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재미있는 영화를 봤을 때을 때 느끼는 흥분감이 있다. 흙속에서 진주를 찾은 그런 느낌이랄까. 연극 열대야가 그랬다. '열대야'는 '연극이 재밌으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나의 고정관념을 보기좋게 깨주었다. 100분 동안 정말이지 쉴새없이 웃었다. 연극이 끝나고 늦은 시간임에도 같이 연극을 본 우리 일행은 한 명도 빠짐없이 뒤풀이에 함께 했다. 다들 연극을 보고난 후 가시지 않는 흥분감을 풀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사진출처 : 열대야 카페

 

 

'열대야'는 친구 사이인 40대 세 남자의 술자리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다룬 연극이다. 올해 40대 세 남자 친구의 우정과 사랑을 이야기한 '신사의품격'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열대야'의 세 남자는 이들과는 품격이 많이 떨어진다. 열대야의 세 남자는 취직을 안 했거나, 취직을 해도 별 능력이 없거나, 능력이 있어도 직장생활이 괴로워 사표를 안주머니 넣고 다니는 위기의 40대 남자다.

 

사진출처 : 열대야 카페

 

그리고 이들에겐 수시로 훈계하고(아버지), 잔소리하고(아내), 칭얼대는(딸) 무서운(?) 가족도 있다. 세 남자는 술자리에 같이 있지만 전화기를 통해 가족의 통제를 수시로 받는다. 전화기의 진동이 울리면 질펀한 술판의 공간은 삽시간 안절부절 못하는 변명의 공간으로 바뀐다. '열대야'의 세 남자는 동네에서 흔히 마주치는 우리의 소시민 40대 남자다.

 

사진출처 : 열대야 카페

 

최근 영화 '광해'를 참 재밌게 보았다. 오랜만에 통쾌한 작품을 하나 보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연극 '열대야'는 그보다 훨씬 재밌게 봤다. '열대야'를 보면서 단어 그대로 온 몸이 흔들리는 박장대소도 했는데 광해를 볼 땐 그런 기억이 없다. '열대야'를 보고나서 연극이 영화보다 더 재밌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미는 결국 공감이다. 그렇다면 공감의 요소가 많을 수록 재밌다고 할 수 있는데 연극은 영화는 가질 수 없는 공감의 요소가 몇개 있다. 일단 연극은 배우와 관객이 한 공간에서 직접 공감할 수 있다. 배우의 연기에 관객은 반응하고 그 반응은 다시 배우의 연기로 연결된다. 그렇게 배우의 연기와 관객의 반응이 시너지를 일으키면서 웃음과 감동이 눈덩이처럼 커져갈 수 있다.

 

실제로 내 앞의 한 관객은 배우의 대사를 받아쳤는데 배우가 그걸 다시 받아치면서 잠시 재밌는 에드립 장면이 벌어졌다. 나도 얼떨결에 공연에 참여했다. 극중 알바로 나오는 여자 배우가 눈을 마주치면서 손가락을 맞추는 교감연기를 유도했는데 쑥쓰럼을 잘 타는 성격임에도 한껏 들뜬 공간의 분위기 덕분에 아주 자연스럽게 호흡을 맞출 수 있었다. 연극의 3대 요소는 관객, 배우, 희곡이라했는데 이 날 왜 관객이 3요소 중에 하나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사진출처 : 열대야 카페

 

 

연극만이 가질 수 있는 또 다른 공감의 요소는 지역이다. 물론 영화도 지역을 다룰 수 있다. 그러나 연극만큼 생생하게 구현하긴 어렵다. 연극은 리얼타임으로 지역을 이야기하고 바로 그 지역에서 공연을 한다. 공감의 집중성이 영화와는 비교할 수 없다.

 

'열대야'는 부산을 무대로 쓰여지고 부산에서 공연되는 부산의 연극이다. 연극엔 부산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관객들은 연극을 여는 여 배우의 확실한 부산 사투리부터 낄낄거려 세 친구가 술집에서 자이안츠 중계를 보는 장면부터는 연극에 대한 탐색전을 끝내고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부산 이야기를 해주는 부산 배우들에게 애정이 느껴졌다. 사진출처 : 열대야 카페

 

 

 

'연극이 끝난 후' 우리 일행은 인근의 쭈꾸미집을 찾았다. 안갈 수가 없었다. 연극은 술자리에서 벌어졌고 실제로 고기냄새까지 풍겼다. 요즘 4G 영화가 유행하는데 '열대야'가 바로 4G연극이었다. 40대라면 이 연극을 보고난 후 더욱 술생각이 들 것이다. 이건 40대 남자의 이야기이고 연극 포스터에도 '아저씨도 보는 연극'이라고 적혀있다.

 

 

 

 

 

열대야는 이번이 첫공연이 아니다. 2011년 초연되고 관객의 호응에 힙입어 앵콜공연까지 들어갔다. 그러나 그렇게 반응이 좋았음에도 수지를 맞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연극은 1년간 공백기를 가지다 작품을 안타까워한 작가와 연출가 등이 다시 합심해 무대에 올리게되었다. 손해를 봐도 끝까지 가보자고 다짐했다고 한다. 

 

요즘 지자체에 스토리텔링이 화두다. 점점 쇠락해가는 지역을 살리기 위해선 스토리를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스토리텔링은 다른 게 아니라 연극 '열대야'처럼 지역을 이야기하는 이런 작품이다. 부산을 이야기하는 이런 공연이 살아나 부산 사람이 웃고 공유하면 지역에 자연 이야기가 깃들고 스토리텔링이 되는 것이다.

 

부산 사람은 프로야구의 열기에 큰 기여를 했다. 부산 사람이 재밌게 관람하니 다른 지역 사람들도 덩달아 보게 된 점이 분명 있다. 이런 저력이 문화에서도 발휘되면 지역은 살아날 수 있다. 부산을 이야기하는 연극을 300만 부산 사람이 즐기면 다른 지역 사람들이 궁금해 들여다보게 된다. 연극 열대야는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 것 같다. 보러 오게 하는 게 문제지 보고 난 후엔 문제 없을 작품이다. 부산의 이야기 부산 사람이 봐주자는 게 아니다. 부산 사람부터 먼저 보자는 것이다.

 

 

반응형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