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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구도심은 산복도로에 둘러싸여 있다. 이 산복도로를 올라가다 보면 정상에서 생각지도 못한 풍경을 만난다. 산비탈의 빽빽한 집들을 간신히 빠져나가던 도로가 갑자기 넓어지면서 앞에는 꽤 넓은 공간이 나타난다. 거기서 좀 더 높은 곳엔 횃불 조형물이 올려진 건물이 서있다. 바로 1999년 건립된 부산민주공원이다.
 
부산에 웬 민주공원이 있냐고 할지 모르겠다. 부산은 한국 민주주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도시다. 4·19는 마산과 함께 부산이 진원지다. 부산은 19년 뒤 다시 마산과 함께 박정희 정권에 조종을 울린 부마항쟁을 일으켰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6월항쟁에서 그 어느 곳보다 뜨거웠던 곳도 바로 부산이었다.
 
부산민주공원은 1년에 한두 번은 찾게 된다. 매년 추석 다음날 열리는 이주노동자 축제에선 동남아 각국의 음식을 맛보기도 했다. 지난해 리뉴얼된 상설전시장에는 촛불시위 현수막과 한진중공업 노동자의 안전화도 있다. 역사 속 민주주의뿐 아니라 현재진행형 민주주의도 전시한 것이다. 유명인의 식수도 볼거리다. 사이가 좋지 않았던 김영삼 김대중 두 대통령의 식수는 볕 좋은 곳에 사이좋게 나란히 서 있다. 추념의 장 근처엔 노무현 대통령이 후보 시절 심은 나무가 있고 그 위쪽엔 '민주보루'라고 쓴 김수환 추기경의 식수도 보인다.
 
그런데 요즘 민주공원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부산시의회가 방만한 운영을 이유로 민주공원의 예산을 53%나 삭감한 것이다. 시의원이 예산을 감시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너무 과도했다. 심각한 문제가 드러나거나 한 경우가 아닌데도 시설의 예산을 절반 이상 삭감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고정비용의 관리비는 건드리기 어려워 삭감된 예산 대부분은 인건비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정규직 3명 정도 고용하는 인건비만 남아 민주공원 직원 18명 중 15명은 해고되어야 한다. 예산을 자르는 게 시의원이 할 짓인지는 모르나 이런 식의 인건비 삭감은 사람이 할 짓은 아닌 것 같다.
 
시의회는 방만한 운영의 사례로 5000만 원 사업비에 18명이 근무하는 것을 들었다. 언뜻 맞는 것 같다. 그러나 민주공원은 국가기관이거나 수익사업을 하는 시설이 아니다. 민주공원은 부산시가 시설과 관리 인력을 제공하여 시민·사회단체의 독립적 활동을 지원하는 곳이다. 오히려 많은 사업비는 민주공원의 독립성을 해칠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봐야 한다.
 
시의회의 주장엔 모순점도 발견된다. 5000만 원은 부산시가 주는 예산이 아니라 민주공원이 대관료 등으로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돈이다. 시의회 요구대로 사업비를 증액시키려면 대관료 등을 올려야 하는데, 이건 민주공원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민주공원 대관료는 시의회의 조례로만 정할 수 있다. 사업비 5000만 원의 증액 여부를 시의회가 쥐고 있으면서 사업비가 적다고 예산을 삭감한 건데 이건 좀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방만한 운영의 사례 중엔 관장의 연봉 5000만 원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 민주공원 관장의 연봉은 4900만 원인데 이 정도 연봉이 과도하다는 지적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만약 이 연봉이 과도하다면 부산시의원은 얼마의 연봉을 받고 있는지 묻고 싶다. 과연 부산시의원의 연봉이 5000만 원 이하일까? 참고로 2006년 부산시의원의 연봉은 5600만 원이었다.
 
지난 1월 25일 민주공원 직원들은 18명이 똑같이 나눈 월급을 받았다. 10년 일한 한 직원은 130만 원을 받았다고 한다. 2011년 우리나라 40대 평균 월급은 350만 원 수준이다. 이대로 가면 민주공원은 지속하기 어렵다. 방만한 운영의 분명한 사례가 없다면 민주공원 예산은 회복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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