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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소설

7편 진보의 득세

커서 2014. 10. 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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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말 풍미했던 신자유주의는 21세기 초 서서히 역풍 조짐이 보였다. 한때 세를 넓혔던 유럽과 일본의 극우세력은 신자유주의 시대의 마지막 발악이었다. 오바마를 필두로 진보세력이 집권하면서 50년 간 전세계를 지배했던 신자유주의 장막은 걷히기 시작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2012년 대선을 마지막으로 보수진영은 2050년까지 40년 동안 불임세력이 되었다. 2056년 집권도 중도 정당과의 연대로 간신히 집권한 것이었다. 한국은 2030년 개헌으로 의원내각제로 바뀌었다. 한국의 진보로의 정치지형 변화가 전세계 어디보다 가장 짙었던 것은 신자유주의 역풍에 정치세대의 역전이 보태어진 덕분이었다. 노무현 퇴임 후 이명박과 박근혜의 연속 집권은 진보진영을 절망에 빠뜨렸다. 진보진영은 한국사회의 고령화로 보수의 득세가 앞으로도 이어질 것으로 보았고 한때 중도층과 노년층에 어필하는 전 정치적 자세를 취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은 그때가 보수의 끝물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년기를 보낸 세대가 박정희 코드에 호응한 것이 이명박·박근혜의 당선이었다. 이후 캐스팅보드 세대가 40대에서 50대로 넘어가며 세대 역전의 조짐이 보이더니 2017년 처음으로 김대중·노무현 세대가 박정희 세대를 숫적으로 우세를 보였다. 그 뒤 선거에서 부침은 있었지만 김대중·노무현 세대의 숫적 우세 상황은 수십년 간 유지되었다. 고령화가 이제 진보의 장기집권을 도운 것이다. 나이가 들면 의식이나 생활습관이 보수적으로 되지만 정치적 성향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노무현을 좋아하던 사람이 나이가 들었다고 갑자기 박정희를 좋아하는 경우는 없다. 진보와 보수의 위치가 바뀌었다. 진보가 정규직이 되고 보수가 비정규직처럼 항상 여론의 눈치를 보며 불안해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진보가 집권하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전국민이 기초임금을 받았고 의료와 교육은 빈부와 상관없는 기본권이 되었다. 보수 정당과 언론이 진보정권의 정책에 맹공을 퍼부었지만 그들이 걱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당연했다. 복지와 기본임금에 들어가는 돈은 보수정권이 금융자본과 대기업에 퍼주는 돈의 절반도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금융권과 대기업은 벌어들인 돈을 쌓아두고 유통시키지 못했다. 수천조의 돈이 은행과 재벌의 창고에서 잠을 자면서 국민경제는 활력을 잃어갔다. 반면 진보정권이 서민들에게 분배한 돈은 빠르게 유통되었다. 진보의 복지정책이란 것이 결국 경제의 물꼬를 틔워서 경제를 더 잘 돌아가게 했다. 대기업에게도 진보의 집권은 호재였다. 더 이상 국내에서 투자할 데를 찾지 못했던 대기업들에게 진보정권이 개방시킨 북한은 구세주였다. 중국과 러시아 일본과 남한 사이에 위치한 북한은 지정학적으로 결코 의심할 수 없는 투자 최적지였다. 매년 수백억 달러의 투자와 함께 수십만명의 남한 젊은이들이 북한으로 들어갔다. 북한이 남한과 경제적 격차를 없애는데엔 채 20년이 걸리지 않았다. 2065년 경 한반도는 거의 통일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었다. 여기까지가 내가 아는 세상이다.


"딩디리 딩디링"


전화소리가 울렸다. 


"말씀하세요."


2030년 경부터 대부분의 시스템은 인간의 말로 작동시킬 수 있었다.


"커서님 진홉니다. 나오시면 10분 정도 걸리실 겁니다. 지금 거기 있습니다."


부활센터를 나와 거리를 나섰다. 밤에 인근을 잠시 나와보긴 했지만 낮에 거리를 걷는 건 처음이었다. 200년이란 시간이 주는만큼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이 곳도 많이 달라져 있었다. 무엇보다 하늘이 보인다는 게 좋았다. 과거에 보였던 고층 아파트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낮은 건물로 시원하게 드러난 하늘 아래 멀리 산봉우리가 보였다. 21세기 도심에선 도저히 기대할 수 없는 경치였다. 어떤 재료를 쓴 건진 몰라도 곡면의 건물이 많이 보였다. 나무로 지은 집과 황토로 지은 집들도 꽤 보였다. 가장 특이한 점은 거리에 주차된 차가 한 대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로를 나와서야 차들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차량이 버스였다. 10여 분 걷는 동안 소형차량은 서너대 정도만 봤을 뿐이다. 스마트폰 때문일까? 자동차가 사라지는 조짐은 내가 살던 시대에도 있었다. 사람들은 자동차의 질주보다 스마트폰으로 온라인을 질주하는 걸 더 좋아했다. 2010년 경 50% 넘긴 대중교통 이용률은  2050년 80%를 넘어섰다. 사람들은 운전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놓으려 하지 않았다. 대신 스마트폰을 하기위해 운전대를 놓았다. 자동차 회사들이 무인운전 자동차를 내놓으며 안간힘을 썼지만 되돌리기엔 늦었다. 사람들은 정말 자동차가 필요할 땐 렌트해서 썼다. 그리하여 스마트폰은 교통사고와 탄소발생을 획기적으로 낮춰버렸다. 도로에 차량이 줄어들자 도로도 줄어들었다. 줄어든 도로는 자전거 등 개인용 탈 것을 위한 길로 바뀌었고 보도는 스마트폰 사용자를 위해 더 넓어졌다. 


"잘 찾아오셨네요."


진호가 커피숍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커피숍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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