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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서면역 환승장에서 정여사 퍼포먼스를 펼치는 주근깨님

 

 

부산에 '정여사'가 나타났다. 검은색 드레스에 넓은 챙의 우아한 모자 그리고 브라우니 인형, 딱 봐도 한눈에 알 수 있는 '정여사' 코스프레다. 그런데 부산의 '정여사'는 개콘의 '정여사' 같은 블랙컨슈머가 아니다. 유권자의 참정권 보장을 위해 이번 대선 투표시간 연장을 요구하는 당당하고 열정적인 시민이다.

 

'정여사' 퍼포먼스는 부산 유권자 네트워크의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행사장에서 벌어진 퍼포먼스다. 부산 유권자 네트워크는 각 지역과 단체별로 투표시간 연장 운동을 벌이고 있는데 이날은 부산지하철 서면역 환승로에 모여 행사를 벌였다.

 

그런데 이런 퍼포먼스를 볼 때마다 궁금한 게 있었다. 과연 '정여사'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 당당하게 자기 주장을 펼치는 사람은 누구일까? 이런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 혹시 정당이나 시민단체의 관계자는 아닐까?

 

'정여사'는 정당이나 시민단체 관계자는 아니다.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건 봐서 알기 때문이다. 오프에서도 몇차례 만난적이 있는데 부산의 '정여사'는 활발한 활동성으로 트위터에서도 꽤 알려진 주근깨님이다.

 

몇차례 본적은 있지만 그런 질문을 해본적은 없다. 그동안 풀지 못한 궁금증을 풀기위해 주근깨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주근깨님의 카톡 메시지가 응답했다. "오케이"

 

 

- 정여사 퍼포먼스는 어떻게 시작하신 겁니까.

 

"'정여사' 퍼포먼스는 서울에서 먼저 시작 했구요. 저 정도는 아니고 그냥 모자에 선글라스만 착용하는 정도였는데 부산이 좀 더 확실히 살렸죠. 조금 전 수원 미권스에서도 부산처럼 하고 싶다고 해서 자료 보냈어요."

 

- 퍼포먼스 본 시민들 반응 어땠습니까.

 

"대박이었죠. 역시 아이들이 제일 반응이 좋았어요. 브라우니 만져보고 같이 사진 찍기도 하고. '브라우니 물어!' 하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위키트리에 기사화 되서 트위터와 페이스북에도 제 사진이 막 돌아다니더라구요."

 

- 의상과 소품은 어떻게 구하셨습니까.

 

"브라우니는 제돈 52,000원 들여서 마트에서 구입했어요. 옷은 제 의상중에서 느낌이 비슷한 걸로 골랐죠."

 

- 정여사 말고 다른 퍼포먼스 계획은 있습니까. 요즘 갸루상이 인기 많던데.

 

"용감한 녀석들을 한번 해 볼까 해요. 갸루상은 좀 더 있다가 투표독려운동 할 때 해볼려구요. '투표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므니다' 이렇게 하면 재밌을 거 같아요."

 

 

투표시간 연장운동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부산의 트위플들

 

- 투표시간 연장운동의 주체가 부산 유권자 네트워크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떤 단체입니까? 앞으로 투표시간 연장운동 계획은?

 

"부산 유권자 네트워크는 부산참여연대, 부산민예총, 청년연대, 탈핵, 부산지하철노조, 북구시민네트워크 등 60 여 개의 시민사회단체로 이루어져 있어요. 운동은 각 지역별, 단체별 능력껏 하구요. 일주에 한번 금요일엔 서면 태화쇼핑 앞에서 촛불집회를 가질 거예요. 서명은 이달 말까지 받고 정치권 압박하는 촉구 운동은 계속될겁니다."

 

 - 주근깨님은 거기서 어떤 일을 하십니까?

 

"기획팀장을 맡고 있어요. 선전을 위한 자료들을 만드는데 문구도 짜고 디자인도 하고 퍼포먼스도 기획해요. 요즘은 거의 매일 나오는데 밥도 제 때 못먹을 정도로 바빠요."

 

 - 언제부터 사회•정치적 활동에 이렇게 관심을 가지고 참여도 하게 되었습니까? 2008년 촛불 때부터인가요?

 

"그때도 애들 데리고 집회도 참여하고 돈도 기부하고 했지만 나서지는 않았어요. 2010년 말에 트위터를 시작하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죠. 홍대 청소노동자와 날라리 외부세력, 한진증공업 김진숙 지도위원, 강정의 문신부님 이런 분들을 통해 '내가 세상에 너무 눈을 돌리고 살았구나. 내 책임이 크구나.'라고 느끼기 시작했죠. 작년 희망버스 때부터 적극 연대하기 시작했어요. 번개에도 참석하고 제가 나서서 트위터를 통해 사람들을 모으기도 하고요."

 

주근깨님은 시민단체나 운동권과는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아왔다. 이전까지 평범한 주부였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열정적 인 활동가가 되었을까? 내부의 어떤 것이 주근깨님을 이끌었을까? 이런 답에 알맞는 질문을 고민하고 있는데 주근깨님이 자신이 겪은 87년 6.10 항쟁 이야기를 나지막히 풀어내고 있었다. 듣고보니 그건 원하던 바로 그 답이었다.

 

"부산이 시민에게 완전히 점령되었던 날 저두 거기 있었습니다. 그날 서면에서 부산진까지 가두 행진을 했습니다. 해방의 날 같았죠. 평생 그날을 못 잊을 겁니다. 발이 아파 구두를 벗어 가방에 넣고 맨발로 모르는 사람들과 어깨동무 하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불렀어요. 저도 모르게 제일 선두 쪽에 섰어요. 진시장 앞 고가도로를 넘어서는데 부산진역 부근에서 기다리던 전경부대가 어둠속에서 덥치기 시작했죠. 지랄탄이 비오듯 쏟아지는데 다들 정신이 혼미 해져 쓰러져 토하고. 그러다 어찌어찌 집에 왔는데 나중에 뉴스를 보니 그 자리 제 몇 줄 앞에서 사람이 죽은 거예요. 그때는 아비규환이라서 누가 죽어도 몰랐죠. 아직도 '임을 의한 행진곡' 노래를 들으면 울컥해요."

 

그날은 6월18일이고 숨진 사람은 이태춘 열사다. 민주공원 이태춘의 비석엔 이렇게 새겨져 있다. "이태춘 열사는 일반 시민으로 1987년 6월항쟁에 참여해 서면으로 행진하던 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좌천동 고가도로 아래로 추락, 6월 24일 운명하셨습니다.' 당시 이태춘은 동아대 무역학과를 졸업하고 태광고무 무역부에 입사한지 3개월 되던 신입사원이었다.

 

주근깨님의 6.10항쟁 이야기를 음미하는 동안 묻지는 않았지만 내가 듣고 싶었던 마지막 답을 주근깨님이 쓰고 있었다. 강렬한 울림이 있는 마무리 멘트였다.

 

"제가 이렇게 활동하는게 책임감이라기보다는 제가 제 생활에만 충실하던 시간 동안 힘들게 현장을 지키고 알리려고 노력하고 연대해 온 사람들에 대한 채무감이 더 크다고 봅니다. 그들이 도와 달라고 같이 하자고 소리치는데 그 소리를 외면 할 수 없는 거죠. 그들이 손 내밀때 내가 무얼 도와 줄 수 있을까? 결국 그들이 지키려는 것이 우리 모두를 지키려는 것이고 그 안에 나와 내가족이 포함되니까요. 그 안에 내 몫을 조금이라도 하려는 것 뿐입니다."

 

개콘의 '정여사'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블랙 컨슈머지만 부산의 '정여사' 주근깨님은 그 반대로 타인의 고통과 책임을 나누려 애쓰는 사람이다. 개콘의 '정여사'는 '바꿔줘'라고 억지를 부리지만 부산의 '정여사'는 '함께해'라며 손을 잡는 연대주의자다.

 

개콘 '정여사'같은 사람이 정말 있을까 싶지만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말 있을 것 같지 않을 정도로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부산의 '정여사' 주근깨님도 실제로 있다. 궁금증이 어느 정도 풀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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