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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룡사를 찾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만나는 건 일주문이 아니라 이 석장승이다. 아주 소박하게 조각된 석장승은 사찰의 엄숙함보다는 친근한 우리네 동네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어서 발길을 한결 가볍게 한다. 그리고 보통의 절과 달리 이런 석장승을 세운 절에 대한 기대감도 갖게 한다.



수호신 같은 이 석장승이 한 때 사라진 적이 있다. 2003년 9월 없어졌는데 이듬해 충남의 폐벽돌공장에서 발견되어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다. 다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석장승이라니 이래저래 예사롭지 않은 석장승이다.



석장승에서 느낀 소박함은 관룡사의 일주문에도 이어져있다. 사찰의 첫 관문인 일주문치고 꾸밈도 느껴지지 않고 입구도 아주 작다. 



설명에 의하면 양반의 행패를 막기 위해서란다. 조선시대 승유억불 정책에 따라 승려들이 차별을 받았다. 양반들은 절에서 향략을 즐기기도 했는데 말을 타고 절에 들어오지 못하게 일부러 문을 작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지나온 문을 보니 폭도 좁고 서장훈 선수 정도의 키라면 허리를 숙여야 들어올 수 있을 정도로 낮았다.



당시 양반에겐 불편했겠지만 지금 스마트폰 세대에겐 이 일주문이 셀카 찍기에는 안성마춤일 거 같다. 일주문 앞 계단에 앉으면 세월이 쌓인 돌들이 사진 전체 배경이 된다. 일주만 앞에 서면 액자효과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셀카 얘기 조금 더 해보자. 더 올라오면 원음각이 나타나는데 원음각을 따라 난 황토빛 담도 사진 찍기에 모양이나 빛깔이 참 이쁘다. 



사진이 예쁠 거라고 짐작하는 것은 담 기와 위에 핀 능소화가 너무나 조화로웠기 때문이다. 



황토빛 담을 배경으로 쭈구리고 앉아서 찍으면 재밌고 때깔 좋은 사진이 나오지 않을까?



관룡사 법고는 단청도 없이 나뭇결이 그대로 드러난 게 다른 절과 많이 다르다. 그런데 그 다름이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그건 석장승에서 일주문을 거치면서 관룡사의 자연과 조회되는 소박한 미적 감각에 동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저 법고에 치장을 했다면 뭔가 튀고 이상했을 것이다. 



깊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관룡사는 한 폭의 그림 같다.  



그 그림은 심지어 관룡사 기와와도 너무 잘 어울린다. 산세와 관룡사 기와는 이빨처럼 맞닿아 있다. 결코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친근하고 자연친화적인 관룡사의 미적 감각은 이렇게 기와에도 담겨 있는 것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관룡사의 미덕은 자연에서 배운 게 아닐까 생각이 든다. 이곳은 자연재해가 빈번한 곳이다. 1704년  가을 대홍수로 금당과 승탑 등이 떠내려가고 승려 20여 명이 죽었다. 태풍 매미 때도 절과 인근 마을이 많은 사람이 죽는 등 큰 피해를 입었다. 거대한 자연재해 앞에서 사람들은 한 없이 작아졌을 것이다. 



관룡사의 불상은 어린애 같은 천진난만한 인상이다. 자연친화적이고  자연 앞에서 겸손한 관룡사의 그 모습들이 불상에도 베어있는듯 하다. 


* 이 글은 갱상도문화공동체해딴에의 지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창녕팸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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