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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29일 안철수 대표의 비공개 블로거간담회를 다녀와서 느낀 바를 적은 글입니다.

 

 

안철수는 내가 여태껏 들어본 유명인 중 가장 기름기 없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다. 20대 어디 쯤에서 그의 목소리는 변화가 정지한 느낌이다. 유명인이 아니라도 40대 이상의 남자라면 목소리에 위압과 포장이 끼어있게 마련인데 안철수에겐 그런 게 전혀 없다.

 

도박판에서 상대 패를 읽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목소리다. 좋은 패가 들어왔을 때 흥분되어 갈라지는 목소리를 숨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진짜 도박꾼들은 바로 이런 목소리를 읽고 베팅을 한다. 포커페이스는 가능하지만 포커보이스는 불가능한 것이다. 

 

 

김미희 의원 자유발언 듣는 안철수 의원


 

국회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있는 안철수의 사진이 주목받은 적이 있다. 통합진보당 김미희 의원의 연설이 진행되는 가운데 대부분의 의원들이 퇴장하고 안철수가 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장면이었다. 그런데 당시 문재인 의원도 그 자리에 있었다. 기자가 문재인보다 안철수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안철수의 모습이 왠지 모르지만 감성을 더 자극했기 때문이다. 

 

여성 경영진이 남자들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소개하는 책 <오만하게 제압하라>를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남자들은 여성처럼 말싸움이 아닌 영역싸움을 한다. 말을 꺼내는 순간 남자들은 패배했다고 느낀다. 남자들은 그전에 목소리, 눈빛, 침범적인 액션으로 자신의 영역을 과시하며 상대를 제압한다. 이런 남자들의 성향을 이해해야 여성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이 책의 내용이다.

 

안철수에게선 그 어떤 영역표시도 느껴지지 않는다. 목소리, 눈빛, 액션 등에서 안철수는 과시하거나 상대를 제압하려는 모습이 일체 없다. 이러니 누구나 친근감을 느껴 나타났다 하면 사람들이 모여든다. 영역표시가 없는 수줍은 듯한 중년의 안철수는 감성까지 자극한다. 유세장에서 안철수가 유세 청중을 몰고 다니고 카메라가 누구보다 안철수에게 먼저 초점을 맞추는 게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영역표시를 하는 남자들의 성향을 알아야 여성들이 남자들을 이해할 수 있듯이 영역표시가 부재한 점을 간파해야 안철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2012년 대선 당시 안철수와 박근혜 대통령 여론조사에서 안철수가 대부분 이겼는데 그건 아마도 안철수의 영역표시 부재가 박근혜의 여성성을 일부 상쇄시켰기 때문일 수도 있다.

 

7.30재보선 공천에서 탈락한 금태섭씨가 당대변인을 사퇴했다. 사실상 안철수 곁을 떠난 것이다. 정치판에 입문한 후 안철수를 떠난 정치인은 한 둘이 아니다. 이를 두고 언론에선 '굴려도 커지지 않는다'며 안철수의 세력에 의문부호를 붙이고 있다. 그러나 이건 달리 볼 부분도 있다. 자기 사람 챙기기는 정치권에 대한 단골 비판이었는데 그걸 안철수가 안한 것이다. 비공개간담회에서 안철수가 한 이 말이 그래서 허투루 들리지 않았다.

 

 

"저는 어느 편도 안들었습니다. 전체의 대표지 세력의 대표는 아니잖아요. 저를 믿고 합당한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억울해 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합쳤을 때 지분 요구 할 수 있었거든요. 6.4지방선거 때 50% 달라면 다 받았을 겁니다. 저는 그건 옳지 않다고 봤습니다." 간담회 중에서

 

 

세력을 만들지 않는 건 영역표시가 없는 안철수에겐 예상된 결과다. 영역표시가 없다는 건 신호가 없다는 말이다. 영역표시는 다른 편에겐 적대적 신호가 되지만 같은 편에겐 우호적 신호가 된다. 상대는 신호에 반응하고 자기 세력은 신호를 기다린다. 신호가 없으니 적도 없고 세력도 없다. 

 

영역표시를 할줄 모르는 중년의 한 정치인이 영역표시가 가장 치열한 정치판에 들어왔다. 상대를 제압할 가장 긴요한 수단을 가지지 않은 안철수가 야당 대표로서의 투쟁력과 리더쉽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따르는 게 당연하다. 그런 의문때문인지 안철수는 야당 대표가 된 후 지지율이 곤두박질쳤다.  

 

실제 안철수는 약한 투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약점을 노출하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안철수의 칼날은 무디다. 그런데 과연 안철수가 투쟁적 모습을 보이면 수긍할까? 안철수는 중도층의 지지를 안고 새정치연합에 들어왔다. 중도층을 계속 유지하고 확대해야 하는 안철수가 강력한 투쟁성을 보여주면 그게 야당에 득이 될까?  

 

야당 내 리더쉽에는 스펙트럼이 있다. 문재인의 리더쉽이 있고, 박지원의 리더쉽이 있고, 박원순의 리더쉽이 있다. 이런 리더쉽이 똑같이 된다면 그건 야당 지지층만 좁힐 뿐이다. 시사평론가 유창선씨는 새정치연합이 기초연금을 타협하면서 야당의 반대 때문에 기초연금 줄 수 없다는 새누리당의 프레임을 비켜간 점을 칭찬했는데 이게 사실은 안철수가 결정하고 주도했던 것이다. 중도충에 어필하려는 안철수의 결정이 없었다면 기초연금 때문에 야당은 지방선거에서 곤경에 처했을지 모른다.  

 

 

 

 

“문제는 7월부터 20만원을 받게 되길 바라는 어르신들의 사정이 굉장히 간절했다는 거고, 그 간절함에 부응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생각했다. 양승조 최고위원이 과거 노무현 정부의 4대 악법 개정 시도를 언급하면서 ‘전부 바꾸려고 달려들다가 결국 하나도 못 바꿨다. 저항이 너무 클 때는 반 걸음이라도 우선 나가고 나중에 나머지 반 걸음을 나가려고 노력하는 게 맞다’고 했다. 내 생각도 그랬다. 의총에서 ‘제가 책임지겠다. 정치적 결단이니 받아달라’고 했는데도 의원들의 반대가 계속되니 힘들었다.”

 

안철수 “광주에 진 빚 많아…대선은 국민이 자격 줘야 출마”

 

 

또 다른 걱정인 리더쉽은 비공개간담회에서 안철수가 가장 자신 있게 설명한 부분이다. 안철수는 시간만 있으면 좀 더 하고 싶은 부분이라며 아쉬워하기까지 했다. 생각해보니 그는 최첨단 IT기업에서 리더쉽에 성공한 바 있다. 

 

 

"벤처기업 사장들 모임 할 때 두가지 타입의 사장들 있어요. 한가지 타입은 제조업 쪽이예요. 제조업은 불량률 낮추고 단가 낮추고(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 사장들은 군대식이예요. 자기가 말하고 결정하고 자기랑 생각이 다르면 야단치고. 그런데 그래서 성공해요. 또 다른 건 인터넷 사장들. NHN 만든 사람, 다음 만든 사람 대부분 자기가 먼저 말하거나 주장 안해요. 다른 사람이 먼저 말하게 놔둬요. 그래야 회사가 살아남아요. 인터넷은 끊임없이 새로운 걸 시도해서 살아남아야 하거든요. 사장 혼자 해봤자, 천재라고 해봤자, 한계가 있잖아요. 다른 사람 아이디어를 따서 쓰는 거에요. 그러다보니 마음대로 얘기 놔두는 거예요. 한사람이 엉뚱하게 마음대로 얘기하게 놔둬요. 야단 안 맞고 괘찮거든요. 그럼 다른 사람이 슬금슬금 용기내서 또 엉뚱한 얘기하거든요. 그런 가운데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고 사장은 필요한 거 골라서 쓰면 돼요. 그래서 살아남아요." 간담회 중에서 

 

 

간담회가 끝날 무렵 한 참여자가 블로그를 왜 안하느냐고 물었다. 그에 대한 안철수의 답변이 다소 놀라웠다.

 

"A4 한 장 쓰는데 하루종일 걸립니다. 그렇다고 대필로 쓰는 건 반칙 같고요"

 

일단 많은 사람에게 용기를 주는 말이다. 그리고 안철수의 정치스타일에 불만은 가질 수 있어도 진심은 의심 안해도 될 것 같다. 안철수 대표의 정치행위를 분석할 때 참고하면 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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