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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와 커피 중 무엇을 더 많이 먹을까요?" 


매암다원 강동오 원장의 질문에 일단 '차'라고 대답했다. 여기는 다원이고 이 질문을 한 사람은 다원의 주인장이니 답은 당연해 보였다.  


"차를 즐겨마시는 인도와 중국의 인구를 생각해보면 답이 나오죠."


정황상 '차'라고 했지만 한 켠엔 답을 인정하지 못하는 맘이 남아 있었다. 대추차, 오미자차, 허브차 등 모든 우려낸 걸 차라고 한다. 심지어 보리차나 옥수수차도 차다. 이런 모든 것과 커피를 비교하는 것은 불공정해 보였다. 





"커피보다 많이 마신다는 차는 어떤 차를 말하는 겁니까?"


강동오 원장의 답이 용수철처럼 튀어나왔다.


"여기서 말하는 차는 동백나무과 차나무종 나무에서 나온 차를 말합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차나무는 유전적으로 동일합니다. 대추차나 허브차 이런 건 차가 아닙니다. 그런 걸 통칭해서 대용차라고 하지요."


머리가 한 대 맞은듯 번쩍 깨였다. 차(tea)는 뭔가를 우려내어 음용하는 음료수가 아니였다. 차나무에서 난 잎을 우려낸 것만이 차였다. 그러므로 커피와 차의 비교는 너무나 공정한 것이었다. 





강동오 원장에게 들은 차 이야기는 다 그런 식이었다. 우리가 흔히 먹는 차지만 너무나 몰랐던 사실에 머리가 번쩍하고 깨이는 그런 이야기였다. 


영국은 홍차로 유명하다. 홍타 티타임이 있을 정도로 영국에서 홍차는 일상인데 이 홍차도 우리가 먹는 녹차와 같은 나무에서 생산된 것이다. 차이라면 녹차는 발효되지 않은 잎이고 홍차는 발효되었다는 것이다. 검색해 보니 홍차만 봐온 유럽사람들도 홍차와 녹차의 이런 차이를 잘 모른다고 한다.





커피는 블랜딩에 따라 다양하게 마시는데 차는 수확 시기나 발효에 따라 종류를 달리하는 경향이 있다.


전혀 발효하지 않은 차는 녹차다. 반발효차는 우롱차고 좀 더 발효하면 홍차. 중국에서 유명한 보이차는 후발효차다. 





곡우(4월20일) 이후 10일 동안 수확한 찻잎으로 만든 녹차를 세작이라 하고 입하(5월6일)부터 5월 중순까지 수확한 보통 잎 크기 차는 중작, 5월 중순부터 말까지 수확한 것은 대작이라고 한다.





명절에 지내는 차례의 차는 (tea)를 쓴다? 차례를 말 그대로 차(tea)로 예(禮)를 올린다는 뜻으로 차의 발상지인 중국에서 유교가 들어오면서 차를 올리는 중국 제례의 명칭이 전래된 것이다. 





중국에서 차를 먹기 시작해 세계가 중국의 차를 먹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으로까지 간다. 그걸 증명하는 것이 바로 차마고도다. 차마고도를 통해 중국과 인도 등 지역 간 차와 말의 거래가 있었다. 





유럽이 차를 먹기 시작한 건 16세기 네덜란드가 동인도 회사를 통해 차를 수입하면서부터다. 그러나 가장 차를 많이 마시게 된 나라는 홍차의 나라 영국이다. 


영국의 유별난 홍차 사랑은 세계사까지 바꾼다. 영국은 중국으로부터 차를 수입하는데 드는 많은 돈을 아편을 팔아 메꾸었다. 그래서 일어난 것이 아편전쟁이다. 보스턴차 사건은 미국독립전쟁의 시발점이었다. 




 

중국의 문화를 가장 빨리 받아들였던 한국과 일본의 차 역사는 오래되었다. 발상지인 중국과 한국, 일본 3국은 각자의 차문화를 이루는데 한국은 다례(茶禮), 중국은 다예(茶藝), 일본은 다도(茶道)라고 한다. 중국은 차를 예술로 보고 일본은 도를 중요시하고 한국은 예를 중시하는 것이다 





"조선의 막사발이 일본에선 다완으로 아주 귀중하게 취급된 이유는 뭐죠"


조금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강동오 원장은 재밌게 풀어주었다. 


"막사발이 싸니까요. 그 많은 무사들에게 비싼 도기를 줄 순 없잖아요." 





쌍계사에 가면 차 시배지가 있다. 이 시배지는 삼국사기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42대 흥덕왕 3년(828년) 왕명에 의하여 대렴이 당으로부터 가져온 차종자를 지리산 계곡에 심은 것으로 전"한다고 나온다. 이 근거를 가지고 전문가들이 쌍계사로 시배지를 추정한 것이다.


그러나 강동오 원장은 쌍계사 시배지는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그 뒤에 보면 이미 선덕여왕(632년~647년) 시절에 차가 있었는데 더욱 성행했다"고 나오거든요. 그럼 흥덕왕 때 심은 곳은 시배지가 아니거든요. 정확한 시배지는 알 수 없는 거죠."





"다산 정약용 선생은 우리나라 차문화의 중시조라고 할 수 있어요'


강동오 원장의 얘기를 듣고 정약용 선생의 이야기를 찾아봤다. 강진에 유배된 정약용은 그곳에서 6명의 제자를 길렀다. 그러자 그의 인품에 반한 주민들이 차나무가 많은 산에 집을 만들어 주었다고 한다. 정약용 선생은 감사를 표하며 자신의 호를 차나무가 많은 산이라는 뜻의 ‘다산(茶山)’이라 짓고 자신이 살게 된 집도 ‘다산초당’이라 지었다. 정약용 선생은 다산초당에서 차를 즐겨마시면서 학문에 몰두해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50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마른 벽돌 쌓아 만든 작은 다조는

이화(離火)와 손풍(巽風)의 형상이라네.

차 익을 제 산머슴은 졸고 있는데

하늘하늘 연기만 홀로 푸르다.


-정약용, 다암시첩 제5수 중-





강동오 원장이 운영하는 매암다원은 그의 할아버지인 고 강성호 옹이 조성했다. 강성호 옹은 고유의 차 제조기법을 재개발하고 보존하며 이곳을 지켰다. 그리고 강동오 원장의 부친인 매암 강화수님과 강동오 원장이 이곳에 2000년 차문화박물관을 개관했다. 매암다원은 차의 역사와 문화를 지켜오는 차의 종가이다.





한 잔의 차가 노곤한 몸을 깨우듯 매암다원 강동오 원장의 차 이야기는 차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깨웠다. 티백에서 녹차와 다른 대용차를 구분하지 않고 먹었던 그 맛보다 차의 맛이 한결 달라져 있었다. 커피보다 훨씬 재밌고 오래된 차 이야기가 더해지니 맛이 더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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