명이나 있음을 자꾸 강조했다.

중학교의 경우 한 학생이 매달 평균 40만원 정도의 돈을 학교에 내는데, 학생 500명인 경우 한달 약 2억의 돈이 걷히고 일년이면 24억이다. 교육시장 자율화에 따라 이 돈의 재량권은 전적으로 학교장에게 맡겨졌다. 눈먼돈이 수십억이니 문제가 안 생길 수 없었다. 보충수업료와 합숙비 관련해서 매년 학교의 비리 기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업료 비리 관련해서 교장이나 관련 교사가 구속된 적은 없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 교육단체의 막강한 파워와 로비력에 대해 파헤친 기사를 싣기도 했다.

한 교육투쟁가는 라디오에서 이렇게 말했다.

"보충수업비가 교육을 파탄내고 있어요. 학부모은 그 돈 때문에 죽어나고 교사는 그 돈의 맛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해요."

아들이 고등학교 다니는 회사 동료가 수업료 걱정하는 나에게 한마디 던진 적 있다.

"고등학교는 한달 백만원 넘을 때도 있어 이사람아. 학교에서 미국단체연수 간다는 데 안보낼 수 있어. 못가는 애들 중에 자살도 하고 그런데. 그러니 카드빚을 내서라도 보내는 거야.

"학교에서 어떻게 그 비싼 해외여행을 보낸단 말이야."

"학교? 학교는 무슨 학교. 학교가 시장된지 한참 됐어 이사람아. 학교가 아니라 시장이야 시장."

이명박정부의 교육자율화로 학원가는 많이 침체되긴 했다. 정부는 그 부분 자랑하기도 했다. 그러나 조삼모사였다. 학교가 학원화 되면서 학교와 학원이 나눠가졌던 시장을 학교가 독점했다.오히려 상황은 더 악화된 면이 있다. 학부모가 부담하던 사교육비는 이제 학교가 공교육의 권위로 당당하게 뺐어갔다. 학원에 돈 줄땐 큰소리 치며 줬는데 학교엔 더 많이 주면서도 찍소리 할 수 없었다.

학원과 학교가 시장을 나누던 때가 더 좋았다. 그때는 피할 데가 있었다. 아무리 사교육 열풍이 불어도 학교에만 보내고 신경끄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젠 학교가 학원화 되면서 사교육이 공교육으로 들어와 버렸다. 사교육을 피할려면 공교육에서 빠져나와야만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교육권력자들이 달라는 돈과 명령을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시장이 단일화 되면서 정작 중요한 학생과 학부모의 자율권은 오히려 약화된 것이다.

학교의 수입원은 보충수업비나 합숙료만이 아니었다. 작년에 서울대에 50명을 보낸 C고교는 그 학교교사들이 만든 문제지가 대박을 내면서 출판에 간여한 교사 1인당 1억원이 넘는 돈을 받았다. 서울대 로또였다. 일선교장들은 그 기사가  실린 신문지를 조회시간 마다 흔들어댔다. 서울대 보내서 돈 벌어보자 그 얘기였다.

전교조는 이미 오래전에 몰락했다. 학교가 시장화 되면서 교사들의 인성학습 공간은 완전히 사라졌고 전교조교사들은 점점 힘을 잃기 시작했다. 학교간 경쟁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고, 결국 점점 위축되다 이젠 이름만 남았다. 아무도 전교조의 성명서에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다.

2012년 18대 대선에서 정권이 바뀔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야당은 여당의 교육자율화 공격했고 여론도 그에 호응하며 여론조사에서 야당후보가 앞서나갔다. 이에 힘을 얻은 야당은 교육평준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그게 화근이었다. 이미 돈 맛을 알게된 교사들이 야당의 평준화 공약을 일제히 공격하기 시작했다. '교권침해다.', '평준화는 사회주의식 정책', '관료들의 간섭은 교육의 질을 저하시킨다.' 등의 주장을 일제히 쏟아내며 시위를 벌였다.

현재 좋은 학군의 집값이 야당이 집권하면 폭락할 것이라는 소문도 여당을 도왔다. 여당은 기회를 놓칠세라 오히려 농촌이나 교육취약지역에 원어민 강사와 유명강사를 모신 합숙교육기관을 설치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예상을 뒤엎고 여당이 승리했다. 그리고 올해 총선 야당은 다시는 평준화 공약을 내걸지 않겠다며 교육단체에 약속했다.

"민지 왔어"

딸이 왔다. 먼저 녀석의 얼굴부터 살폈다. 혹시 공부하다 몸이나 안상하는지 걱정이 되었다. 사실 그보다 더 걱정스러운 것은 마음이었다. 시장화된 교육현장에서 상처받지나 않을지 불안했다.

"너희 학교 토요일날은 좀 일찍 안보내주냐"

"사관고 준비반 애들은 아직도 있단 말이야."

아내도 그러더니 딸도 빗나가는 답변을 한다.

딸은 명문고인 사관고 준비반 애들과 함께 하지 못하고 더 일찍 나온 것이 기분 나빴던 것이다. 사관고는 사실 한 반에 한명도 들어가기 힘든 데다. 사관고 준비반이란 건 우열반과 열등반을 돌려 말하는 이름이었다. 이제 16살 된 애들이  성적에 따라 벌써 차별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8년 전 그 것만 되지 않았다면....

그들이 잘못 알았다. 그들은 교육시장을 개방하면 단기적 혼란을 있어도 장기적으론 안정화 된다는 기대를 했다. 그들은 정말 그렇게 믿었다.

참 바보들이다. 어떻게 그런 단순한 믿음으로 정책을 만든단 말인가? 그들은 한국에 진정한 교육시장이 없다는 걸 몰랐다. 한국은 '교육'이 아니라 '학벌'시장이다. 사교육시장은 '교육'을 파는 데가 아니라 보다 효율적으로 '학벌' 따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다. 정신나간 그들은 이 왜곡된 학벌시장을 공교육으로 흡수시켜 공교육마저 망처버린 것이다.

자고 있는 딸의 얼굴을 보며 나즈막히 얘기했다.

"미안하다 민지야. 아빠가 그 때 못막아서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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