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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 오랜만에 동창들을 만났다. 87년 졸업 후 처음 만난 친구도 있었다. 몇십년만의 회포를 풀다 누군가 정치 얘기를 꺼냈다. 순간 긴장이 흘렀다. 그러나 잠시였다. 모두 야당을 지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내 술자리는 박근혜 성토장으로 바뀌었다.

 

"다들 안 변했네" 이렇게 말하는 친구의 목소리엔 뿌듯함이 묻어났다. 거기에 내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87년에 우린 고등학교를 갖 졸업한 청년이었다. 그 푸른 가슴과 머리에 박힌 87년 대로를 행진할 때 육교 위에서 박수치던 시민들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우린 영원한 87세대다.

 

고령화로 인한 정치적 보수화에 대한 우려가 있다. 50대 이상의 보수적 세대의 인구 비중이 높아지면서 앞으로 보수가 득세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런 전망에 동의하지 않는다. 세대의 정치적 성향이 연령에만 고정되어 호응할 거라 보지 않기 때문이다.

 

진보적인 40대가 나이가 들어 50대가 되었다고 보수화 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 아니다. 물론 연령이 높아져 삶의 여건이 바뀜에 따른 보수화 경향은 분명 존재한다. 그러냐 경향일 뿐 진보적인 한 세대를 통째로 보수화 시키지는 못한다. 한 번 자리잡은 개인의 정치적 성향은 유전자처럼 각인되기 때문이다.

 

연령별로 일정한 정치적 경향도 있지만 시대에 따른 정치적 세대의 구분도 있다. 이를테면 지금의 50대 이상은 박정희 세대다. 그들이 20대였던 70년대는 박정희의 우상화가 한창이던 시절이었다. 쿠데타부터 그때 그사람과 함께 한 박정희의 운명은 지금의 50대에 각인되었다. 반면 지금의 40대 이하는 민주화세대다. 20대부터 민주화 시대를 살았던 87세대에게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노무현 세대라고도 할 수 있는데 당선과 서거까지의 극적인 노무현 드라마가 이들에겐 각인되어 있다.

 

정치적 세대를 감안하면 세대벽 득표율은 수긍이 되는 부분이 많다. 40대 표심은 과거 선거에서 캐스팅보드 역할이었다. 40대가 진보적 성향으로 바뀌면서 캐스팅보드 세대는 50대에서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다. 이는 30대, 40대 민주화세대가 40대, 50대로 넘어오면서 정치적 성향을 기울게 하거나 옅어지게 한 결과이다.

 

이명박과 박근혜의 당선은 박정희 세대가 호응한 결과다. 그 이전까진 87년 민주화 에너지에 눌려있었고 공명할 인물도 없어 박정희 세대의 표심은 한동안 방향을 잡지 못했다. 그러다 민주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어 독재에 대한 경계심이 옅어지고 박정희 코스프레 이명박과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나타나자 박정희 세대가 강력하게 공명했던 것이다. 주축 세대에다 고령화로 인구층이 두터웠으니 이명박과 박근혜의 당선은 당연한 결과였다. 지난 대선 90%에 가까운 50대의 투표율도 특정 세대의 공명현상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오주르디

 이미지 출처 오주르디님 글 : 노란색과 40대 VS 50대, 세대갈등 아닌 컬러갈등

@오주르디

이미지 출처 오주르디님 글 : 노란색과 40대 VS 50대, 세대갈등 아닌 컬러갈등

 

 

정치적 세대로 보면 연령별 양극화 현상도 간단히 설명이 된다. 과도한 양극화 현상은 연령별 정치적 성향에다 정치적 세대의 성향까지 중첩되면서 일어난 현상인 것이다. 50대, 60대의 정치적 성향에 박정희 세대의 보수적 성향이 겹쳐 보수성이 극대화 되었고 40대 이하는 노무현 서거와 촛불 등으로 진보성을 더욱 강화하면서 반대의 극으로 달리게 된 것이다.

 

앞으론 어떻게 될까? 2012년 선거에서 이미 그 징후가 나타났다. 2012 대선에서 40대는 문재인에게 10% 더 많은 표를 주었다. 2002 대선 때는 노무현과 이회창이 40대에서 거의 동률이었다. 민주화 세대가 시간이 지나면서 40대까지 우위를 점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2012 대선에서 민주화 세대가 패한 것은 민주화 세대의 진입에 위기감을 느낀 박정희 세대의 결집력 때문이었다. 90%가까운 투표율은 누구도 예상하기 힘든 수치였다.

 

며칠전 끝난 2014년 선거까지 이어서 보면 이런 징후는 보다 뚜렸해진다. 2년도 안지났는데 야당의 40대의 지지율은 한층 더 올라가 있다. 40대의 지지율 약진은 서울만 아니라 대도시의 공통된 현상이다. 2012대선 박근혜에 몰표를 던졌던 50대의 여당 편향적 투표성향도 상당히 누그러졌다.

 

 

 

 

현재의 정치적 환경은 야당에 불리하다. 지역주의로 보나 연령별로 보나 야당은 열세다. 여당이 인구나 결집력에서 야당에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세대로 본다면 앞으로는 야당에게 더 희망이 있다. 민주화 세대가 50대에 완전히 진입하고 촛불세대 50만명이 매년 새로운 유권자로 유입하면 곧 야당에 유리한 정치적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 이런 추세라면 야당은 지금 같은 세대별 양극화 구도에서 대결구도만 유지해도 된다는 얘기가 된다.

 

이번 지방선거는 야당과 여당의 대결이 아니라 대통령과 야당의 대결이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지방선거 후보자가 아니라 대통령이 눈물 흘리는 얼굴을 온 거리에 붙이며 표를 구걸했다. 이런 선거전략의 바탕에는 50대 이상 박정희 세대만 결집시켜도 이길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다.

 

여당의 박정희 세대 결집전략은 언제까지 유효할까? 민주화 세대가 50대로 완전히 진입한 후에도 가능할까? 지금으로선 꿈 같은 얘기겠지만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면 새누리당은 멸종의 위기에 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50대를 믿었는데 그 50대가 결집력이 더 강화된 민주화 세대라면 어떻게 될까? 상황은 순식간에 돌변하는 것이다. 지금 대개조를 해야할 건 대한민국이 아니라 새누리당일지 모른다. 지금이 박정희 세대의 끝물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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