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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소설

8편 자본의 몰락

커서 2014. 10. 23.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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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부활을 추진했으며 그 목적은 대체 무엇입니까?"


첫마디부터 터져나온 공격적 질문에 진호가 멈칫했다. 항상 머금고 있던 웃음기가 얼굴에서 사라졌다. 


"커서님 살기 싫으십니까? 예전에 어머니한테 왜 낳았냐고 묻고 그랬습니까? 안그러셨잖아요? ㅎㅎ"


진호는 금새 웃음기를 되찾았다. 보란듯이 웃음은 더 커졌다.


"정책이나 프로젝트에 대해선 사실 단순한 답변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거기엔 여러가지 사연과 맥락이 얽혀있죠. 때론 주체가 명확하지도 않을 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커서님은 짧게 던진 질문이지만 그에 대한 대답은 길 수 밖에 없습니다."


진호의 뒤에 앉은 남자가 계속 허공을 응시하면서 검지를 까딱거렸다. 그가 응시하는 공간엔 가늘고 희미한 빛의 잔상이 보였다. 남자는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를 조작하고 있었다. 커피숍 안의 손님들 대부분이 남자와 같은 모습이었다. 여기저기 테이블마다 검지를 들고 까딱거리는 모습은 그들은 서로는 인식하지 않았을테지만 마치 연출된 퍼포먼스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누가 부활을 추진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선 한가지는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주체가 정부는 아니라는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커서님이 생각하시는 그런 정부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국가가 사라진 겁니까?"



"아니요. 국가는 그 의미가 예전보다 많이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 존재합니다. 사라진 건 정부를 운영하는 정치세력, 즉 대통령이나 정당입니다."  


"그렇다면 국가는 누가 통치합니까?" 


"우리 모두가 합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소셜로 합니다."


진호가 손을 들어 좌우로 돌려 보였다. 손목시계가 짤칵짤칵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스마트와치였다. 


"모든 권력과 자본은 소셜에 들어있습니다. 지금은 권력이 필요하거나 자본이 필요하면 정치세력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소셜에 요청합니다. 소셜이 자본과 권력을 나눠줍니다."


남자 앞에 여자가 다가와 섰다. 몇 초가 지나도 남자의 반응이 없자 여자가 테이블 위의 시계를 낚아채 버렸다. 순간 홀로그램 빛의 잔상이 사라졌다. 남자가 화들짝 놀라 몸을 곧추세웠다. 여자를 확인하자 남자의 얼굴엔 이내 미소가 번졌다. 남자가 여자의 손을 잡아 자리로 끌어 앉혔다.   


"소셜에서 평판이 높은 사람들이 갖가지 공익적 프로젝트를 실시했습니다. 이건 커서님 시대에도 흔히 있었던 일이죠. 이게 관료나 자본이 하는 것보다 효과가 훨씬 좋았습니다. 그러자 정부는 물론 자본도 점점 소셜 파워들에게 사업이나 정책을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돈이 소셜로 몰렸겠죠. 소셜펀딩이 경쟁적으로 생겨났습니다. 좋은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검증도 쉽게 받을 수 있는 소셜을 통해 사업을 하는게 자본에겐 이익이었죠. 그러자 어느 순간 사람들은 자본의 역할에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소셜에서 자본을 분배하는데 그럼 자본을 무엇을 하느냐는 것이었죠. 돈을 가지고 있다는 게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아이디어와 신망만 있으면 누구나 소셜에서 자본을 모을 수 있으니까요. 22세기가 끝날 때 쯤 세계 금융회사의 50%가 망하고 말았습니다. 거의 교환기능만 남은 화폐를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지금도 살아가는데 돈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자본으로서의 돈의 기능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그 기능은 소셜의 평판자본이 거의 대체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시대에 자본이 몰락했다고 말하는 겁니다."


진호가 테이블에 붙였던 몸을 빼서 등받이에 기댔다. 낮고 깊은 의자 속으로 진호의 몸이 가라앉았다. 이내 몸을 튕기듯 세우더니 다시 테이블에 붙였다. 아까보다 허리가 뒤로 빠져 상체가 좀 더 앞으로 굽었다. 테이블에 팔을 괸 채 검지 마디로 안경을 치켜올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진호의 시선은 줄에 맨 듯 내게 고정되었다. 그의 줄기찬 시선에 무언가 응답을 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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