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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정은 조삼 선생께서 후학 양성과 남은 여생을 보내기 위해 함안군 괴산리 지금의 자리에 직접 지어 자신의 호 '무진'으로 명명한 정자이다. 조삼 선생은 1473년 태어나 1507년 문과에 급제해 다섯 고을 목사를 맡았고 사헌부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까지 지냈다. 연산군 폭정에 주도적 역할을 한 유자광이 중종 이후에도 계속 권좌에 앉아있자 울분을 참지 못하고 유자광을 주벌하자는 상소를 올리기도 한 곧은 선비였다.



조삼 선생이 재직 당시 조정에선 사림파와 훈구파의 싸움이 치열했다. 1519년엔 사림파에  압박당하던 훈구파가 기묘사화를 일으켜 조광조 등 사림파 선비들을 대거 숙청했다. 사림파의 일원이었던 조삼 선생의 낙향은 이와 같은 사화에 영향받았던 것 같다. 공직 말기엔 유유자적하게 일을 하여 언관으로부터 탄핵을 받기도 했는데 일부러 자초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후 4차례 이어진 사화로 사림파는 큰 피해를 입었고 사람들이 조삼 선생의 낙향을 혜안이라며 부러워하고 칭송했다고 한다.



정자에는 정자의 유래를 적은 기문이 있다. 무진정의 기문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을 세운 주세붕이 썼다. 주세붕은 기문에서 조삼 선생을 언급하며 당시의 극존칭인 '선생'을 열네번이나 썼다. 그만큼 선생을 존경한 것인데 당쟁과 사화로 파탄난 현실 정치에서 용퇴하지 못한 자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단호히 용퇴한 조삼 선생에 대한 존경을 담았기 때문인 것 같다. 


무진정 기문 출처 : 실비단안개


선생이 내게 이르기를 자신이 무진정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니 그대는 나를 위해 기문을 지어달라고 했다. 내가 선생을 매양 뵈올 때마다 문득 나를 인도해 올랐기 때문에 그 좋은 경치를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주세붕의 무진정 기문 중에서)



겨울에는 문을 닫고 햇볕을 쪼일 수 있고 여름에 창문을 열면 더위가 가까이 하지 못하니 삼도의 자주빛 비취색 같은 좋은 경치와 통하고 십주의 노을빛보다 낫다고 했다. 맑은 바람이 저절로 불어오고 밝은 달이 먼저 이르며 반걸음을 옮기지 않아도 온갖 경치가 모두 모였으니 진실로 조물주의 무진장이라 하겠다. 

(주세붕의 무진정 기문 중에서)



주세붕의 무진정 기문은 그의 글 중에서도 백미로 꼽힌다. 수려하고 격조가 높은 글을 읽는 맛도 있지만 주세붕이 남긴 설명과 비교하며 정자를 살펴보는 재미도 적지 않다. 조삼 선생의 낙향이 혜안이었음을 얘기하면서 현실 정치의 잔인함을 지적하는 부분에선 글에 긴장감마저 느껴져 흥미진진하다. 



대체로 벼슬이 비록 영화롭기는 하지마는 욕이 따르는 것이므로 군자는 용퇴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어세겸 정승 같은 분은 온 나라를 빛내는 문장으로 임금의 정사를 도와 많은 선비들의 기둥이 되어 그 명망이 더없이 높았지만은 죽은 후에 또한 화를 면하지 못했으니 선생의 낙과 비교한다면 부끄러움이 있지 않겠는가? 

(주세붕의 무진정 기문 중에서)



선생은 이런 일들에서 보는 바가 있었음인가? 그리고 선생은 눈앞에 있는 산을 가리켜 죽은 후에 갈 곳으로 삼았으니 이 또한 천명을 아신 것이다. 천명을 알았기 때문에 능히 용퇴할 수 있었고 용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능히 이 즐거움을 느릴 수 있었으니... 

(주세붕의 무진정 기문 중에서)



정자의 경치도 무진하고 선생의 즐거움 또한 무진한 것이다. 무진한 선생의 즐거움과 무진한 정자의 경치가 모였으니 정자의 이름은 선생의 이름과 더불어 무진할 것이 분명하다. 

(주세붕의 무진정 기문 중에서)



무진정 앞에는 천여 평의 아담한 연못이 있다. 세 개의 인공섬을 만들고 섬에 영송루를 지어 돌다리로 연결해 아주 운치있는 경치를 자아내는 연못이다. 연못은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연출하여 감탄을 자아낸다고 한다. 



이 연못에선 매월 사월 초파일 낙화놀이가 있다. 숯가루를 불에 붙여 날리면 연못에 그 불빛이 비치는 장관이 연출된다. 함안을 대표하는 행사가 된 낙화놀이를 보기 위해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연못에 몰려든다. 



이 연못은 조삼 선생의 후손들이 물길을 돌려 만들었다고 한다. 무진정 덕분에 만들어진 연못이지만 지금은 무진정보다 더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무진정의 무진한 즐거움이 지금 우리에게까지 이어진 것을 보니 조삼 선생의 혜안은 정말로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이 글은 갱상도문화공동체해딴에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함안팸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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